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알카에다, 탈레반, IS 어떻게 다른가?

道雨 2021. 8. 27. 10:56

카불공항 테러 IS, 탈레반보다 더 극단적...무엇이 다른가?

 

이번 테러의 배후인 IS-K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는 IS의 지역 지부라고 전해졌습니다. IS-K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지하디스트들로 구성됐고, 특히 아프간의 탈레반에서 합류한 이들도 있습니다.

 

IS(이슬람국가)가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공항에서 발생한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IS와 알카에다, 탈레반은 모두 급진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투쟁 단체다. 언뜻 비슷한 이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테러를 일으켰을까?

이들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종종 갈등을 빚었다.

군사 콘텐츠를 제공하는 자선단체 BFBS는, 세 단체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종종 갈등을 빚었다며 그 차이를 설명했다.

 

 

알카에다

 


알카에다는 코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수니파의 극단적 형태와하비즘을 따른다.

알카에다는 1988년 오스만 빈 라덴과 모하마드 아티프가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 직전 만들어졌다. 알카에다는 아랍어로 '기초'를 뜻하며, 지하드(성전‧이슬람교 전파를 위한 이교도와의 투쟁)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의 배후다. 서방과 서방의 문명을 이슬람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으며, 샤리아법(이슬람 율법)에 따른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알카에다가 수년 동안 서로 관련이 거의 없는 지역 운동으로 분열됐다고 보고있다.

 

탈레반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모두 수니파이지만, 탈레반이 전통적인 아프간의 파슈툰족 생활 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알카에다와는 다르다.

탈레반은 1994년 가을 아프간에서 두각을 나타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5년 동안 아프간을 통치했다.

탈레반은 아랍어로 '학생'을 뜻하며, 아프간과 파키스탄에 있는 파슈툰 지역에서, 샤리아법에 따라 평화와 안전의 회복을 약속했다.

하지만 일상의 시민들에게 극단적으로 엄격한 법을 적용했다. 10살 이상의 여성은 교육을 받을 수 없고, TV와 SNS도 금지된다.

 

탈레반은 하나의 '탈레반'이 아니고 여러 단체다.

파키스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있는 이들은 'TTP'다. 이들은 2014년 역대 최연소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암살을 시도했다.

놀랍게도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탈레반은 동맹이자 라이벌이다. 이 둘은 이념적으로 약간의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에 충돌하기도 했다.

 

IS

 


IS는 탈레반의 지휘관들이 IS의 지도자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패배를 인정한, 2014년 이라크 모술에서 탄생했다. 이 배신한 탈레반의 지휘관들은 당시 탈레반을 이끌던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의 리더십에 불만을 키우던 이들이다.

 

탈레반과 IS는 모두 극단적인 수니파이지만, 탈레반은 IS와 알카에다의 와하비즘 전통에 비하면 덜 극단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게릴라전에 두드러진 반면, IS는 전형적인 군대 전술과 훨씬 유사하다.

 

IS는 다른 테러 단체들과 달리, 유튜브, 트위터, 왓츠앱 등 SNS를 이용해 청년층을 정치 선동하고, 서방 문화에 맞서 싸우기 위해 IS에 초대한다. 이에 따라 2016년 8월 기준으로 850여 명의 영국인이 IS에 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번 테러의 배후인 IS-K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는 IS의 지역 지부라고 BBC는 전했다.

IS-K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지하디스트들로 구성됐고, 특히 아프간의 탈레반에서 합류한 이들도 있다. 이들은 탈레반이 충분히 극단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IS-K는 최근 몇 년 동안 최악의 잔악행위로 비판을 받았다. 여학교와 병원, 임산부와 간호사에게 총격을 가한 것으로 알려진 산부인과 등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특히 탈레반이 아프간에만 관심을 집중한 것과 달리, IS-K는 서방과 전 세계, 인도주의자 등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상대로 공격을 감행한다.

 

CBS노컷뉴스 장성주 기자 joo501@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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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카불 점령 직후 IS 지도자 사살... '폭탄 테러' 전조였나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카불 공항에서 폭탄 테러를 자행한 가운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할 당시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IS 핵심 지도자를 사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IS가 미국의 철수에도 불구하고 탈레반과 대립각을 세우며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을 환영하지 않았던 데는 ‘속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IS가 미군 13명을 포함해 90여명의 사망자를 낸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를 자행한 데는, 양 조직 간 앙숙 관계도 한몫 했다는 분석이다.

