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헤라클레스로 불린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 이야기
술에 취해 낳은 아들 테세우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Aigeus)는 후사를 이을 아들을 원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생기지 않았다. 그는 델피의 아폴론 신탁소를 찾아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여사제 피티아(Phytia)가 신탁을 전했다.
“아테네로 가기 전에 포도주 부대의 주둥이를 풀지 마라!”
아이게우스는 귀향길에 트로이젠(Troizen)이라는 나라에 들렀다. 그곳은 현자 피테우스(Pittheus)의 나라였다. 피테우스 왕은 근방에서 현인으로 유명했다.
그는 그에게 아리송한 신탁의 의미를 물었다.
피테우스는 그 뜻을 즉시 간파했지만 알려주지는 않고, 대신 그날 밤 아이게우스를 대취하게 한 뒤, 딸 아이트라와 동침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게우스는 자기 옆에 아이트라(Aithra)가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곧 상황을 짐작하고, 아이트라를 깨워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바위를 들어 한쪽으로 치운 다음, 그 밑에 구덩이를 파고 칼 한 자루와 신발 한 켤레를 넣고, 다시 바위를 제자리에 놓은 다음 말했다.
“당신은 아들을 낳을 것이오.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이 바위를 들어 올릴 만큼 크거든, 이 신표를 들려 내게 보내시오! 나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요!”
테세우스의 아버지 찾기
아이게우스는 아이트라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그는 같은 날 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아이트라와 동침한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트라는 열 달이 흘러 과연 아들을 낳자, 이름을 테세우스라고 지었다. 핏줄은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테세우스는 16세가 되자, 유난히 힘이 세고 영리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특히 당시 유행하던 레슬링을 단순히 힘을 과시하는 스포츠가 아닌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 레슬링을 할 때면 그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펼쳤다. 외할아버지 피테우스는 그것을 보고, 손자가 포세이돈의 아들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이트라는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예의 바위 옆으로 데려가서 들어보라고 했다. 테세우스가 손쉽게 단숨에 바위를 들어 올리자, 밑에 있는 칼과 신발을 꺼내 그에게 주며 말했다.
“아들아, 너의 아버지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이다. 아테네로 아버지를 찾아가라! 이 신표를 갖고 가면 아버지가 너를 금방 알아볼 것이다.”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는 테세우스에게 안전하고 짧은 해로를 통해 아테네로 가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굳이 코린토스(Korithos)의 이스트모스(Isthmos)를 통과하는 위험한 육로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 길은 노상강도들로 들끓었다.
테세우스는 어렸을 때부터 헤라클레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헤라클레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열광했다.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처럼 되고 싶었다. 그에 버금가는 이름을 날리고 싶었다.
테세우스의 모험 경로
페리페테스
아버지를 찾아 길을 떠난 테세우스가 맨 먼저 도착한 곳은 에피다우로스(Epidauros)였다. 그곳에 악당 페리페테스(Periphetes)가 살고 있었다. 그는 헤파이스토스와 안티클레이아(Antikleia)의 아들로, 아버지처럼 절름발이었다.
그는 코리네테스(Korynetes)라는 청동 방망이를 하나 갖고 있었다. 그가 페리페테스라고 불린 것은 그 방망이 때문이다. 페리페테스는 ‘몽둥이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 몽둥이로 행인의 머리를 쳐 죽였다.
테세우스는 힘으로는 그를 당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재빠르고 유연했으며, 머리를 쓸 줄 알았고 침착했다. 그는 꾀를 써서 우선 페리페테스의 몽둥이를 빼앗았다. 몽둥이를 뺏긴 페리페테스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테세우스는 몽둥이로 그의 머리를 쳐 죽이고, 몽둥이는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시니스
테세우스는 이스트모스에서 두 번째 악당 시니스(Sinis)를 만났다. 그는 ‘전나무를 구부리는 자’라는 뜻의 ‘피티오캄프테스(Pityokamptes)’로 불렸다. 그가 행인들을 죽이는 방식 때문이다.
그는 행인들에게 억지로 전나무 가지를 땅바닥까지 구부리게 하다가, 도와주는 척하면서 손을 놓아버렸다. 그 순간 전나무 가지는 도로 튀기면서 행인을 허공에 날렸다.
다른 설에 의하면, 시니스가 행인을 죽이는 방식은 이보다 더 잔인했다. 시니스는 가지 두 개를 구부려, 한 가지에는 행인의 발을 묶고, 다른 가지에는 팔을 묶은 다음 손을 놓았다. 그러면 행인은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져 죽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형벌 능지처참과 비슷했다.
테세우스는 손쉽게 시니스를 제압하여, 그가 행인을 죽인 방식대로 처치했다.
