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은 시대정신…윤석열 총장이 되돌릴 수 없다
2017년 대선 민주당 ‘권력기관 개혁’ 공약 눈길
“수사권-기소권 분리해 검찰과 경찰 견제와 균형”
“검찰은 기소·공소유지 위한 2차적·보충적 수사권”
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도 “고강도 검찰개혁”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받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행정법원에 무효 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를 신청했습니다. 법원은 12월 22일 심문을 하고 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할 것입니다.
법원이 집행정지를 받아들이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곧바로 복귀합니다.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윤석열 총장은 정직 상태에서 재판을 할 것입니다. 재판이 2개월 안에 끝나지 않으면 2개월 뒤에 검찰총장직에 복귀할 것입니다.
윤석열 총장이 스스로 검찰총장직을 사퇴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없을 것 같습니다.
징계위원회 발표 직후 윤석열 총장은 이완규 변호사를 통해 “임기제 검찰총장을 내쫓기 위해 위법한 절차와 실체 없는 사유를 내세운 불법 부당한 조처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법치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성전(聖戰)’에 나선 전사처럼 결연한 태도입니다. 윤석열 총장은 자신이 물러나면 검찰이 정치권력에 굴복하는 것이 되고, 앞으로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 가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끝까지 버텨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거취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찰 수사권 축소라는 두 개의 커다란 줄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을 둘러싼 진통은 우연히 시기가 겹쳤을 뿐, 두 사안 사이에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12월 15일 <한겨레> 정치부 서영지 김원철 기자가 무척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썼습니다.
▶바로가기 : 이젠 ‘수사-기소 완전 분리’…‘검찰개혁 시즌2’ 준비하는 민주당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974398.html 그렇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의 초점을 ‘사람’이 아니라 ‘제도’에 맞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윤석열 총장이 검찰총장으로 복귀하든 복귀하지 못하든, 검찰총장직을 사퇴하든 사퇴하지 않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은 예정된 수순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2017년 대통령 선거 공약집을 찾아보았습니다.
‘권력기관 개혁’의 첫 번째 약속은 “권력 눈치 안 보는, 성역 없는 수사기관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입니다. 내용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의 비리 행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전담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하여 검찰의 권력 눈치 보기 수사 차단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검찰과 경찰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검·경수사권 조정
-검찰은 원칙적으로 기소권과 함께 기소와 공소유지를 위한 2차적·보충적 수사권 보유
* 검찰 인사 중립성·독립성 강화
-독립된 검찰총장 후보위원회를 구성하여 검찰총장 임명에 있어 권력개입을 차단하고 검찰총장 국회 출석 의무화 추진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추진하고 검사의 외부기관 파견 억제
-검찰총장추천위원회와 검찰인사위원회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검사징계위원회와 감찰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여 검사 징계 실효성 확보
* 검찰의 외부 견제기능 강화
-재정신청 대상을 현행 고소사건뿐만 아니라 고발사건까지 확대 적용하고, 공소유지변호사 제도 부활
-중대 부패범죄에 대한 기소법정주의를 도입하고, 검찰의 무리한 기소/불기소를 통제하기 위해 검찰시민위원회 법제화
* 권력기관의 수사 방해 행위 제어-청와대 등 국가비밀 보유 기관에 대한 압수수색 부당 거부 제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검찰과 경찰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검·경수사권을 조정하겠다”는 대목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국 검찰이 1차 수사권, 직접 수사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런 공약은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에 대한 인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2011년 출판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검찰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가장 우선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검찰 권한의 분산과 견제라는 또 다른 검찰개혁 과제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이 검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검찰이 이에 부응하여 적극적으로 정치화되면서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도, 검찰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도, 검찰 권한 행사 과정에서 위법이나 권한남용이 발생하는 것도, 비리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자정 능력이 없는 것도 모두 근원적으로 검찰이 형사 절차상, 그리고 한국의 권력 지도에서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초과 권력이 검찰이 갖는 문제의 뿌리인 것이다. 만일 검찰 권한의 분산과 견제라는 검찰개혁 과제와 함께 진행되지 않을 경우 검찰의 자율성 증대는 곧 검찰의 권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권력에 의한 검찰 권한 견제라는 장치가 하나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주면 검찰이 저절로 민주화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었다. 검찰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기득권 세력 중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인회 교수의 생각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검찰 권한의 분산과 견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문재인 대통령이 왜 집권 초기에 검찰 권한을 분산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입니다. ‘적폐청산’이 시급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은 하지만, 어쨌든 저는 지금도 그 부분은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중반 두 차례에 걸쳐 사회부에서 법조 출입 기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검찰의 ‘흑역사’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당시 공안부 검사들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피의자들에게 가혹 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줬습니다. 특수부 검사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나 사직동팀에서 내려오는 ‘하명 수사’를 하면서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오히려 정권에 잘 보이려고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안기부와 함께 공안 정국을 조성했습니다. 민생경제 침해 사범이라는 명목으로 물가 단속을 했습니다. 라면에 공업용 쇠기름을 썼다며 라면 회사 사장들을 무더기로 구속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조직 폭력배들을 잡아들였습니다.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을 명분으로 미성년자를 고용한 유흥업소를 단속했습니다.
