세월호 참사 관련

파국 재촉하는 박근혜 대통령. '역사의 복수'를 피해갈 수 없다.

道雨 2014. 9. 18. 10:46

 

 

            파국 재촉하는 박근혜 대통령

 

 

 

모든 게 분명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본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박 정권의 속성이 어떤 것인지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국민 각자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박 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접을 때가 된 것 같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박 대통령은 엊그제 국무회의와 새누리당 수뇌부들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분명하게 밝혔다. 여야가 마련한 ‘2차 합의안’이 최종안이라고.

유족과 시민들이 기약없는 단식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해도 박 대통령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대책회의가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후안무치하고 적반하장”이라고 질타했는데, 박 대통령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본색을 드러낸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서 사실상 압승한 여당은 이제 제 갈 길로 가고 있다. 친여 언론의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반쪽 국회를 열어 법안 통과를 밀어붙일 태세다. 야당까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도 솔직하게 드러냈다. 대기업과 부자들의 주머니는 그대로 놔둔 채(때로는 두둑이 채워주면서) 담뱃값이나 주민세 등을 올려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내겠다고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이런 행태가 새삼스럽거나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지지 기반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선거에서 서민 표를 얻으려고 마음에도 없는 경제민주화, 복지 운운했지만 이제 그런 ‘양의 탈’도 다 벗어던지고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대통령과 여당이 이런 마당이니 권력기관이라고 다를까.

이미 청와대의 ‘하수인’이 돼 버린 검찰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법원도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정치 개입’은 맞지만 ‘선거 개입’은 아니라는 기상천외의 판결을 내놓았다.

그 뒤 벌어지는 양상은 더 가관이다. 국정원장은 유죄 받은 정치 개입 부분에 대해서도 다투겠다며 기세등등하게 항소했는데 검찰은 청와대 심기를 살피는지 항소 여부를 놓고 장고를 거듭했다.

 

이것이 박 정권의 실체다. 그리고 박 정권의 이런 폭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40%가 넘는 대통령 지지율에다 친여 언론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고, 야당까지 지리멸렬한 마당에 거치적거릴 게 뭐가 있겠는가. 더구나 선거가 2년 가까이 남았으니 국민 눈치 볼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박 대통령이 바라는 대로 민생경제가 살아나고, ‘100% 국민행복 시대’가 열릴까.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모독’이 사라지고,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갈까.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박 대통령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국정운영 권한을 위임받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지 전제왕조의 여왕이 아니다.

박 대통령으로서야 자기 뜻대로 나라를 끌고 가는 게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오만이고 오산이다.

지금처럼 간다면 그 끝은 파국이다.

 

힘없고 돈없는 사회적 약자와 세월호 유족 같은 가슴 아픈 국민들을 억압하고 배제하면, 그 자신이 불행한 대통령이 된다.

저주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현대정치사에서 그런 경우를 한두번 봐 왔는가.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로가 어찌됐는지를 되돌아보는 걸로 충분하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지금 그런 파국을 재촉하고 있다. 그럴수록 국민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고, 그 와중에 민생도, 복지도, 국민 안전도 다 실종된다. 박 대통령이 진정 바라는 것도 이건 아닐 것이다.

 

 

사족: 박 대통령이 캐나다와 미국 방문을 위해 20일 출국한다. 현지 동포들은 <뉴욕 타임스>에 세월호 관련 광고를 싣고, 박 대통령의 일정을 따라다니며 규탄 시위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라 망신 운운하는 지적이 나올 게 뻔해 미리 분명히 해 둔다. 나라 망신 시키는 장본인은 동포들이 아니라 박 대통령 자신이다.