시니스에게는 페리구네(Perigune)라는 예쁜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고, 테세우스를 피해 가시덤불 속으로 달아났다. 그녀는 덤불에게 자신을 보호해 주면 앞으로 덤불을 절대로 없애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덤불은 그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어 그녀를 꽁꽁 숨겨주었다.
테세우스는 예쁜 페리구네가 탐이 났다. 그는 덤불을 향해 그녀에게 밖으로 나오면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테세우스의 말에 금세 두려움을 잊고 덤불 속에서 나왔다.
나중에 그녀는 테세우스에게 멜라니포스(Mellanippos)라는 아들을 낳아주었지만, 테세우스는 얼마 후 그녀를 데이오네우스(Deioneus)에게 아내로 주어버렸다. 페리구네의 손자 이옥소스(Ioxos)가 카리아로 이주하였을 때였다. 그와 그의 후손은 할머니의 맹세를 지켜 덤불을 절대로 불태우지 않았다고 한다.
크롬미온의 암퇘지
테세우스는 이번에는 길을 똑바로 가지 않고 우회로를 택했다. 크롬미온(Krommyon)을 황폐화시켰던 야생 암퇘지를 잡기 위해서였다.
이 암퇘지는 에키드나와 티폰의 자식으로, 녀석을 길렀던 노파의 이름을 따라 파이라(Phaia)라고 불렸다. 이 암퇘지는 막 싹트는 씨앗까지 먹어버려 아주 골칫거리였다. 농부들은 이 암퇘지가 두려워 밭을 경작하려고 하지 않았다. 테세우스는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암퇘지를 단칼에 죽여 버렸다.
스키론
테세우스가 다음에 도착한 곳은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스키론(Skiron) 절벽 길이었다. 절벽이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스키론이라는 악당 때문이었다.
그는 행인을 붙잡아 통행세 명목으로 자신의 발을 씻기게 하다가, 갑자기 발로 절벽 밑으로 밀어버렸다. 절벽 밑에는 엄청나게 큰 바다거북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녀석은 떨어지는 행인을 받아먹고 살았다. 테세우스는 그의 발을 씻기는 척하다가, 갑자기 그의 발을 잡고 그를 거꾸로 절벽 밑으로 던져버렸다.
케르키온
테세우스는 이스트모스에서는 별다른 일을 겪지 않았다. 그가 이스트모스를 거쳐 엘레우시스(Eleusis)에 도착하자, 케르키온(Kerkyon) 왕이 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그는 레슬링의 달인이었다. 그는 행인에게 강제로 레슬링 시합을 하자고 요구해서, 행인이 지면 목숨을 빼앗았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를 이기지 못했다. 그는 행인을 시합 중에 죽이거나 시합 후에 죽이곤 했다.
하지만 케르키온은 천부적인 레슬링 선수 테세우스를 당할 재간이 없었다. 테세우스는 특히 자유형에 강했다. 그는 케르키온을 허리 돌려치기로 잡아 땅바닥에 메쳐 꽂아 죽였다.
악당 다마스테스
엘레우시스 근처 케피소스(Kephissos) 강가에 에리네오스(Erineos)라는 도시가 있었다. 이곳 큰길가에는 다마스테스(Damastes)라는 악당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는 여행객을 구슬려 자신의 집에 하룻밤 묵게 했다. 그는 여행객이 깨어 있을 때는 갖은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여독에 지친 여행객이 깊이 잠이 들면, 조심스럽게 그의 이불을 걷고, 침대와 그의 키를 비교했다.
여행객은 살아남으려면, 그 키가 침대 길이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아야 했다. 그는 만약 여행객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사지를 강제로 늘여 죽였고, 길면 잘라 죽였다.
여행객의 키가 침대 길이와 일치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다마스테스의 손에 죽은 여행객들은 대부분 키가 침대 길이보다 작았다. 그래서 그는 ‘잡아 늘이는 자’라는 뜻의 프로크루스테스(Prokrustes)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다마스테가 여행객들에게 했던 방식대로 그를 침대에 뉘여 잡아 늘여 죽였다. 이 이야기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격언이 나왔다. 그것은 ‘융통성 없는 교조주의적인 생각’이라는 뜻이다.
피탈리다이
테세우스는 악당 다마스테스를 해치우고 나오다가, 근처에서 피탈로스(Phytalos)의 자손들을 만났다. 피탈로스는 데메테르 여신이 하데스에게 납치당한 딸 페르세포네를 찾아 헤맬 때, 그녀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서 잘 대접해 주었던 인물이다.
데메테르 여신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에게 무화과나무를 주었다. 그의 후손들 피탈리다이(Phytalidai)는 조상 피탈로스 덕분에 오랫동안 무화과나무에 대한 지배권을 누렸다.
