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사건 27년 만에 전모...결론은 '총체적 조작'
노태우 정권 1991년 5월8일 분신 대응책 논의
회의결과 검찰 수뇌부에 전달..."배후세력 조사"
유서필적감정 도착전에 대필자로 강기훈 지목
과거사위 "수사팀 유서대필 후보 정하고 조사"
감정 의뢰도 위법..."결과 유도한 것으로 보여"
1990년대 대표적 공안사건인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은, 당시 노태우 정권의 수사 가이드라인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1991년 발생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분신자살 사건 배후이자 유서를 대필한 이를 강기훈씨로 지목한 배경에는 당시 정권의 영향이 있었다는 게 재조사 결론이다.
21일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의 조사결과를 심의한 결과, 당시 분신의 배후를 수사하라는 가이드라인이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에 의해 수사팀에 전달됐다고 판단했다.
조사에 따르면, 노태우 정권은 1991년 5월8일 김씨의 분신자살 사건이 발생하기 1시간 전께, 대통령 비서실장, 안기부장 등이 참석한 '치안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당시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분신항거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후 회의결과는 곧바로 검찰 수뇌부에 전달됐고, 당시 정구영 검찰총장은 "최근 발생한 분신자살사건에 조직적인 배후세력이 개입하고 있는지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라"는 지시를 전국 검찰청에 내려보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일 김씨의 분신자살이 발생했고, 서울지검으로 사건이 넘어오면서 강력부 검사 전원과 공안부 검사 2명을 포함하는 대규모 수사팀이 전격 꾸려졌다. 수사 개시 후 하루이틀새 유서대필이라는 수사방향이 정해졌고, 수사도 신속하게 진행됐다.
핵심 증거인 필적 감정을 받기 전에 강씨가 용의자로 특정되기도 했다.
수사팀은 최초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감정결과가 도착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육안으로 대조한 필적의 유사성만을 근거로 유서대필자로 강씨를 지목했다.
당초 검찰은 1991년 5월13일 김씨의 여자친구 조사 과정에서 강씨가 처음 등장했고, 다음날 입수한 다른 사건 기록의 강씨 자필진술서 필적이 눈으로 볼 때 비슷해, 그해 5월15일 필적 감정을 의뢰한 후, 다음날 자택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이번 조사에서 수사팀이 몇 사람을 유서대필 후보자로 정하고 필적자료 등을 조사하고 있었으나, 마땅한 용의자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강씨의 자필진술서가 등장하자, 즉각 용의자로 지목된 사정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또 필적 감정을 의뢰하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1991년 5월10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쳐, 김씨의 정자체 필적과 전민련에서 제출한 업무일지, 유서에 대한 필적의 동일성 여부 감정을 의뢰했다. 그 뒤 5월15일에는 흘림체로 쓰인 강씨의 자필진술서 2장이 유서 필적과 동일한 지 국과수에 의뢰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언론에 나타난 검찰 태도 및 발표내용에 비춰, 검찰이 국과수와 감정 완료 전에 연락해 그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고, 감정 완료 전 단정적 판단을 외부에 알리면서 사실상 그 결과를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과수는 그해 5월17일 감정회보에서 김씨의 정자체 필적과 유서 필적의 동일성 여부를 논단할 수 없다고 했지만, 검찰은 5월20일께 감정결과를 발표하면서 "같은 것인지 판정할 수 없다는 말은 곧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이후 국과수는 그해 5월25일 김씨의 필적자료와 유서 필적이 다르다는 감정결과를 다시 보냈는데, 검찰이 언론에 공표한 내용이 국과수 감정에 영향을 미쳤거나 그러한 의도가 있었다고 보인다는 것이다.
또 전민련 수첩에 대한 감정 과정에서 국과수 감정인은 감정의뢰가 없었던 상태에서 유서와 수첩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비공식적 감정결과를 검찰에 구두로 통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그 내용을 언론에 공표했고, 사실상 향후 감정결과를 확정해 그 같은 내용을 유도했거나, 적어도 국과수 문서감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서울=뉴시스】강진아 기자 =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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