왜 나라 밖에서까지 이런 대접을 받는지 곰곰 생각해보기 바란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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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위험한 정치’

 

 

각본대로 움직이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대통령의 일장훈시에 여당이 파죽의 기세로 단독국회 수순을 밟고 나섰다. 국회의장도 직권으로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결정하며 덩달아 보조를 맞췄다. 야당의 지리멸렬을 틈탄 대통령의 ‘공격 개시’ 신호에 여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총공세에 나선 모양새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 결정으로 17일부터 국회 상임위별 활동이 가능해졌다. 본회의와 국정감사 일정도 일방적으로 결정됐다. 야당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으로선 언제든지 단독으로 국회를 밀어붙일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게 된 셈이다.

국회의장의 직권 결정은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직후에 나왔다. 오비이락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국회에 대한 인식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소양을 의심케 한다.

그동안 유족들의 거듭된 수사·기소권 요구에도 삼권분립을 내세워 침묵했던 박 대통령은 이번에 ‘수사·기소권 요구는 사법체계 훼손’이라며 불가하다고 명확히 못을 박았다.

이전 논리로 따지면 대통령 스스로 삼권분립을 침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국회 공전을 이유로 ‘세비 반납’까지 거론하며 국회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일반 국민이나 언론이라면 국회 파행을 준엄하게 비판할 수 있지만,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는 건 국회에 대한 모독에 가깝다.

입법부를 ‘행정부의 시녀’쯤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여당을 대하는 시각에서도 1970년대식 시대착오가 묻어난다.

박 대통령은 “지금 이런 상황이면 여당이라도 나서서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놓고 여당의 날치기와 단독국회 강행을 종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여야의 세월호법 2차 합의안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 장기판의 장기알 움직이듯 여당을 좌지우지했던 과거 ‘제왕적 총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국회를 압박하고 여당의 일방통행을 부추기고 야당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대통령의 ‘초강수 발언’은, 유족을 자극하고 야당의 강경투쟁을 부추길 뿐, 정국을 풀어가는 데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면서,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을 절충할 수 있는 공간도 더욱 좁아졌다.

 

‘대통령의 결단’이란 최후의 카드도 봉쇄됐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청와대의 ‘정국 강경몰이’가 행여 정국을 파국으로 치닫게 해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그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전략이 아닌지도 의심된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특별법 걷어차기’와 국회 압박은, 결국 세월호 정국의 출구를 틀어막고, 정치를 ‘질식사 직전’으로 내몰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매듭을 풀지 못할 바엔 더욱 꼬이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재오 의원 말대로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 2014. 9. 18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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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리본’ 금지령, 대한민국 교육부 맞나

 

 

교육부가 16일 ‘노란 리본 달기’ 등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동을 금지하는 공문을 각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냈다. 교육부는 공문에서 추모 행동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노란 리본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 찾기를 희망하는 뜻에서 다는 것이다.

제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학교 선생님들이, 친구의 비극을 아파하는 학생들이 잊지 않겠다고 가슴에 새기는 서약이다. 한 달 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미사를 집전하며 달았다.

그런 노란 리본을 ‘정치적 활동’으로 보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교육부야말로 극도로 미성숙하고 편향된 시각을 심어주는 당사자란 걸 증명해 보일 뿐이다.

 

교육부가 공문을 내보낸 시각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가족을 순수와 비순수로 나누며 세월호법을 걷어찬 직후다.

대통령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행동에 나선 그 신속함이 놀랍다. 마치 군대나 검찰, 경찰 등의 공안 관련 부처가 움직이는 듯하다.

교육부가 평소 수학여행 안전점검 등 교육행정에서도 그렇게 기민하게 대처했더라면 300명 넘는 희생자가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교육부는 아이들의 죽음에 더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배가 기울어 짠 바닷물이 밀어닥치는데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도록 가르친 게 교육부다.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율적 능력을 죽여온 게 우리 교육이다. 그저 획일화된 교육내용을 가지고 경쟁교육만 부추겨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몬 장본인이다.

 

교육부의 이런 처사는 이번만이 아니다.