 

탈레반, 수감 중인 IS 최고 지휘관 살해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이하 현지 시간)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지난 15일께, 교도소에 있던 수백명의 수감자들을 풀어주는 과정에서, 아프간 IS 지도자인 아부 오마르 코라사니를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코라사니 조직원 8명도 그와 함께 살해 당했다. IS의 남아시아 최고 지휘관인 코라사니는 지난해 5월 아프간 보안군한테 체포돼 카불 교도소에 수감됐다.

 

코라사니는 사망 며칠 전 WSJ와 인터뷰하며 “탈레반 약진은 (아프간) 변화의 전조"라며 "그들이(탈레반) ‘좋은 무슬림’이라면 분명 나를 풀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파죽지세로 주요 지역을 점령하며 아프간을 장악해갔던 탈레반에 기대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불과 며칠 만에 그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WSJ는 탈레반의 코라사니 살해가 아프간 내 무장단체 간 역학관계를 나타낸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는 당초 탈레반을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맹’이라 일컬으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탈레반 역시 알카에다가 서방과 말썽을 일으켜 자신들을 고립시키고 있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이 아프간 전쟁을 일으키면서,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자연스럽게 공조를 이뤄 서방과 대치하게 됐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폭탄 테러와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하던 도중 발언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카불 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를 이슬람국가(IS)의 지부를 자처하는 IS 호라산(IS-K)의 소행이라고 지목하고 "끝까지 추적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강경 대응 천명했다. /AP연합뉴스

 

“IS 테러, 아프간 전쟁 망령 되살려”

 

그러나 2015년 알카에다가 세력이 다소 약해진 틈을 타 두각을 나타낸 IS는 탈레반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WSJ는 “IS는 아프간 호라산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고, 지도부에 불만을 품은 탈레반 대원을 비롯해 중앙·남아시아 무장단체 조직원들을 끌어 모았다”고 전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도 IS에 들어오겠다는 자원자가 몰렸다.

 

탈레반은 IS를 방해물이라고 인식했다는 설명이다. 코라사니는 사망 전 WSJ와 한 인터뷰에서 “IS는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했지만, 탈레반은 아프간을 되찾는 데만 신경을 썼을 뿐, 아프간 외부 이슬람 단체들을 돕는 데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같은 대립 관계가 미국의 철수를 기점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날 끔찍한 카불 공항 테러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WSJ는 “카불 공항 테러는 아프간 내에서 더 길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망령을 불러 일으켰다”고 논평했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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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탈레반, IS(이슬람국가)

 

 

* 공통점 : 이슬람 수니파, 무장투쟁

* 다른 점 : 탈레반이 아프간과 파키스탄에만 관심을 집중한 것과 달리, IS는 서방과 전 세계, 인도주의자 등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상대로 공격을 감행한다.

 

 

* 알카에다

 

알카에다는 코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수니파의 극단적 형태인 와하비즘을 따른다.

 

알카에다는 1988 오스만 빈 라덴과 모하마드 아티프가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 직전 만들어졌다. 알카에다는 아랍어로 '기초'를 뜻하며, 지하드(성전이슬람교 전파를 위한 이교도와의 투쟁)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의 배후다. 서방과 서방의 문명을 이슬람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으며, 샤리아법(이슬람 율법)에 따른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알카에다가 수년 동안 서로 관련이 거의 없는 지역 운동으로 분열됐다고 보고 있다.

 

 

 

* 탈레반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모두 수니파이지만, 탈레반이 전통적인 아프간의 파슈툰족 생활 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알카에다와는 다르다.

 

탈레반은 1994 가을 아프간에서 두각을 나타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5년 동안 아프간을 통치했다.

 

탈레반은 아랍어로 '학생'을 뜻하며, 아프간과 파키스탄에 있는 파슈툰 지역에서, 샤리아법에 따라 평화와 안전의 회복을 약속했다.

 

하지만 일상의 시민들에게 극단적으로 엄격한 법을 적용했다. 10살 이상의 여성은 교육을 받을 수 없고, TVSNS도 금지된다.