피탈리다이는 테세우스를 집에 초대해서 환대하고, 그의 살인죄를 정화시켜 주었다. 그가 죽인 자들은 모두 악당이었지만, 테세우스가 살인을 한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아테네에 도착하다
황소 두 마리를 공중에 던지다
테세우스는 이렇듯 많은 악당들을 물리치고, 드디어 아테네에 도착하여, 곧바로 명목상의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궁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로 향했다. 그는 그때 아테네 남자들이 즐겨 입었던 투니카가 아니라 긴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 아테네인들의 눈에는 그가 여자처럼 보였다.
그가 아폴론 신전 옆을 지나가자, 지붕을 수리하던 자가 그를 보더니 히죽거리며 여자라고 놀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근처 우마차로 가더니, 황소 두 마리를 멍에에서 풀어 그것을 공중에 던졌다. 황소는 지붕보다 더 높이 솟아올랐다가 땅으로 떨어져 즉사하고 말았다. 그 후 테세우스를 조롱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게우스를 비롯하여 아테네인들은, 이 청년이 이스트모스를 거쳐 아테네로 오는 길에 버티고 서서, 행인들을 괴롭히던 악당들을 해치운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를 열렬하게 환영했다.
아이게우스는 그를 궁전에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그는 테세우스의 출신이나 이름을 묻지 않았다. 손님에게 제대로 접대를 하고나서야 그것을 묻는 것이 그 당시 예법이었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도 똑같은 이유로 침묵을 지켰다. 손님도 충분하게 대접을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의 출신을 밝히는 것이 당시 예법이었다.
악녀 메데이아의 간계
하지만 이런 예법 때문에 테세우스는 하마터면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다. 그 당시 아테네에는 악녀 메데이아가 망명객으로 살고 있었다.
아이게우스는 델피 신탁소를 거쳐 아테네로 돌아오다가, 코린토스에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에게 약속을 하나 받아냈다. 아이게우스가 자신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면, 그에게 원하는 아들을 낳아준다는 것이다.
메데이아는 이렇게 피난처를 미리 마련해 둔 다음,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두 아들을 죽이고, 용이 끄는 하늘을 나는 수레를 타고 아테네로 도망쳤다.
그녀가 아이게우스에게 코린토스에서 자신에게 한 약속을 상기시키며 보호를 요청하자, 그는 그녀를 받아주고, 아내로 삼았다.
메데이아도 얼마 후 아이게우스에게 약속대로 메도스(Medos)라는 아들을 낳아주었다. 그들이 함께 산 지 벌써 17년이 흘렀다.
크레타의 황소를 죽이다
메데이아는 특유의 예지력으로 일약 아테네의 영웅으로 떠오른 청년이 누군지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테세우스의 정체가 밝혀지면, 아들 메도스의 왕위 계승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테세우스를 없애기 위해, 아이게우스의 동생 팔라스(Pallas)가 형에게 품고 있는 역심을 이용하기로 했다. 팔라스는 그동안 50명의 아들들과 함께 형 아이게우스의 왕위를 호시탐탐 노려왔다.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에게 말했다.
“저런 영웅은 두고두고 당신에게 동생 팔라스 같은 골칫거리가 될 거예요. 후환은 아예 싹부터 자르는 게 좋아요.”
아이게우스는 지금까지 동생과 조카들에게 당한 일들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이어 테세우스를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고, 그를 없앨 계획을 세웠다. 바로 그때 그의 머릿속에 헤라클레스가 크레타에서 잡아와 마라톤 지방을 휘젓고 다니는 황소가 떠올랐다.
당시 헤라클레스가 그 황소를 잡아와 에우리스테우스 왕에게 바치자, 왕은 다시 그것을 헤라에게 바쳤다. 그러자 헤라클레스가 잡아온 것을 좋아할 리가 없었던 헤라는 바로 그 황소를 풀어주었다.
고삐 풀린 황소는 아테네 근처 마라톤으로 달려가더니,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많은 영웅들이 황소를 잡으려 했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을 뿐이다.
아이게우스는 이 황소를 이용해 테세우스를 해치우기로 작정했다. 예전에 크레타의 왕자 안드로게오스도 이 방법으로 제거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테세우스는 아이게우스와 메데이아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출정하자마자 단숨에 황소를 제압해서 가져왔다.
아이게우스가 테세우스의 신표를 보다
메데이아는 집요했다. 그녀는 이번에는 축하 파티에서 포도주에 독을 타서 아이게우스에게 건네면서, 테세우스에게 권하도록 했다. 바야흐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순간이었다.
테세우스가 막 잔을 들어 마시려는 순간, 아이게우스는 우연히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을 보았다. 그것은 트로이젠에서 자신이 바위 밑에 넣어둔 바로 그 칼이었다. 깜짝 놀란 아이게우스는 황급히 테세우스에게 달려가 손을 쳐 잔을 떨어뜨리고, 아들과 감격의 포옹을 했다.
