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과목 교사가 국정교과서 '복면집필'하다니"
김형도 교사 들통나자 서둘러 필진에서 빠져, 일본어로 인사도
서울 사립학교인 대경상업고 김형도 교사가, 자신이 국정교과서 집필진이란 사실이 들통나면서 파장이 일자, 서둘러 필진에서 중도사퇴했다.
10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기관지 <교육희망>에 따르면, 김 교사는 지난 8일 이 학교 교원들에게 보낸 A4 용지 3장 분량의 집단 메시지에서 ‘(집필 관련) 1월부터 13개월간 역사교과서를 함께 쓰게 됐다. 저 말고도 46명과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모르겠다. (집필진이) 모이면 (국편이) 얼마나 비밀을 강조하는지 질릴 정도’라는 취지의 글을 보냈다.
그는 메시지 말미에 'さよなら'(사요나라)라고 일본어로 작별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 메시지를 직접 읽은 한 교사는 “친일·독재 미화 의심을 받는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으로 뽑힌 사람이, 공개 메시지에 일본말로 끝나는 인사말을 적어놔서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 교사가 국사 전문가라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직생활 10년차인 김 교사는 9년 동안 이 학교에서 <상업> 관련 교과를 가르쳐오다 올해 처음으로 1학년 4개 반의 <한국사>교과도 함께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학교 공식 홈페이지도 ‘교직원 소개’란에서 김 교사의 담당 교과를 ‘상업’으로 적어놓고 있다. 그는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역사 관련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교사는 <교육희망>의 ‘스스로 집필진에 공모를 했느냐, 초빙을 받은 것이냐’는 물음에 “(국편이) 비밀로 하라고 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나중에 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김 교사는 ‘집필진이 다 모여서 임명장을 받았느냐, 또 전체가 모이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덧붙였다.
480개 역사교육단체 등이 모인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의 방은희 사무국장은 “몇 십년간 역사를 가르쳐온 현장교사들이 수두룩한데, 이제껏 상업과목을 가르치다 역사과목을 가르친 지 겨우 몇 개월 밖에 안 되는 교사가 역사교과서를 집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밀실에서 ‘복면집필’을 하려다보니 검증도 안 된 사람들로 집필진이 채워지는 것 아닌가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방 국장은 “학생들이 실험 대상이냐?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교육부는 집필진을 당장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도후 파문이 일자 김 교사는 즉각 집필진에서 물러나가겠다는 뜻을 밝혔고,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를 신속 수리했다.
국편은 "집필진 공모에 응해 선정된 김형도 교사가, 자신으로 인해 교과서 편찬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사퇴하겠다는 뜻을 전해와 이를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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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초보’ 교사의 집필진 선정 소동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친 지 아홉 달밖에 안 된 교사가 국정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47명에 포함됐다가,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10일 밤 사퇴했다.
역사학계와 교육현장의 반대로 정상적인 집필진 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에도 집필진 공모를 강행했던 정부가 또 우스운 꼴을 보이고 만 것이다.
해당 교사를 모독할 의도는 없다. 실업계 고교에서 9년간 상업 과목을 가르쳤지만, 별도로 한국사를 공부해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지난 3월부터 한국사 과목도 가르치기 시작했다니 열정을 가진 교사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에 참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학문적인 깊이로 따지자면 훨씬 탁월한 교수와 연구자들이 있을 테고, 현장교육 경험으로 따지자면 훨씬 연륜 있는 교사들이 있을 것이다. 검정 교과서 집필진에는 보통 10년 이상의 교육 경험을 지닌 교사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결국, 충분한 자격을 갖춘 학자와 교사들이 집필진 공모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초보 교사를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달 집필진 구성을 발표하면서 “기존의 검정 교과서보다 많은 집필인력과 학계의 명망 높은 전문가로 집필진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번 일을 보면 국민을 향해 거짓말을 한 꼴이다.
이제 나머지 집필진 46명은 과연 어떤 면면일지 의구심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복면 속에 숨은 ‘깜깜이 집필진’이 실제로 자격 미달의 ‘황당 집필진’일 것이라는 의혹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역사교육을 바로잡겠다며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이런 집필진으로 어떻게 역사를 올바로 기술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모두가 시대를 거스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대통령의 뜻만 좇아 억지로 추진하다 보니 생긴 웃지 못할 희극이다.
가뜩이나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국제적인 비판 대상이 됐는데, 잇따른 무리수로 나라 꼴은 갈수록 망가지고 있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국정화를 철회하기 바란다.
[ 2015. 12. 12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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