 

또 탈레반은 하나의 '탈레반'이 아니고 여러 단체다.

 

파키스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있는 이들은 'TTP'. 이들은 2014년 역대 최연소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암살을 시도했다.

 

놀랍게도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탈레반은 동맹이자 라이벌이다. 이 둘은 이념적으로 약간의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에 충돌하기도 했다.

 

 

 

* IS(이슬람국가)

 

IS는 탈레반의 지휘관들이 IS의 지도자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패배를 인정한, 2014 이라크 모술에서 탄생했다. 이 배신한 탈레반의 지휘관들은 당시 탈레반을 이끌던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의 리더십에 불만을 키우던 이들이다.

 

 

 

탈레반과 IS는 모두 극단적인 수니파이지만, 탈레반은 IS와 알카에다의 와하비즘 전통에 비하면 덜 극단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게릴라전에 두드러진 반면, IS는 전형적인 군대 전술과 훨씬 유사하다.

 

 

 

IS는 다른 테러 단체들과 달리, 유튜브, 트위터, 왓츠앱 등 SNS를 이용해 청년층을 정치 선동하고, 서방 문화에 맞서 싸우기 위해 IS에 초대한다. 이에 따라 20168월 기준으로 850여 명의 영국인이 IS에 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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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아랍어로는 al-Qa’idah(‘근본이라는 뜻). 알 카에다는 아프간 전쟁 당시 소련에 대항해 싸우던 이슬람교도들을 지원하던 요원 체계로 시작했다. 조직원들은 전체 이슬람 국가를 대상으로 선발되었다.

 

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이 조직은 흩어졌으나, 부패한 이슬람 정권과 이슬람 땅에 여전히 주둔하고 있는 외국(예를 들어 미국) 세력에 계속 저항했다. 12개국의 적극적인 조직원 및 동조자(아프간 분쟁의 많은 참전 요원들)와 함께, 이 조직은 결국 탈레반의 후원을 받으며 아프가니스탄에 본부를 다시 세웠다(1996).

 

알 카에다는 이집트 이슬람 지하드와 이슬람 그룹을 포함하여 많은 다른 이슬람교 과격단체들과 힘을 합쳤다. 어떤 경우에는 그 지도자들은 미국에 대하여 지하드’(jihad 聖戰)를 선포하기도 했다.

이 조직은 전 세계에서 온 이슬람교도 전사들을 위한 진영을 세우고, 수만 명에게 준()군사훈련을 시켰다.

요원들은 케냐의 나이로비와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에 있는 미국 대사관 파괴공작을 비롯한 수많은 테러 공격에 가담했으며(1998), 예멘의 아덴에 있던 미국 전함 콜에 대한 자살 폭탄 공격을 하기도 했다(2000).

 

2001년 알 카에다와 연계된 대원 19명이 미국에 대해 911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대응해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 알 카에다 부대를 공격해 수천 명의 대원을 살해 또는 생포하였으며, 잔당과 지도자들은 쫓겨 피신했다. 그 후 이어진 몇 명의 핵심 요인(911공격사건을 계획하고 조직했다고 주장하는 대원 포함)이 생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알 카에다와 동조자들은 암암리에 전 세계에 걸쳐 테러행위를 자행했다.

 

- 다음백과사전 -

 

 

 

알카에다(아랍어: القاعدة 알카이다[ælqɑːʕɪdɐ][*] 기지)는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인 오사마 빈 라덴이 창시한, 극단적 살라프파 무슬림에 의한 국제 무장 세력망이다. 소위 이슬람 원리주의 계통에 속해 반미국, 반유대를 표방한다. 1990년대 이래 주로 미국을 표적으로 테러했다고 일컬어지며, 많은 사건을 대상으로 하여 스스로 그 실행을 인정하는 이 과격파 국제 테러 조직은 2001년 미국 동시다발 테러를 단행하여 미국과 친하거나 미국을 동경하는 세계를 크게 충격했는데 대테러전으로 수행된 같은 해의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의거해 그때까지 비호하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타도되어 크게 타격당했다. 이러한 알카에다의 과격 테러로 인해 주변 중동국가들마저도 알카에다에 매우 적대적인 입장이다.