테세우스가 숙부 팔라스의 쿠데타를 진압하다
아테네 시민 모두가 아버지 아이게우스와 아들 테세우스의 만남을 기뻐하고 축하했다. 하지만 아이게우스의 동생 팔라스와 그 아들들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게우스가 죽으면 자신들이 권력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나타난 이상 그것은 허황된 꿈에 불과했다.
그들은 마침내 은밀하게 쿠데타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어디나 이탈자가 있는 법, 레오스(Leos)라는 자가 그들을 배반하고, 테세우스에게 쿠데타 계획을 폭로했다. 그래서 테세우스는 그들의 본거지를 급습하여, 쿠데타 세력 대부분을 소탕했다. 팔라스와 그의 아들들만 겨우 외국으로 달아났을 뿐이다.
이후 아테네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쿠데타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로 아테네의 평화는 깨지고 말았다.
크레타와 아테네의 전쟁
테세우스가 태어나기 조금 전, 위에서 말한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네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크레타에서 선진 도시 아테네로 유학을 왔던 셈이다.
아이게우스가 언젠가 아테네에서 영웅들을 위해 경기를 개최하자, 안드로게오스는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아이게우스는 안드로게오스가 장차 자기 왕위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덜컥 겁이 난 아이게우스는 그를 마라톤으로 보내 황소를 잡아오도록 했다.
안드로게오스는 용감하게 출정했지만, 불행하게도 황소 뿔에 받혀 죽고 말았다. 분노한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아이게우스를 응징하기 위해 아테네를 공격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아테네는 전세도 불리했지만, 엎친데 겹친 격으로 시내에 역병까지 나돌았다. 아이게우스가 델피에 재앙을 피할 방도를 묻자, 미노스가 요구하는 조건은 모두 들어주라는 신탁이 나왔다.
미노스는 휴전을 대가로 9년마다 아테네의 처녀와 총각 일곱 명씩을 요구했다. 이어 조공으로 받은 그들을 미로 감옥(미궁)에 가두어둔 크레타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에게 먹잇감으로 주었다.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라비린토스
괴물 미노타우로스는 머리는 황소 몸은 사람 모습이었으며, 황소와 인간 여인의 자식이었다. 괴물의 아버지인 황소는, 바로 헤라클레스가 12가지 과업 중 하나로 에우리스테우스에게 잡아 갖다 주었던 크레타의 황소였다.
미노타우로스의 탄생 비화에 대해서는 이미 ‘헤라클레스의 모험’에서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이 대목에서 좀 더 자세하게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미노스는 크레타의 왕이 되기 전 왕위를 놓고 형제들과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포세이돈 신에게, 황소 한 마리를 바다에서 튀어나오게 해주면, 왕위에 오른 다음 그 황소를 다시 바치겠다고 기도했다.
미노스가 형제들을 모아놓고 기도하자, 포세이돈은 그에게 멋진 황소 한 마리를 보내주었다. 미노스는 그 덕택으로 크레타의 왕이 되었지만, 그 황소를 다시 바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 황소를 씨소로 쓰기 위해 우리에 가두고, 포세이돈에게는 다른 황소를 잡아 바쳤다.
그러자 분노한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Pasiphae)가 그 황소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파시파에는 때마침 크레타에 망명 온 그리스 최고의 건축가 다이달로스에게 나무로 암소의 모형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다이달로스의 기술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가 단풍나무로 만든 암소 모형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파시파에는 속이 빈 나무 암소 안으로 들어가 황소와 사랑을 하여, 마침내 괴물 아들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아내가 괴물을 낳자, 미노스 왕은 부끄러웠다. 백성들이 괴물을 보고 쑥덕거릴 것이 뻔했다. 그는 다이달로스를 불러 한 번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게 바로 ‘라비린토스(Labyrinthos)’라고 불렸던 미로 감옥(미궁)이었다. ‘미로’를 뜻하는 영어의 ‘Labirinth’는 바로 ‘라비린토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감옥이 완성되자, 미노스 왕은 미노타우로스를 그곳에 가두고, 거친 성정을 달래기 위해 9년마다 한 번씩 인육을 먹잇감으로 주었다.
괴물의 먹잇감으로 자원하다
테세우스가 숙부 팔라스의 쿠데타 음모를 진압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운명의 그날이 왔다. 벌써 27년째가 되어 세 번째로 크레타에 공물을 바쳐야 하는 역사적인 날이 찾아왔던 것이다. 인질로 잡혀갈 처녀총각은 추첨으로 정해졌다.
일설에 의하면, 아테네 시민들이 테세우스가 그 추첨에서 제외되자 거세게 항의했다. 테세우스가 그걸 보고 자신도 그 대상이 되겠다고 나섰다. 결국 그는 추첨에서 일곱 명의 총각 중 하나로 선발되었다.
