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내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지’
45살 국정원 직원은 왜 목숨을 끊었을까?
지난 며칠 출퇴근길에 이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사건 뒤 만난 한 여당 의원은 “국정원 직원들을 만나보면 상당수가 순박하고 세상물정 잘 모르는 사람일 때가 많다”고 했다.
국정원은 ‘보안’이 생명이고, 국정원 직원은 신분을 밝힐 수 없어 자연히 세상과 담을 쌓게 된다. ‘교회 집사’였다는 숨진 임씨도 교회 사람들조차 “국정원 직원인 줄 몰랐다”고 했다.
국정원은 ‘북한’이란 실재하는 ‘적’과 늘 마주한다. 매일 전투를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직에 대한 충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간첩 증거조작 사건’,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등, 이전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시도한 국정원 직원이 있었다. ‘나를 희생하더라도 조직을 보호하겠다’는 의식이 큰 탓으로 보인다.
숨진 그는 자식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걸 알면서도 ‘국정원 위상’을 더 걱정했다.
왜 자신의 정체성을 ‘우리 아기 아빠, 배에 왕 자(짜) 만든다 약속했던 아내 남편, 나 자신’에 두지 않고, ‘국정원 직원’에만 뒀을까?
그의 바람과 달리, 그는 논란을 더 키웠고, 이젠 그가 삭제한 내용을 ‘100% 복구했다’ 하더라도, 더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안타깝지만, 그는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국정원을 결과적으로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그의 죽음 뒤 국정원은 ‘동료 직원을 보내며’라는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의 성명을 냈다. 정말 ‘국정원 직원 일동’의 총의라면, 이런 국정원은 하루빨리 해체시켜야 할 것 같다. 성명에서 분노가 묻어난다. 국민들의 의혹 제기를 ‘백해무익’, ‘개탄스런’, ‘무책임한 발상’이라 했고, ‘(의혹 제기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따라야 할 것’이라며 협박했다.
국정원 직원 대부분의 생각이 그 성명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국정원의 힘을 고려하면, 정말 ‘무슨 짓’을 벌이기 전에 전원플러그를 뽑아야 할 것 같다. 간부가 ‘국정원 일동’의 명의를 도용했다면 차라리 다행이라 해야 하나.
성명 내용을 압축하면, ‘사찰 안 했다. 믿어달라. 그러니 이만 끝내자’다. “국정원은 우리 국민에 대한 사찰이 없었음을 분명히 했고, … 조용히 확인하면 될 일”, “이탈리아 해킹팀 프로그램을 35개국 97개 기관이 구입했다. 모두 ‘노코멘트’ 한마디로 대응하고 아무 논란 없이 받아들여졌다”, “유서에서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분명히 밝혔다. 유서 내용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합리성을 결여했고, 1970~80년대 중앙정보부·안기부 시절의 ‘향수’를 떨쳐버리지 못한 듯하다. ‘내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지, 웬 말이 이리 많아, 세상이 왜 이렇게 됐지’라는 울분이 느껴진다.
‘다른 나라는 아무 말 없지 않느냐’는데, 이유를 모르는가?
<에이피>(AP)는 19일 “한국에서 더 민감한 이유는, 국정원이 과거에도 불법 도청, 민간인 사찰 등의 의혹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인권탄압 후진국에서 어찌 감히 토를 달 것이며, 인권 선진국에선 정보기관에 대한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한 정보기관이 내 뒤통수를 칠 것이라는 두려움은 없을 것이다.
‘신뢰’란, 신뢰하지 않는 이가 문제가 아니라 신뢰 주지 못하는 이가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정원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지, ‘국정원’을 위해 국정원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해킹 의혹이 채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왜 이래”라며 국민 향해 성을 낸다.
무섭다. 똑똑하지 않아 더 무섭다.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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