 

기원

 

알카에다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항한 이슬람 의용군(무자헤딘)이 연대한 조직이 기원이다. 그 후에 걸프 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군대를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이슬람교 제2대 성지 메카와 메디나에 상주하게 한 만행이 계기가 됐다. 이런 만행으로 말미암아 미국에 심정상 반발하던 무자헤딘들의 의식이 결합되었고 반미국 투쟁으로서 진화했다.

 

 

테러

 

1990년대에 시작된 투쟁은 해를 거듭할수록 과격해져서 2001년에는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 국방부 건물 테러 사건, 같은 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소재한, 미국 군대 기지 폭파 사건, 케냐와 탄자니아에 있는, 미국 대사관 폭파 사건, 예멘 근해에 체류한, 미국 군함인 콜을 습격한 사건에 관여했다고 간주되며 2000년에는 미국 뉴욕에 소재한 세계무역센터 생물학무기 테러 사건을 단행하면서 마침내 2001년 미국을 동시다발 테러한 외에서 동남아시아 각국의 반정부 이슬람 과격파 조직과도 연락하였다고 의심받는다. 2003년 말 이후는 미국과 영국이 수많은 민간인을 죽이고서 점령해 통치하는 이라크에 알카에다계 활동 인원이 다수 잠입하였으며, 2004년의 미국인 닉버그 몇 명과 김선일 처형에 간접으로 연관됐다고 간주된다.

 

 

- 위키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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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아프가니스탄을 기반으로 하는 이슬람근본주의 집단. 아프가니스탄 남부 파슈툰족 출신의 보수적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아프가니스탄에 출현, 1996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여 극단적인 이슬람근본주의를 바탕으로 통치했다. 그러나 이후 비이슬람문화에 대한 배격과 문화유물·유적의 파괴, 여성인권의 극단적 제한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으며, 2001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의 공격을 받아 축출되었다. 이후 근거지 인근에서 지속적인 테러 활동을 벌이면서 미국과 무력 긴장상태를 계속하다가 20202월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의 종식을 선언했으나 4월의 포로 협상이 결렬되면서 무장 충돌이 계속되었다. 2021년 미군의 철수 계획 발표 후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으며, 815일 카불 입성을 앞두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밝힘으로써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게 되었다.

 

 

개요

 

이슬람근본주의 집단. '탈레반'은 파슈토어로 '학생들'이란 뜻이며, '탈리반(Taliban)'이라고도 한다. 소련군 철수, 공산정권 붕괴, 내전 돌입으로 아프가니스탄이 혼란스러웠던 1990년대 중반에 출현, 이슬람교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으며, 20019.11 사태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거부하다가 미국의 공격을 받아 정권이 붕괴되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세력을 유지한 채 인근 파키스탄 등에서 산발적인 테러를 벌이면서 미국 및 국제사회와 무력으로 대립하다가, 20202월 말 미국과 전쟁 종식의 협정을 맺었으나, 2021년 미군의 철수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했고, 815일 정부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아프가니스탄의 재집권에 성공했다.

 

 

역사

 

'탈레반'이란 이름은 구성원이 대부분 마드라샤에 다니던 학생들인 데서 유래했다. 마드라샤는 1980년대 파키스탄 북부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 세워진 이슬람 신학교이다.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 지방에서 질서를 잡는 군사활동을 전개하며, 재빨리 남부 지방을 지배하던 군벌을 몰아냈다. 1996년 말 해외에 있는 보수적인 이슬람 분파의 지원과 아프가니스탄 남부 파슈툰족의 지지에 힘입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북부의 타지크족, 서부의 우즈베크족, 중부의 하자라족 등 비파슈툰족들은 탈레반에 계속 저항했다. 이들은 파슈툰족으로 구성된 탈레반의 집권이 전통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 파슈툰족의 집권 연장이라고 여겼다. 2001년 무렵 탈레반은 일부 북부지역을 제외한 전국을 장악하고, 극단적인 이슬람근본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20013월에는 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미안 석불을 폭파했으며, 이후 비이슬람 문화유적에 대한 대대적인 파괴를 자행했다.