다른 설에 의하면, 인질을 선발하기 위해 미노스 왕이 아테네로 직접 왔다. 왕은 테세우스가 외모도 잘생겼을 뿐 아니라 체격까지 건장해서 그를 선택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설에 의하면, 테세우스는 일곱 명의 청년 중 하나로 가겠다고 자원했다.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아버지 아이게우스가 아무리 말려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아이게우스 왕은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들에게 부탁했다.
“나는 오늘부터 바닷가 절벽에서 크레타 쪽을 보며 너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니 돌아올 때 살아 있으면 키잡이에게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꿔 달도록 해라. 조금이라도 빨리 네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알고 싶구나.”
미노스와 테세우스의 힘겨루기
테세우스가 크레타에 가게 되는 과정이나, 그곳에서 겪는 모험에 대해서는 설이 아주 다양하다. 여러 설들이 서로 모순이 될 정도이다.
어떤 설에 의하면, 미노스 왕이 인질들을 배에 태워 크레타로 직접 데려갔다.
미노스는 크레타로 가는 도중 처녀 인질 중 한 명인 페리보이아(Periboia)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는 메가라의 왕 알카토오스(Alkathoos)의 딸로 테세우스와 친척이었다.
테세우스는 미노스가 자꾸 그녀에게 치근덕거리자, 그녀를 적극 보호하고 나섰다. 미노스 왕은 테세우스에게 분노를 표시하고, 테세우스도 미노스에게 불쾌감을 표시했다. 두 사람 사이에 가벼운 입씨름이 벌어졌다. 급기야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발끈한 미노스가 먼저 자신의 출생을 증명하기 위해, 제우스에게 자신이 아들이라는 징조를 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제우스가 번개와 천둥을 쳐서 대답했다.
의기양양해진 미노스는 이번에는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 바다에 던지고는, 테세우스에게 포세이돈의 아들이 확실하다면 바다에 들어가 그 반지를 다시 찾아오라고 요구했다.
미노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테세우스가 바다에 뛰어들자, 돌고래 떼가 나타나 테세우스를 바다 궁전으로 안내했다. 그러자 바다의 요정들 네레이데스(Nereides)가 그에게 미노스의 반지를 돌려주었다.
포세이돈의 왕비 암피트리테(Amphitrite)는 덤으로 테세우스에게 보석이 달린 왕관을 선물로 주었다.
테세우스는 다시 배로 돌아와 미노스에게 반지는 돌려주었지만, 왕관은 자신이 차지했다.
테세우스와 타우로스의 대결
4세기에 실존했던 아테네의 역사가 필로코로스(Philochoros)에 따르면, 미노스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부하이자 함대 사령관이었던 타우로스(Tauros)를 미워했다. 타우로스는 아주 거칠었고 천부적인 싸움꾼이었다. 그는 해마다 크레타에서 개최되는 운동경기에서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었다.
미노스는 타우로스가 자기 아내 파시파에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고 의심했지만, 그를 공개적으로 잡아들일 수도 없었다. 타우로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세우스가 인질들과 함께 크레타에 도착한 직후, 우연히 연례행사였던 운동경기가 개최되었다. 미노스는 테세우스에게 그 경기에 참가하도록 명령했다. 그는 은근히 테세우스가 눈엣가시 같은 타우로스를 혼내주기를 바랬다.
테세우스가 예상대로 경기에서 타우로스를 가볍게 제치고 우승하자, 미노스는 열광했다. 그는 자진해서 앞으로는 아테네에서 인신 공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테세우스에게 빠져버린 아리아드네 공주
미노스에게는 아리아드네(Ariadne)와 파이드라(Phaidra)라는 딸이 있었다. 그중 아리아드네가 경기에서 테세우스가 타우로스와 겨루는 것을 보고, 그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는 테세우스가 괴물을 죽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라비린토스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래서 얼른 감옥을 설계한 다이달로스에게 달려가 도움을 간청했다.
다이달로스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테세우스를 돕고 싶었다. 비록 자신이 아테네에서 추방된 신세이지만, 테세우스와는 자신과 동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리아드네에게 실꾸리 하나를 주면서 말했다.
“공주님, 그 감옥은 내가 만들었지만, 나도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있습니다. 테세우스에게 이 실꾸리를 이용하라고 하세요. 실을 감옥 입구에 묶고,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세요. 괴물을 죽인 다음에는, 실을 따라 다시 나오면 됩니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꾸리를 건네주면서 간청했다.
“아무 조건은 없어요. 제발 절 아테네로 데려가 아내로 삼겠다고 약속만 해주세요.”
결국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무사히 라비린토스를 빠져나왔다. 테세우스는 약속한 대로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아테네로 향했다.