6월에는 세월호 참사의 정부 책임을 제기하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한 교사 200여명 전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세월호 비극에 참담함을 못 이겨 글 한 조각 올린 교사들을 검찰의 칼을 빌려 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교육의 가장 기본 중 하나가 부끄러움을 알도록 가르치는 일인데, 정작 교육부는 그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


[ 2014. 9. 18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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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와 이승만과 박근혜

 

 

 

조선은 일본과 ‘7년 전쟁’(임진왜란·1592년 4월~1598년 11월)으로 쑥대밭이 됐다.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고, 전답은 5분의 1로 줄었다. 기근과 역병이 산천을 휩쓸었다.

 

그 와중에 선조는 공신 책봉을 결정한다.

“대대적으로 공신을 봉하니, 명칭은 호성공신, 선무공신, 청난공신이다.”(<선조실록> 선조37년(1604년) 6월25일).

호성공신(扈聖功臣)은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때 따른 신하로 대부분 문관과 기술관이다. 선무공신(宣武功臣)은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무인이다.

 

그런데 86명에 이르는 호성공신 중엔 말을 끄는 말구종도 6명 들어 있는데, 선무공신은 18명뿐이고, 의병이 한명도 없다. 일본군도 그 기상을 기려 무덤을 만들어줬다는 동래부사 송상현, 칠백의사 조헌, 홍의장군 곽재우, 진주성의 김천일, 사명대사 등이 모두 빠졌다.

 

선조는 내뱉듯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 군사가 한 일이 뭐가 있소? 명나라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라가 멸망했을 것이오.”

그러곤 ‘재조지은’(再造之恩·다 망한 나라를 살려낸 은혜)을 내세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송덕비와 생사당(生祠堂·산 사람을 위한 사당)을 지으라고 명했다.

 

선조가 재조지은을 앞세워 이순신과 의병을 폄하한 데는,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자신의 무책임에 대한 왜곡된 자각, 무인한테 힘을 실어주면 왕권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판단 따위가 깔려 있었을 터.

하지만 재조지은 이데올로기로 스스로를 세뇌한 역사적 귀결은 병자호란이라는 또다른 재앙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1950년 6월27일 새벽 대전으로 ‘1호 피난’ 했다.(사실은 대구까지 도망갔는데 ‘너무 멀리 왔다’는 지적에 대전으로 되돌아갔다.)

그러고도 “서울을 사수한다”는 국군의 다짐을 라디오 방송으로 거듭 내보냈다.

 

이튿날인 6월28일 한국군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다. 당시 유일한 다리다. 다리를 건너던 민간인이 500명 넘게 폭사했다. 이승만은 그렇게 한강 이북에서 인민군을 막던 병사와 시민을 버렸다.

심지어 그는 전쟁 발발 당일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을 공포해, 자신이 조직한 반공단체인 국민보도연맹 사람들을 학살했다. 이렇게 한국전쟁 전후 학살된 민간인이 100만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4월16일 진도 앞바다가 세월호에 탄 304명의 목숨을 집어삼켰다. 정부는 스스로 빠져나온 승객을 빼곤 단 한명도 구하지 못했다.

대통령 박근혜는 선조와 이승만의 길을 좇아, 자신의 무책임·무능을 ‘남 탓’과 ‘희생양 찾기’로 덮으려 한다. ‘유병언-구원파-청해진해운-세월호 선원’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성난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고심 끝에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46일 장기단식과 함께 ‘성소’가 된 광화문광장의 동조단식, 그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외치는 수사권·기소권을 갖춘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등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요구를 외면한다. 대신 “빨리 갑판 위에 올라가라는 말 한마디만 했으면 많은 인명이 구조될 수 있었는데”(9월2일 국무회의)라며 ‘선장 책임론’을 제기했다. ‘사라진 7시간’은 해명하지 않는다.

 

9월16일 국무회의에선 “순수한 유가족”이라는 말로 ‘불순한 유가족’의 존재를 암시한 뒤,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덮어씌우기’에 나섰다.

 

하지만 세 치 혀로는 진실을 죽일 수 없다.

선조와 이승만처럼 그도 ‘역사의 복수’를 피해 갈 수 없을 터.

 

자연이 그렇듯이 역사도 자비를 모른다.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