 

국제사회는 탈레반의 각종 사회정책, 여성의 사회활동 억제, 바미안 석불과 같은 비이슬람 종교 유적 파괴,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 등을 비판했으며, 탈레반 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극소수였다. 무엇보다 탈레반은 수차례에 걸쳐 미국인에 대해 테러를 가한 혐의로 기소된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이슬람 전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되었다.

 

2001911일 미국 뉴욕 시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시 국방부 건물에 대한 비행기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탈레반 정권에 그를 인도할 것을 요구했다. 탈레반 정권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고, 미국은 곧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며 전쟁에 돌입했다(9·11 미국 테러 사건). 미국 주도의 일부 서방국가와 아프가니스탄의 반군세력인 북부동맹이 이 전쟁에 합세한 끝에 200111월 탈레반 정권은 붕괴했다.

 

현황

 

탈레반 정권 축출 이후 아프가니스탄에는 여러 정파가 연합한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탈레반은 남부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의 지역에서 지속적인 테러 활동을 벌였다. 이에 따라 미국이 주도해 탈레반 세력과 무력으로 대립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국지적, 산발적으로 지속되었으나, 2020229일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의 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20204월에 있었던 포로 협상이 결렬된 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무력 충돌을 벌이기 시작했다. 평화협정에 따라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추진하자, 탈레반 세력의 지역 점거가 계속되었고, 2021831일 목표로 미군의 철수가 진행되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전 지역을 장악했다.

8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 점령을 앞둔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은 다시 탈레반이 장악하게 되었다.

 

 

 

 

IS(이슬람국가)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가 이끄는 조직으로, 알카에다 이라크지부에서 출발해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이슬람국가(Islami State, IS)'를 자처했다.

인질 살해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이러한 장면을 인터넷에 공개해 선전책으로 이용하고 있다.

20177월 이들이 장악했던 지역인 이라크 모술을, 10월 시리아 라카를 미군과 연합군에 함락 당했다.

이후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과 쿠르드족 민병대를 포함한 연합군과 전면전을 벌여, 20193월 마지막 근거지인 시리아의 바구즈를 잃고 지역적 기반을 상실한 상태에서, 20191026일 최고지도자인 '칼리프'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미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31일 후계자로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가 지명되었다.

 

 

 

개요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 이전 명칭인 '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al-Sham, ‘이라크-알샴 이슬람 국가)' 등으로도 불리며, 서방에서는 이들을 폄하하는 뜻으로 '다에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1999년 결성된 수니파 계열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이 전신으로, 2004년 알 카에다의 한 조직이 되었다가 2006년 이라크의 반군단체들과 합병을 거쳐 조직을 키웠으며, 알 카에다가 세력을 잃은 2013ISIS를 수립했고, 2014년 칼리프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주도로 이라크와 시리아의 일부에서 '이슬람국가(IS)'라는 국가를 수립했다고 선포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추종자를 모집, 훈련하면서 테러를 자행해왔다. 미국과 연합군 및 쿠르드족 민병대의 전면적인 공격으로 2017~2019년에 걸쳐 주요 거점을 상실했으며, 20191026일 수장인 알바그다디가 미군의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와해 국면에 이르렀다.

 

IS의 배경 : 종파분열의 이라크, 내전 중인 시리아

201112월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 미군 전투병력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키면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이 일으킨 '테러와의 전쟁'을 조용히 끝냈다. 당초 부시 전 대통령이 전쟁의 이유로 들었던 대량살상무기는 찾지 못했지만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고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 사살됐다. 이라크전 종전을 내걸고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은 그의 전쟁 종료 선언(2011.12.15)으로 지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테러는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알카에다보다 더 강하고, 더 잔혹한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Islamic State)가 등장했다. IS는 스스로 '국가'를 자칭하며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를 차지하고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한편, 포로를 처형하는 잔혹한 영상을 중계하는 수법으로 세계 여론을 자극했다. 결국 미국의 중동개입을 강도높게 비판해온 오바마 대통령은 20149월 군사작전 돌입을 선언했다. 또 다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갑자기 등장한 무장단체 IS가 어떻게 단시간에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이라크 디얄라주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하고 '국가'로 자칭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들의 자체적인 능력 보다는 이라크 전쟁이후 중동에서 벌어진 극심한 혼란의 영향이 크다. 이라크에서는 시아파-수니파 사이의 갈등이 격렬해졌고 시리아 내전은 주변국의 대리전으로 악화되어 이들 지역은 사실상 '권력의 진공상태'에 있었다.