크레타 군사들은 나중에 테세우스가 탈출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를 추격할 수 없었다. 테세우스가 출항하기 전 미리 크레타의 모든 함선 밑에 구멍을 뚫어놓았기 때문이다.
낙소스 섬에 아리아드네를 버리다
하지만 아리아드네는 아테네로 갈 운명이 아니었다. 그녀가 테세우스와 헤어진 곳은, 식수를 조달하기 위해 잠시 들른 낙소스(Naxos) 섬이었다.
왜 그가 아리아드네와 헤어졌는지는 불분명하다. 여러 설이 있기 때문이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가 테세우스의 꿈에 나타나 그녀를 놓고 가라고 했다거나, 낙소스 섬에서 그녀를 납치했다거나, 테세우스에게서 강제로 빼앗아갔다는 설도 있다.
또한 그녀가 낙소스 섬에서 디오니소스 신전의 사제 오이나로스(Oinaros)와 결혼했다거나, 아테네에 파노페우스(Panopeus)의 딸 아이글레(Aigle)라는 연인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가장 잘 알려진 설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스스로 버렸다. 그는 그녀를 아테네로 데려갈 수 없었다. 아니,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무턱대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사랑을 구걸하는 아리아드네가 부담이 되었다. 사랑을 위해 가족과 조국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여인에게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튕겨야 제 맛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테세우스는 결국 잠든 아리아드네를 낙소스 섬에 버려두고 떠났다.
얼마 후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가 낙소스 섬에 들렀다. 그는 테세우스로부터 버림받아 깊은 슬픔에 젖어 있는 아리아드네를 발견하고는, 그녀를 위로하며 아내로 삼았다.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자살
아테네가 멀리서 아스라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테세우스는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꾸지 못했다. 그는 낙소스에 버리고 온 아리아드네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아버지의 부탁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
아들이 크레타로 떠난 후, 노령의 아이게우스는 날마다 절벽에 나와, 크레타 쪽만을 응시하며 아들의 무사 귀환을 바랐다. 마침내 아들이 탄 배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재빨리 돛의 색깔을 살펴보고, 깊은 충격에 빠졌다. 여전히 검은 색이었기 때문이다.
단 하나 남은 후계자를 잃은 그는 더 이상 살 희망이 없었다. 그는 곧바로 절벽에서 바다로 몸을 던졌다. 그 후부터 아이게우스가 자살한 바다는 그의 이름을 따 ‘aigaion pelagos’로 불렀다. 그것은 영어로는 ‘Aegean Sea’, 우리말로는 ‘에게 해’라는 뜻이다.
아테네의 항구 팔레론(Phaleron)에 상륙한 테세우스는, 무사 귀환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우선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야 했다.
아마존족을 정벌하다
아테네의 왕이 된 후에도 테세우스의 모험심은 지칠 줄 몰랐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르고 호의 모험과 칼리돈(Kalydon)의 멧돼지 사냥이지만, 테세우스가 눈에 띄는 활약을 한 것 같지 않다. 참가자 명단에는 있지만 활동상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는 오히려 그 이후 벌어진 아마존족 정벌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아마존족은 흑해의 남쪽 해안의 테미스키라(Themiskyra)에 있는 여인 왕국을 말한다. 그들은 활쏘기에 방해가 된다고 한 쪽 가슴을 절제할 정도로 타고난 여전사였다.
아마존족은 헤라클레스가 한 번 휘젓고 간 후여서, 세력이 많이 약화되어 있었다. 테세우스는 아마존족을 공격하여, 여왕 안티오페(Antiope)를 인질로 잡아왔다.
그러자 아마존족은 군사를 다시 정비하여 아테네까지 테세우스를 쫓아왔다. 그들은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고, 최후의 결전을 벌였지만, 결국 패배하고 군사력의 태반을 잃었다.
아마존족의 새 여왕이자 안티오페의 여동생 멜라니페(Melanippe)는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메가라(Megara)로 도망치지만, 화병을 얻어 곧 죽고 말았다.
인질로 잡아온 안티오페도 얼마 살지 못했다. 그녀는 테세우스의 아내가 되어 히폴리토스(Hippolytos)라는 아들을 하나 낳아주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히폴리토스는 유모의 손에 무럭무럭 자랐다.
세월이 한참 흘러, 테세우스와 크레타의 파이드라 공주 사이에 혼담이 오갔다. 크레타의 왕은 이제 미노스가 아니라, 그의 아들 데우칼리온(Deukalion)이었다.
데우칼리온은 테세우스가 자신의 여동생 아리아드네를 버린 적이 있지만, 그와 매제가 되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건 정치적인 계산에서였다. 파이드라의 아들들이 테세우스의 합법적인 후계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는 이미 아마존 여왕 안티오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히폴리토스를 트로이젠으로 보내, 아들이 없던 외할아버지 피테우스(Pittheus)의 후계자가 되도록 했던 것이다.
