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선제공격이라는 위험한 신화

道雨 2016. 3. 17. 11:42

 

 

 

선제공격이라는 위험한 신화

 

 

 

전쟁을 일으키는 신화는 위험하다.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신화는 말할 수 없이 위험하다.

 

1900년대 초 유럽에는 하나의 신화가 횡행하고 있었다. 먼저 공격하는 자가 승리하고, 방어에 급급하는 자는 필패라는 믿음이 유럽 지도자들을 휘감았다.

무기체계가 발달했고, 군사력을 순식간에 동원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군사 기동을 은폐·위장하는 것이 쉬워졌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위기 시에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독일군의 슐리펜 계획은 이러한 신화를 아주 잘 반영한 작전계획이었다. 프랑스와 러시아제국이라는 양대 강국과 싸워 이기려면, 우선 프랑스를 전격적으로 공격하여 제압한 후, 군사력을 동부전선에 집결하여 러시아를 패퇴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역으로 독일이 선제공격을 당하면 그쪽을 방어하다가 반대편에서 공격을 당해 패전을 피할 수 없다고 봤다.

 

선제공격만이 생존을 보장한다는 인식은 프랑스와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도 유사시 군대를 최단시간에 동원하여 상대방을 먼저 공격한다는 군사작전을 수립했다. 군비경쟁도 불이 붙었다. 1908년부터 5년간 유럽 국가들은 군비를 50% 증액했다.

 

모든 국가가 살기 위해서는 먼저 쳐야 한다고 굳게 믿으며 만들어 놓은 팽팽한 긴장상태는,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를 맞아 폭발해 버렸다. 세르비아계 분리주의자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왕위 후계자 페르디난트 공을 암살한 총알이 모든 유럽국의 작전계획에 불을 댕겼기 때문이다.

각국은 기존 계획대로 군사력을 동원했고, 지난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국제적 동맹이 강대국들을 모두 전쟁으로 끌어들였다. 일단 붙은 불은 아무도 끌 수 없었다. 순식간에 전 유럽을 전쟁 불구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는 너무도 참담했다. 1천만명이 사망하고, 2천만명이 부상당한, 인류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최악의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이 그 결과였다.

 

잭 스나이더 등 미국 국제정치학자들은 당시 유럽을 휘감은 이 믿음에 ‘공격의 신화’라는 명칭을 붙였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1차 세계대전 직전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하나의 신화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화가 인류를 세계대전의 참화로 밀어넣은 주범이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2016년 봄 한반도 상공에는 또 하나의 신화가 횡행하고 있다. 한·미 양국과 북이 선제공격을 운운하며 그 힘을 과시하고 있다. ‘공격의 신화’다.

한·미 양국은 북의 핵무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북이 이를 사용하기 전에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며, 선제공격을 공식적으로 작전계획에 도입했다. 그 계획을 시행할 능력을 지금 시험하는 중이다.

북도 맞기 전에 먼저 쳐야 산다며 선제공격을 운운하고 있다. 소형화된 핵탄두뿐만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 대기권 재진입 능력도 과시하고 있다.

 

2013년 봄 한반도는 한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미국과 북이 상호 핵무기 사용 위협을 하며 힘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난 올해 봄, 한반도 위기는 그 수준이 다르다. 양자가 선제공격을 운운하며 그 힘을 과시하고 있기에, 오늘 한반도에 횡행하는 ‘공격의 신화’는 유례없이 위험하다. 핵무기를 휘두르며 이러한 신화를 되뇌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선례가 없다. 이 신화는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를 계기로 한반도를 핵전쟁으로 밀어넣을 위험을 안고 있다.

 

‘신화’는 신화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 세계대전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핵 불구덩이로 가는 노정은 당장 중단해야 마땅하다.

대신 비핵화와 평화라는, 선례가 없는 길을 열어라. 그 첫걸음은 이성을 되찾는 것이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