 

 

시아파와 수니파

 

이슬람교의 양대 종파로 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누구를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갈렸다. 합의로 선출된 후계자 아부 바르크를 후계자로 지지한 이들이 수니파, 무함마드의 사촌인 알리를 후계자로 지지한 이들이 시아파다. 인구로 따지면 전세계 16억 이슬람교도의 90%가 수니파로 압도적인 다수파다. 시아파는 인구로는 10%지만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의 정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시아파다.

 

 

이라크에서는 인구상 수니파가 소수(20%)이고 시아파가 다수(60%)이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수니파가 권력을 독점하고 시아파를 탄압해왔다. 그러나 전쟁 이후 선거를 치르면서 다수인 시아파에게 정권이 넘어갔고, 새로 꾸려진 말리키 정부는 한동안 연합 정부의 성격을 갖는 듯했으나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수니파를 배제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현재 IS의 지도자인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는1) 이러한 수니파의 불만을 적극 활용했다. 2010년 알카에다 이라크지부(AQI)의 수장이 된 그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군 장교 등 수니파 위주로 지도부를 채우고 무장세력을 재건했다.

 

비슷한 시기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에서도 내전이 벌어졌다. 시리아는 인구의 80%가 수니파로 다수이나 소수인 시아파(알라위파)가 권력을 잡고 있다. '아랍의 봄'2) 에 영향을 받은 시리아 시민들이 2012년 가혹한 독재정치를 펴온 아사드 정권에 대해 평화적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에 아사드 정권이 과잉진압으로 대응하면서 사태가 악화됐고 주변국들의 개입으로 내전으로 번졌다. 수니파 보수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압박하고, 이란은 시리아에 시아파 정권이 유지되도록 경제, 군사적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원한 것이다.

 

시리아 내전은 IS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어느정도 조직 재건에 성공한 바그다디는 시리아에서 탄압받고 있는 수니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20134월 시리아에서 핵심적인 반군 세력으로 활동하던 누스라 전선과 통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알카에다 본부가 이에 반대하자 "이라크와 시리아를 구분하는 것은 제국주의 세력의 국경선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알카에다로부터의 독립도 선언했다. IS는 시리아내전을 통해 상당한 군수물자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때 이라크와 시리아의 조직을 통합하겠다며 내세운 이름이 ISIS(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 혹은 ISIL(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 이름에서 알수 있듯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모든 무슬림을 포괄하는 이슬람 칼리프 국가'를 목표로 내걸고 있다. ISIS20135월 누스라 전선의 본거지 도시인 라카를 점령하자마자 이 도시를 시작으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라카 점령으로 시리아 동북부의 기반을 강화한 ISIS6월 이라크 중부 사마라를 점령하고 이어 인구 180만 명으로 이라크에서 두번 째로 큰 도시 모술과 바이지, 티그리트도 점령하면서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이어 629일 바그다디는 자신을 칼리프로 하는 '이슬람국가(IS)'의 창설을 선포했다.

 

 

풍부한 군자금, 첨단무기, 외국인

 

 

IS의 모술 공격 당시 IS군은 많아야 2000~3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라크는 2011년 이후 416억 달러(42조원)의 국방비를 지출했으나, 정부와 군의 부패로 실제 전력은 형편없었다. 이라크 정부군 지휘관들을 포함한 많은 이라크군이 무기를 놓고 도주하거나 IS로 전향했다.

IS는 풍부한 군자금과 첨단무기로 유명한데, T-55, T-72탱크와 미군 차량인 험비, 기관총, 단거리 방공포, 탄약 등, IS가 가지고 있는 첨단무기는 대부분 미군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정부군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IS는 모술을 점령하면서 중앙은행에서 8억 달러를 탈취했다. 또 이라크와 시리아 등 점령한 지역의 유전에서 나는 석유를 밀수출해 하루 1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려 왔다. 그러나 최근 반년 간 공식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수입이 급감한 것으로 보인다. 20051IS가 일본인 2명의 몸값으로 2억 달러를 요구한 것도 이들의 재정난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IS7월 시리아 북쪽도 점령했다. 쿠르드자치정부가 관할하고 있던 신자르 등의 마을을 공격해 점령한데 이어, 이라크 최대 수력발전댐인 모술댐도 장악했다. 특히 이들은 소수종파인 야지디족을 최소 300명 이상 죽이고 여성과 아동을 납치했다. 이 사건은 중동 개입을 꺼리고 있던 미국이 공습을 결정하는 계기가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량학살을 막아야 한다'는 선언문을 냈다.

