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5월 4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이철희·장영자 부부를 구속했다. 전두환의 처삼촌 이규광의 처제였던 장영자는,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남편 이철희와 함께 권력을 배경으로 주로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에 접근하여 조건이 좋은 자금 조달을 제시하였고, 그 담보로 대출금의 2∼9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약속어음을 할인해 또 다른 회사에 빌려주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등의 방법으로 어음을 유통시켜 총 6,404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자금을 불법으로 조성하였음이 수사 결과 밝혀졌다.
36년 전 대한민국을 극심한 혼란으로 몰아넣은 속칭 ‘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의 전말이다.
2016년 11월 2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공범) 및 사기 미수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 설립과 운영을 위해 800억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불법으로 모집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버젓이 재단 관계자들을 참석시켜 각종 이권과 사업에 손을 뻗쳤으며, 정계·재계·관계·학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시스템을 자신들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 활용하고, 그것이 최고 권력자로부터 용인되고 있다는 것을 목격한 대기업 회장들은, 전경련이라는 자금모집 창구를 통해 속수무책으로 돈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고, 현직 장관과 국장의 목을 날리는 것을 지켜본 대학 총장들과 보직 교수들도 속수무책으로 모든 내부기준을 바꿔서라도 그녀의 딸을 입학시키고 학점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1982년 ‘장영자 사건’과 2016년 ‘최순실 사건’은 권력을 등에 업은 불법자금 조성과 전방위에 걸친 사기행각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판박이다.
그러나 그 후에 벌어진 상황을 놓고 보면 180도 다른 길로 가고 있다. 34년 전에는 전두환이 청와대 참모와 각료들 앞에서 격노하며 정권의 명운을 걸고 전면적인 조사를 벌였고, 결국 두 명의 용의자에게 사기죄에 적용되는 법정 최고형 15년을 선고함으로써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2016년 청와대의 움직임 그 어디에서도 분노와 결연함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친 대국민 사과에서 최순실을 옹호하기에 급급했다. 뿐만 아니라 국정농단의 또 다른 주역이자 최대 수혜자인 정유라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최순실도 귀국 전 독일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딸 정유라는 건드리지 말아달라"며 마치 검찰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에 대한 언급은 국민 감정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우선 첫 번째 대국민 사과문에서는 “과거에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라고 표현했다. 자신과 최순실 모두 악의가 없고 순수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며 옹호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사과문으로 여론이 더욱 악화되자, 두 번째 대국민 사과문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한다. 그러나 여전히 분노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돌이켜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의 도움을 주려는 선의였다는 것을 변명하는 동시에, 최순실이 자신의 힘들었던 시전 곁을 지켜줬다는 것을 또 한 번 강조한다. 아무리 보아도 ‘분노’와는 거리가 먼 ‘변명’에 가깝다.
정유라 문제에 대해 외면하는 것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전두환은 부인 이순자가 외삼촌 이규광의 처제 장영자와 그녀의 남편 이철희에 대해 선처를 호소했음에도 단호하게 사법처리했다. 더욱이 당시 전두환은 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이제 대통령에 오른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은 그야말로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상황에서 국민직선제로 대통령에 선출된 박근혜와 철권통치 독재자였던 전두환 중 과연 누가 국민정서를 제대로 읽고 있으며, 누가 보다 공정한 법집행을 했나? 박근혜 대통령의 상식수준과 도덕성이 전두환보다도 못한 수준이라는 것…
더욱 서글픈 것은 그런 그녀를 무려 50%가 넘는 국민이 직접 자기 손으로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것… 이게 2016년 대한민국의 허무하고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전두환의 오른팔이었던 장세동 전 경호실장은 “몇 십 년이 흐르고 나면 아마도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도 “다음 정권이 끝나갈 때쯤 되면 아마도 MB를 그리워하게 될 시점이 올 것이다”고 말했다.
2016년 가을이 된 시점에서 전두환의 ‘분노’와 ‘결단’을 부러워하고, 이명박의 ‘정치력’과 ‘뚝심’을 부러워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2012년 박근혜 정권의 탄생인 줄 알았는데 1970년대 최태민 정권의 부활로 귀결되었으니… 당연히 전두환과 이명박보다 역사적으로 후퇴할 수밖에…
전두환의 ‘분노’와 박근혜의 ‘변명’… 이보다 더 명확하게 리더십의 우열을 보여주는 건 없다. 참으로 어리석고 불쌍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