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리두 닮았누 : 연산군의 트라우마, 박근혜의 트라우마

 

 

 

연산군의 트라우마, 박근혜의 트라우마

[게릴라 칼럼] 자서전으로 돌아본 박 대통령의 심리 변화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고도의 애착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애착이 국정 운영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조선 폭군, 연산군도 그랬다. 연산군이 애착을 가진 대상은 어머니였다. 연산군의 경우에도, 그 애착이 국정운영에 영향을 주었다. 물론 연산군이 폭정을 편 공식적 명분은 왕권강화였다. 어머니에 대한 애착은 저변에 깔린 동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 폭정의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은 사실이다.

연산군은 어머니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피가 역류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머니를 위한 복수심이 동기 중 하나가 되어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도 피가 거꾸로 솟는 딸이다. 그도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피가 역류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신문에서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기사를 접할 때마다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가십성 기사로 취급한다. 그런 가십성 기사의 정도가 심하다 싶으면, 그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피의 역류 이야기는 박 대통령 본인이 한 말이다. 3선 의원이던 2007년에 쓴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자서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대중 납치 사건, 정인숙 사건 등을 비롯해 나중에는 상식을 넘어서는 기사도 버젓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런 가십성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자식이 부모에 관한 악평을 듣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박 대통령의 경우에는 그런 사적 감정이 국정 운영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그가 역사교과서를 고치겠다고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사실에서 확인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진짜 동기가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고치는 데 있다는 점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 있는 박정희 동상. 이 공원은 5·16 쿠데타의 발상지인 육군 제6관구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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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버지에 대한 역사 기록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정치권에 진출하기 전부터였다. 육영재단 이사장이던 1990년 1월 3일에 그가 쓴 일기에서도 그 점이 나타난다. 그의 일기를 정리한 책인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에 따르면, 그는 그날 아침 국립묘지를 참배하면서 이전보다 더한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석 달 전인 1989년 10월 26일 아버지 추도식을 10년 만에 성사시킨 뒤로 처음 갖는 새해 첫 참배였기 때문이다. 10년 뒤의 성과가 나타났다는 감격 때문에 감사의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던 것이다. 1990년 1월 3일자 일기에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다.

"아버지의 업적과 뜻이 바르게 알려지고 기록되도록, 그런 일에 적어도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사고 10년 가까이 올렸던 한(恨) 맺힌 기도가 감사로 바뀐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업적과 뜻이 바르게 알려지도록 한 맺힌 기도를 올리면서 살았다. 그는 아버지가 '올바로' 기록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살았다. 이런 심정으로 여의도에 들어가고 청와대에 들어갔으니, 그가 공심보다는 사심에 가까운 마음으로 공직을 수행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동지들의 정치적 이익까지도 손상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여당·야당이라는 구분법보다 친박정희·반박정희이라는 구분법이 훨씬 더 유효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동지로 분류되는 사람들일지라도 자기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약하다고 판단되면, 그는 언제라도 칼을 들이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의 부하들이 10·26 이후에 유신체제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고 배신감을 느꼈다. 전두환·노태우로 대표되는 신군부에 대해 그는 그런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세상 현실의 냉정함을 느끼며 10·26 이후를 살았다. 이때 심정이 위의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처음 추모사업을 꾸려갈 무렵, 이 일을 도와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대부분이 날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다. 아버지가 매도당하고 주변 사람들조차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던 때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신군부를 포함해서 박정희 추모에 소극적이었던 여당 사람들에 대해 그는 배신감을 느끼며 살았다. 그가 김대중·김영삼 대통령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전두환 재산 추징을 상대적으로 과감하게 집행한 데도, 10·26 이후에 가졌던 배신감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아버지에게 잘못한 사람이야말로 야당이나 반체제보다도 더 미운 대상이다.

반면에, 자기처럼 아버지를 추모하는 사람에 대한 그의 평가는 상반된다.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 말처럼 순수한 마음 하나로 함께한 그분들이야말로 진정 용기와 소신을 지녔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적대적인 '빨갱이'일지라도 아버지만 좋게 평가해주면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서울현충원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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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애착이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4년 8월 동교동을 찾아가. 김대중 전 대통령 앞에서 아버지 시대의 일에 대해 사과했다. '아버지 시대의 일' 하면 누구나 얼른 떠올리는 것은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이다.

그가 동교동까지 찾아가서 아버지 시대의 일을 사과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도와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아버지한테 좋은 감정을 표해주기만 하면 아버지의 적이었던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러다가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복받치면 자신이 그런 사과를 했다는 것까지도 잊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점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과한 지 3년 뒤에 발간한 위의 자서전에서도 드러난다.

2004년 8월 세상이 다 알도록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과했지만, 자서전을 쓰다가 아버지에 대한 대목이 나오자 그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세상의 시선에 격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사과까지 했다는 사실에도 아랑곳없이 '아버지 시대의 일'을 변호해야겠다는 느낌을 품게 되었다. 

서두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그는 자서전에서 "김대중 납치 사건, 정인숙 사건 등을 비롯해 나중에는 상식을 넘어서는 기사도 버젓이 실리기 시작했다"며 "이런 가십성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라고 토로했다.

아버지 기념관 건립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일부러 찾아가서 사과까지 한 김대중 전 대통령 문제를 성추문인 정인숙 사건과 한데 엮으면서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는 느낌을 적은 것이다. 그의 토로는 계속된다.  

"김대중 납치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화난 목소리로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아주 못마땅해 하시던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때 아버지는 북한이 한국 정부를 궁지로 몰려고 벌인 일인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셨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김대중 납치 사건에 대한 소문은 진실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미 화해를 해놓고도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시 운운하며 아버지를 변호한 것을 보면, 그의 머릿속에서는 아버지 문제만 나오면 세상의 이치나 상식이 무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애착은 보통 수준을 넘어선 상태다. 그래서 그도 어머니 때문에 국정을 그르친 연산군을 닮아가지나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우려를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도 연산군과 비슷한 행적을 보이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 연산군 부부의 무덤.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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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은 어머니의 복수를 한다는 신념이 동기의 하나가 되어 국정을 파행으로 몰아넣고, 사화(士禍) 또는 사화(史禍)라 불리는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당시의 공안정국이 선비 사(士)자가 들어간 '士禍'로도 불리는 것은 이로 인해 개혁파 선비들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고, 역사 사(史)자가 '史禍'라도 불리는 것은 선비들에 대한 탄압이 역사기록에 대한 시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벌이는 목적은 아버지 시대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서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아버지를 위한 복수다. 그는 이 문제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그래서 국정화가 끝내 실패하거나 혹은 그것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평가가 바뀌지 않으면, 그는 연산군 못지않게 공권력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역시 사화(史禍)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벌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대한민국판 사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더욱 더 자기의 목표에 치중할 것이다. 그는 레임덕이 다가온다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더욱 더 아버지에 대한 애정으로 마음이 조급해질 것이다.

그는 자신이 연산군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해도, 아버지에 대한 그 진한 사랑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기 힘들 것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 김종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