 

결국 미국은 이라크 지역과 시리아 지역의 IS를 상대로 각각 8월과 9월 공습을 단행했다. 이 공습의 지원을 받아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 자치정부군(페쉬메르가3) )8월 모술댐을 탈환했고, 시리아 쿠르드민병대는 20152월 시리아 북부 코바니에서 IS를 몰아냈다. 3월에는 이라크 정부군이 미군의 공습 지원 속에 티그리트 탈환을 위한 교전을 진행했다. 그러나 탈환한 지역은 IS가 점령한 전체 지역의 1%에 불과하고, 핵심 지역인 시리아 라카와 이라크 모술은 여전히 IS의 수중에 있다.

 

 

 

IS? ISIL? ISIS?

 

이 수니파 이슬람극단주의 무장단체를 부르는 말은 여러 가지다. 스스로는 중동을 아우르는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하며 '이슬람국가(IS)'라고 칭하고 있지만, 미국 행정부에서는 'ISIL(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 Islamic State of Iraq and Levant)', 미국 언론에서는 'ISIS(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라고 부른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910일 대국민연설에서 "ISIL은 이슬람도 국가도 아니다. 테러리스트 조직일 뿐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레반트 : 시리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요르단, 레바논 등 중동의 동쪽을 포괄하는 명칭이다.

* 칼리프 : '무함마드의 대리인'이라는 뜻으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망 이후 그의 종교적·정치적 권한을 받아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린 최고 통치자를 일컫는 말이다.

 

 

 

인질살해 동영상을 선전책으로

 

미국의 공습에 주춤한 IS가 반격의 카드로 쓴 것은 인질 살해였다. IS는 미국의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며, 미국 기자 제임스 폴리를 참수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20151월에는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와 유카나 하루나도 살해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안겼고, 2월에는 생포한 요르단 조종사를 불에 태워 죽이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IS는 이집트 콥트교인 20여 명, 시아파 이슬람교도 8명 등을 단체로 살해하는 영상도 올렸다.

 

IS가 잔혹한 인질 살해 영상을 잇달아 공개하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상대국에 공포감과 무력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지만, 동시에 이슬람 성전주의자에 환상을 갖고 있는 전 세계 젊은이들에 대한 선전책이기도 하다. ISSNS에 최소 4만 개의 계정을 가지고 전 세계적으로 조직원을 모으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118세 청소년인 김군이 터키를 통해 IS에 입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 SNS나 인터넷을 통한 IS와의 접촉을 차단하는데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IS가 홍보하는 '무슬림국가'의 이미지와 IS의 현실은 크게 다르다. IS는 쿠르드족 자치정부에서 납치한 야지디족 여성들을 시리아에서 인신매매 하는가 하면, 성노예로 삼고 있다. 성노예로 전락한 여성의 상당수가 15세 이하의 어린 소녀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민을 살해해 장기매매까지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IS는 다수의 어린 소년들을 소년병으로 훈련시키고 있으며, 최근에는 10살 정도의 어린 소년이 인질을 살해하는 영상도 공개했다.

 

시리아 라카 등 IS의 근거지도 '이슬람국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나 CNN은 라카 주민의 증언을 통해 '깨끗한 물이 없고 전기가 하루에 3~4시간 정도 공급되며 거리에 쓰레기는 가득하다', '여성들은 IS전투원들과 강제 결혼당했고, 시민들은 헌혈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S에 실망하고 원래의 나라로 돌아가려는 외국인 전사들을 사살한다는 주장도 있다.