파이드라와 히폴리토스
결국 테세우스는 바라던 대로 파이드라를 후처로 맞이하여, 얼마 후 두 아들 데모폰(Demophon)과 아카마스(Akamas)를 두었다.
이렇게 아테네의 후계 구도가 공고화되자, 외국에 망명해 있던 아이게우스의 동생 팔라스와 그의 아들들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들은 아테네로 잠입하여,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반란을 꾀했지만 실패하고, 테세우스의 손에 살해되고 말았다.
테세우스는 혈육을 살해한 죄로 1년 동안 아테네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이 기간을 외할아버지가 다스리는 트로이젠에서 보냈다.
테세우스는 후처 파이드라가 트로이젠에 있는 전처의 아들 히폴리토스에 대해 전혀 반감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트로이젠의 후계자로 정해진 이상, 히폴리토스는 파이드라의 아들들이 아테네의 왕위를 계승하는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에게 그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품고 있었다.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가 엘레우시스 비교에 참가하기 위해 아티카에 왔을 때, 얼핏 보고 첫눈에 그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녀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한 구석에 아프로디테 여신의 신전을 세우고, 맑은 날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트로이젠 쪽을 바라보며 히폴리토스를 그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남편 테세우스를 만난다는 구실로 트로이젠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녀는 트로이젠 인들로부터 히폴리토스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전해 듣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히폴리토스가 처녀신 아르테미스를 숭배하여 독신으로 살기로 맹세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는 아르테미스 여신처럼 혼자 사냥을 즐기며 살았다. 그는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바치는 제사를 경멸했고,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당연히 새어머니인 자신에게는 눈길 하나 던져주지 않았다. 파이드라는 애가 닳아 점점 여위어갔다.
파이드라의 유모가 안타까운 마음에, 은밀하게 히폴리토스를 찾아가 파이드라의 애타는 마음을 전했다. 히폴리토스는 깜짝 놀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유모의 말을 막았다. 이어 유모와 파이드라를 싸잡아 마녀라고 꾸짖으며, 사악한 말을 들었으니 귀를 씻어야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끔찍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파이드라는 유모의 말을 전해 듣고, 엄청난 모욕감을 느끼며 절망했다. 광기에 빠진 그녀는 남편이 없는 사이 유서 한 장을 써놓고 목매 자살했다.
테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남긴 유서를 읽었다. 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이 없는 사이 히폴리토스가 제 방에 들어와 저를 욕보였습니다. 저는 수치심을 참을 수 없어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납니다.”
분노한 테세우스는 당장 히폴리토스를 트로이젠에서 추방했다. 아들이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실제 아버지 포세이돈 신에게 히폴리토스를 죽여 달라고 기도했다.
히폴리토스는 마침 트로이젠을 떠나기 위해 마차를 타고 해안을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다에서 황소 한 마리가 불쑥 튀어 나왔다. 말들이 황소를 보고 놀라 요동을 치자 마차가 뒤집혔다. 히폴리토스는 고삐에 목이 엉켜 질질 끌려가다가, 결국 길가에 있던 바위에 부딪혀 목숨을 잃고 말았다.
테세우스가 아르테미스 여신으로부터 진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후였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
테세우스는 페이리토오스(Peirithoos)와 아주 진한 우정을 과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페이리토오스는 라피타이 족의 왕 익시온(Ixion)의 아들이었다. 그는 평소 테세우스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는, 그의 용기를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는 마라톤 지방에서 가축 떼를 훔쳐 테세우스를 유인했다. 테세우스가 자신을 추격하자, 그는 조금 도망치다가 몸을 돌려 그와 맞섰다. 한참을 싸웠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자, 그들은 서로에게 매료당해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다.
페이리토오스의 결혼식 날 켄타우로스(Kentauros)족과 라피타이(Lapithai)족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켄타우로스족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가, 페이리토오스의 신부 히포다메이아(Hippodameia)를 겁탈하고, 다른 여자들을 납치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는 이때 페이리토오스를 도와 수많은 켄타우로스족을 해치웠다.
페이리토오스는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친구 테세우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언젠가 그들은 자신들의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 제우스의 딸을 납치하기로 결심했다.
형뻘이었던 테세우스가 먼저 헬레네를 지목했다. 그 당시 헬레네는 열 살이나 열두 살에 불과했다. 테세우스는 페이리토오스의 도움으로 쉽게 헬레네를 납치했다. 그는 그녀를 아티카의 아피드나이(Aphidnai)로 데려가서 어머니 아이트라(Aithra)에게 맡긴 다음, 페이리토오스의 납치를 도우러 갔다.
