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둘러싸인 대통령, 한낱 기우가 아니다
다시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집단의 출현을 우려하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막강한 권세를 가진 인물들은 이렇게 묘사됐다. 박정희 유신 정권의 차지철, 5공 시대의 장세동 등이 그런 인물들이다. 그들은 권력자를 뒤에 두고 위세를 부렸다.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 속에는 마주하기 싫은 두려움이 존재했다.
군부독재 시대는 지났다. 독재의 권세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했던 사람들도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새를 떨어뜨릴 만한 또 다른 위세 집단의 출현이 두려워지는 요즘이다. 그들의 뒷배는 법의 권위다. 법의 존엄에 감춰진 검찰의 호가호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미심쩍은 수사들
◇ 코바나컨텐츠 대기업 협찬 의혹
이 사건은 김건희씨가 대표로 있었던 코바나콘텐츠가 주관한 전시회에 LG, 대한항공, 도이치모터스 등 23개 기업이 협찬한 것이 보험성 뇌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서 출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윤석열 후보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검찰총장 임명을 앞두고 있을 때, 협찬사와 협찬 금액이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윤석열 총장 후보' 시기, 김건희 전시 협찬사 28곳까지 늘어 http://omn.kr/1v7oj)
그러나 검찰은 지난 6일 윤석열 후보의 직무관련성은 증거불충분으로, 김건희씨도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다만,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다른 전시협찬에 대해 계속 수사한다고 발표하기는 했다.
검찰이 코바나콘텐츠 사무실과 관련 회사에 대해 한 차례 압수 수색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된 후, 영장 재청구나 협찬 기업들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이후 김씨 측에서는 수사팀에서 연락 한 번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중앙일보> 2020년 11월 보도).
이번 무혐의 결정 과정은 애초 의혹에 비해 법원의 이해하기 힘든 압수영장 기각과 수사 의지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검찰, 의혹 보도에 미온적인 언론까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다른 사건과 비교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검찰의 태도는 더 도드라져 보인다. 압수수색과 영장 재청구를 반복했던 조국 전 장관 관련 수사와 너무 대조적이다. 무리한 검찰 수사와 수사 내용 흘리기, 이 모든 행위가 법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일이었다면, 코바나컨텐츠 대기업 협찬 의혹 수사는 부실 수사라고 지적 받아야 맞다.
반대로 윤석열 후보와 김건희씨 무혐의 결정이 검찰의 정당한 법 집행의 결과라면, 조국 전 장관 관련 수사는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 당시 검찰 권력을 지키려는 행위였음을 반증한다.
◇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이뿐만이 아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은 사건을 배당받고 1년이 더 지나서야 수사에 들어갔으며, 그나마도 여전히 계속 수사중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소환 조사는 물론 서면조사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씨가 지인과 한 통화에서, 도이치모터스는 본인이 한 것이라는 내용의 자백이 공개된 적도 있지만(<뉴스타파> 2020년 9월 보도), 이에 대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회장이 구속되고, 주가 조작 주요 공범 5명이 모두 구속된 점을 감안하면, 전주 역할을 했던 김건희씨에 대한 늑장 수사에서는 공정성이나 형평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관련기사]도이치 주가조작 수사 결과 발표... 김건희 이름은 빠졌다 http://omn.kr/1waos)
법의 권위는 공정과 형평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고 정의롭게 적용되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법은 사회의 모든 규범에 앞선다. 그러나 법이 공정하다고 법의 집행자가 공정한 건 아니다. 최근 일련의 사건에서 법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과 검찰의 법집행에 공정과 형평을 잃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고발사주 의혹의 정점에 있는 손준성 검사의 공수처 영장 청구는 두 번이나 기각되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공수처 존폐론까지 거론하지만, 더 비판받아야 할 건 법원이다. 검찰이 내부 자료를 야당 국회의원에게 건네고 고발을 사주한 의혹에 넘치는 증거를 두고서도 영장 기각이라니. 이러고도 법원은 정의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가 말이다.
법원의 손준성 검사 영장 기각과, 검찰의 코바나컨텐츠 대기업 협찬 의혹 윤석열-김건희 무혐의 결정,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늑장 수사. 이 모두가 검찰 개혁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법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한 후과라는 생각마저 든다.
검찰이 좌초된 검찰 개혁에 오히려 내성을 키워, 다시 옛날 정권의 사냥개 시절로 돌아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검찰 정권에 대한 우려
더 걱정스러운 것도 있다. 전직 검찰총장이 대통령 후보로 직행하는 데 대한 우려를 전하는 언론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후보의 면면이나 국민의힘 선대위 구성을 놓고 보면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한낱 기우만도 아니다.
국민의힘 선대위에는 무려 30여 명의 전직 판·검사들이 포진해 있다. 이중 검사 출신이 13명이다. 검사동일체라는 상명하복 문화가 깊게 남아 있는 검찰이다. 퇴직한 검찰 출신 정치인과 현직 검찰이 어떤 거래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관련기사]"검찰 출신이 윤석열 선대위 장악" 주장은 '대체로 사실' http://omn.kr/1wbvy.)
국민의힘 선대위 조직표를 보면서, 5.16 쿠데타 당시 박정희를 중심으로 군인들이 포진한 장면을 연상했다. 군인들이 집권했던 군부 정권이나 검찰이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공화국이나 민주주의의 질식은 별반 다를 바 없다. 총칼을 뒷배로 해서 호가호위했던 군부와 법의 존엄을 뒷배로 호가호위하며 권력을 유지하려는 검찰은 닮았다.
윤석열 후보가 검찰 출신이니 검찰권 남용을 더 잘 알고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뒷받침 되려면 고발 사주 의혹과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이 사실을 무능해서 몰랐거나, 알고도 방치한 것이다.
군사정권이 끝난 시대에, 다시 검찰로 대표되는 법률 기술자들이 나는 새를 떨어뜨리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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