 

IS는 이라크내 유적을 '우상숭배'라며 파괴하고 파괴하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홍보해, 국제 여론의 비난을 사고 있다. IS는 모술 박물관과 고대 아시리아 님루드 유적, 또 고대도시 하트라의 유적 등을 '우상숭배'라며 파괴했다. 님루드는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로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유서 깊은 유적지였고, 하트라는 고대 파르티아 제국의 거대한 원형 요새 도시이자 최초의 아랍왕국 수도였다. 유네스코는 IS의 잇단 유적 파괴 행위를 두고 전쟁 범죄행위로 규탄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조사와 조치를 요청했다.

 

미국 등 연합국의 공습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1월 시리아에 50명 수준의 소규모 특수부대 파병 결정을 했으나, 공화당의 압박에도 대규모 지상군 투입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201410내재된 해결(Inherent Resolve)’이라는 작전명으로 연합군을 구성했는데, 실제 공습에 동참하는 국가 외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하는 국가를 합하면 60개국이 넘는다(20152월 기준).

 

이라크에서는 이라크 정부군과 시아파 민병대, 쿠르드 자치정부 민병대 '페쉬메르가'IS와 지상전을 하고 있고, 미국과 호주, 벨기에,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서방국들이 공습을 맡고 있다. 시리아 공습에는 바레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주로 중동국들이 참여하고 있으나, 실제로 95% 이상 미국이 공습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는 20159월 말부터 시리아의 IS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시리아에서는 주로 쿠르드 민병대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이 IS와 맞서고 있으나, 아사드는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온 세습 독재자이자 미국 등이 퇴진을 요구해온 인물이다. 이러한 복잡한 시리아 내부 상황이 각국의 개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20159월부터 IS 공습에 나섰으나, ()러시아 성향인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반군에 대한 폭격을 주로 해 비난을 샀다.

 

연합군의 공습과 미국의 지원은 IS 전황을 교착상태로 만들었다. '페쉬메르가'로 불리는 쿠르드족 민병대는 201511IS의 거점지역인 이라크의 산자르를 탈환하는 등,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에서 IS를 밀어냈다. 이로써 IS는 각종 물품, 무기, 병력의 보급로이자 석유 밀매 통로로 쓰였던 터키-시리아 국경을 봉쇄당하는 결과가 됐다.

 

 

테러

 

IS는 이러한 상황에 테러로 대응했다. IS20156월 이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 3개 대륙을 넘나들며 공습에 동참한 터키,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에 대규모 테러를 자행했다.

 

IS20156월 튀니지 휴양지 수스에서 총기난사 테러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1010일 터키 앙카라역 자살폭탄 테러를 벌였다. 이후 같은 달 31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의 러시아 여객기 추락 테러, 111243명이 숨진 레바논 베이루트 시아파 헤즈볼라 거점 연쇄 폭탄 테러, 13132명이 사망한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등 전방위적 테러 공격으로 이어졌다. 10월 이후 한 달 새 IS의 테러로 숨진 사람은 500명이 넘는다.

 

IS가 세계 각국에서 테러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간 활용해온 인터넷 홍보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다. IS201511월 현재 100여 개 국에 3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대원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56월 튀니지에서 총기난사 테러를 벌인 테러범도 SNS 등을 통해 IS의 사주를 받은 자생적 테러리스트 '외로운 늑대'4) 였다. 파리 테러의 경우 '외로운 늑대'IS에서 파견한 조직원이 합세해 벌인 조직적 테러로 추정되고 있다.

 

 

현황

 

IS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극단주의에 매혹된 추종자들을 모집, 훈련한 후,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 등에서 테러 활동을 벌이면서 서방에 대항하는 한편, 인신매매와 석유의 밀거래 등으로 자금을 확보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지속적인 공격이 이어졌으며, 시리아 북부에서 쿠르드족 민병대와 전면전이 시작되면서 IS는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결국 20177월에 IS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이라크의 모술 지역을 함락당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수도라고 자처했던 시리아의 라카도 함락되었다.

 

20193월에는 IS의 마지막 근거지였던 시리아의 바구즈도 상실하면서, IS는 사실상 지역적 기반을 잃고 와해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물리적 기반을 상실한 상태에서도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던 '칼리프'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20191026일 시리아 북부 이들이브에서 미군의 공격에 의해 사망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IS1031일 알바그다디의 사망을 공식 인정하고, 후계자로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를 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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