당시 검찰은 정권의 충직한 하수인이었습니다.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문다”라고 한탄하는 검사들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고 1997년 12월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었지만, 검찰 권력은 임기가 따로 없었습니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명분으로 개혁의 칼날을 피해 나가는 신공을 발휘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검찰 권력이 정치권력의 우위에 서기 시작했습니다.저는 정치권력과 검찰 권력의 이런 대결을 오랫동안 지켜봤습니다.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도 검찰 관련 사안을 취재하고 기사를 썼습니다. 따라서 검찰개혁에 대한 저의 생각은 30년 정도 축적된 체험과 관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검찰개혁에 대한 저의 짧은 견해는 이렇습니다.
첫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입니다. 중요한 수사를 검찰이 ‘독점’하는 현재의 구조를 당장 깨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수처가 출범 뒤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공수처가 있으면 검찰이 더는 ‘장난’을 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중장기적으로는 검찰이 직접 수사를 아예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경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있어서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지만, 언젠가는 관철해야 할 과제입니다. 검찰은 영장 청구권과 공소 제기 및 유지권만을 가지고 ‘인권 보호 및 공익의 대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런 단계를 거쳐 검찰개혁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공수처의 권한을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공수처는 수사만 하고 영장 청구와 공소 제기 및 유지는 검찰이 하도록 역할을 분담하는 것입니다. 경찰의 수사 역량이 강화되고 국민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면 아예 공수처를 폐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19년 2월 저는 부부장으로 승진한 검사들을 상대로 법무연수원에서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보고 겪은 검찰의 ‘흑역사’를 설명한 뒤 “우리 검찰의 문제는 지나치게 많은 권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내재론’과 ‘외인론’ 중에서는 내재론이 옳고, ‘제도론’과 ‘인성론’ 중에서는 제도론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권한 축소에 검사들이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부부장 검사가 나중에 <한겨레> 법조 기자들과 만나서 “성한용 기자 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겠더라”고 제 강의를 평가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정도라도 저의 제안을 이해하는 검사들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 중에서 고강도 검찰개혁을 약속한 사람은 문재인 후보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검찰과 경찰을 동등한 수사기관으로 인정하고 상호 감시 체계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치검찰 척결 및 개헌을 통한 경찰에 영장청구권 부여”를 약속했습니다. “특별감찰관 권한 강화로 대통령 주변 비리 원천 차단”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공약했습니다. “검찰의 자의적인 기소권 행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을 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여, 수사는 제3의 기관인 수사청이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공약했습니다.
검찰이 가진 권한을 분산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섯 사람의 목소리가 일치한 것입니다.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각 정당 후보들은 검찰개혁에 대해 어떤 공약을 들고나올까요?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폐지하고 검경수사권 조정도 과거로 되돌리겠다고 야당 후보들이 공약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검찰의 권한을 분산하고 견제하는 검찰개혁의 큰 방향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검찰개혁은 이제 막 시작됐고 누구도 그 방향을 거꾸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975023.html?_fr=mt2#csidx74adb27e006e7b89cc8ae1f71e7c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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