지하 세계를 방문하다
페이리토오스는 수많은 제우스의 딸 중에서 하필이면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의 왕비 페르세포네를 원했다. 테세우스는 내키지 않았지만 페이리토오스를 따라 지하 세계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친구를 돕기로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펠로폰네소스 반도 끝자락 타이나론 곳 근처 입구를 통해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 페이리토오스가 찾아온 용건을 말하자, 하데스는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그들에게 친절하게 자리를 권하며, 시종에게 신선한 음료를 가져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하데스가 가리킨 돌 의자에 앉자마자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었다. 쇠사슬이나 뱀이 그들을 의자에 꽁꽁 묶었다는 설도 있고, 살이 의자의 돌에 파고 들어갔다는 설도 있다.
가장 유력한 설에 의하면, 그들은 의자에 앉자마자 지하 세계에 온 목적뿐 아니라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고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그것은 망각의 의자였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는 아마 헤라클레스가 아니었다면 지하 세계에 그대로 영원히 머물렀을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열두 번째 과업으로 케르베로스를 데리러 지하 세계로 왔을 때였다. 그가 케르베로스를 어깨에 메고 돌아서는 순간, 의자에 앉아 있는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를 발견했다. 그는 먼저 테세우스를 의자에서 풀어낸 다음, 페이리토오스에게 손을 댔다. 그 순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는 더 이상 감히 페이리토오스를 의자에서 풀어줄 수 없었다.
다른 설에 의하면, 헤라클레스는 테세우스가 그렇게 된 것이 자신의 탓으로 생각했다. 그는 테세우스가 자신의 행동을 따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페이리토오스는 그대로 두고, 테세우스만 흔들어 깨워 지상으로 데려왔다.
스키로스에서 비참한 말년을 보내다
테세우스가 없는 사이, 헬레네의 오빠 폴리데우케스와 카스토르가 스파르타와 아르카디아의 군대를 이끌고 아피드나이를 정복했다. 그들은 누이동생 헬레네를 구해 갔을 뿐 아니라, 그녀의 유모로 쓰기 위해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도 납치해 갔다.
그들은 또 아테네로 쳐들어와, 페테오스(Peteos)의 아들 메네스테우스(Menestheus)를 왕으로 옹립했다. 얼마지 않아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테세우스가 아테네로 돌아왔지만, 많은 시민들이 그를 외면했다.
메네스테우스는 어린 헬레네를 납치하여 전쟁을 야기한 테세우스를 비판하며, 아테네 시민들이 그에게 반감을 품도록 선동했다.
그는 또 테세우스가 강제로 아테네에 편입한 지역의 사람들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아테네에는 더 이상 테세우스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는 은밀하게 아직 어린 두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를 에우보이아의 엘레페노르(Elephenor)에게 보내 부탁한 다음, 스키로스(Skyros) 섬으로 향했다. 스키로스는 한때 테세우스의 친 할아버지 스키리오스(Skyrios)가 지배하던 곳으로,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영지와 영향력이 일부 남아 있었다.
그는 스키로스를 발판으로 재기하고 싶었다. 그는 스키로스의 리코메데스(Lykomedes) 왕에게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재산을 요구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리코메데스 왕은 겉으로는 그를 환영했지만, 사실은 테세우스의 명성을 무척 시기하고 있었다. 스키로스 섬의 백성들이 테세우스에 대해 품고 있는 존경심도 마음에 거슬렸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해안 절벽을 산보하고 있었을 때, 리코메데스는 갑자기 테세우스를 절벽 아래 바다로 밀어 떨어뜨려 죽였다.
테세우스의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는,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자, 엘레페노르를 따라 참전하여, 외할머니 아이트라를 구해왔다. 아이트라는 성년이 된 헬레네를 따라 트로이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왕 메네스테우스도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지만 전사하고 말았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 후 아테네로 돌아간 데모폰이 메네스테우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군을 독려하다
아테네인들은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타고 돌아온 배는 잘 보관하여 기념물로 삼으면서도, 테세우스에 대해서는 몇 세대가 지나도록 좀처럼 과거의 존경심을 보이지 않았다.
상황은 마라톤 전투 때 역전되었다.
많은 병사들이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테세우스 덕분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테세우스가 자신들과 함께 페르시아 군인들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싸우는 환영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테세우스의 뼈를 수습하여 아테네로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스키로스에 사는 그 누구도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아테네의 장군 키몬(Kimon)도 테세우스의 무덤을 찾아 스키로스로 왔다. 그는 어느 날 하늘을 선회하던 독수리 한 마리가 갑자기 어떤 언덕에 앉더니 부리와 발톱으로 쪼고 할퀴는 것을 보았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병사들을 시켜 그 장소를 파 보았더니, 바로 그곳에 사람의 뼈가 안장되어 있었다. 그는 그 뼈를 테세우스의 유골이라고 생각하고 아테네로 모셔갔다.
아테네인들은 그때부터 테세우스를 신처럼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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