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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달력에 '친북' 빨간색 칠하기..."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道雨 2021. 12. 31. 15:23

통일부 달력에 '친북' 빨간색 칠하기..."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 팩트체크 ]


'통일부 업무용 탁상 달력' 국힘 문제 삼고 <조선일보> 키워
김일성·김정일 생일 등 북 주요 정치일정 표기에 '빨간칠' 하기

 

* 차덕철 통일부 대변인이 3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3층 합동브리핑룸에서 정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제훈 기자

 

“통일부가 제작하고 배포한 2022년 달력에, 북한의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생일은 물론, 김일성 생일, 심지어 조선인민군 창건일 등이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북한에 대한 일방적 퍼주기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기념일까지 챙겨주자는 말인가.”

30일 오후 5시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황규환 대변인 논평”의 첫 두 문장이다. 이 논평의 제목은 “어느 나라 정부입니까?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이다.

 

이 논평을 <조선일보>는 31일치 1면(+5면) 기사로 다뤘다. 제목은 “김일성 3부자 생일 넣은 통일부 달력”이다. <조선일보> 1면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통일부가 제작한 2022년 달력에 북한 조선인민군 창건일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 등이 붉은색으로 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김일성 생일도 4월15일 달력에 빨간색으로 적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생일도 1월8일에 ‘북, 김정은 위원장 생일(84)’로 표기돼 있는데, 김일성·김정일과 달리 검은색 글시로 적혀 있다.“ “국내 주요 보훈 기념일은 검은색으로 표시됐다.”

 

국민의힘은 김일성·김정일 생일 표기 사실 자체를, <조선일보>는 ‘빨간색 표기’에 초점을 맞춰 ‘통일부 달력’을 문제삼았다. 통일부는 31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관계 확인 없이 일방적으로 비난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이례적으로 강하게 반박·비판했다.

 

①일반인 배포용? 통일부 직원·유관기관 업무용

통일부가 “北, 김일성 생일(’12)” “北, 김정일 생일(’42)”이라는 글귀가 적힌 2022년도 탁상용 달력을 만든 사실은 있다. 문제는 국민의힘 논평과 <조선일보> 기사가 이런 ‘사실’ 너머를 겨냥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국민의힘 논평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 퍼주기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기념일까지 챙겨주자는 말인가”라고, <조선일보>는 “김일성 생일도 빨간색으로 적혀 있”는데 “국내 주요 보훈 기념일은 검은색으로 표시됐다”고 비판했다.

그러고는 국민의힘 논평은 “통일부를 보며 ‘대체 어느 나라 정부냐’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라고 했고, <조선일보>는 이 대목을 기사에 인용하고 5면 제목으로 달았다.

국민의힘 논평은 “해당 달력의 전량 회수는 물론이거나와, 관련자 문책, 나아가 이인영 장관의 사과를 촉구한다”고 했고, <조선일보>는 이 또한 기사에 담았다.

 

 

 

이인영 장관이 이끄는 통일부가 만든 2022년 달력에 ‘빨간 페인트’를 뿌리려는 시도다. 일단 통일부 탁상용 달력은 ‘일반 배포용’이 아니다. 통일부 직원 업무 참고용이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등 유관 기관에 선택적으로 돌리는 정도다. 일반 시민이 통일부 탁상용 달력을 손에 쥘 기회는 없다.

통일부는 2022년도 탁상용 달력을 2000부 만들어 통일부의 모든 직원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보좌관들한테 돌렸다. 일반 시민한테는 나눠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국민의힘 논평과 <조선일보>의 “해당 달력 전량 회수” 운운은, 관련한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방증인 셈이다.

 

김일성·김정일 생일 등 북한의 주요 정치 일정이 적힌 통일부 달력은 ‘이인영 통일부’에서 처음 만들었거나 ‘문재인 정부’만의 돌출 행태인가? 전혀 아니다. 이런 통일부 달력은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도부터 제작됐다. 2012~2018년(2014년 제외), 곧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과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해마다 4000부를 만들어 통일부 직원들과 국회를 포함한 관련 기관에 나눠졌다. 업무 참고용이어서 일반인은 접할 수 없다. 통일·남북관계, 북한 주요 기념일 등이 표기돼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민의힘 논평과 <조선일보> 기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통일부도 ‘친북적’이라고 몰아간 셈이다.

 

② 문재인 정부 ‘돌출행태’? 이명박 정부 때 첫 제작

2019~2021년 3년을 거르고 2022년에 이런 식의 탁상용 달력을 다시 만든 데에는, 통일부 ‘2030 직원들’의 의견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이인영 장관이 통일부 ‘2030 직원’과 여러 차례 간담회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젊은 직원이 “업무상 꼭 필요한 북한의 주요 정치 일정이 적힌 달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등의 의견을 밝혔다고, 통일부 당국자가 31일 전했다. 이런 ‘2030 직원’의 의견을 토대로, 통일부 기획조정실 운영지원과가 ‘2022년 통일부 탁상용 달력’을 이전의 절반 규모(2000부)로 제작했다.

“김일성·김정일 생일은 빨간색인데, 국내 주요 보훈 기념일은 검은색”이라는 <조선일보>의 지적과 비판은 사실인가? 역시 사실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6월6일 현충일”은 달력에 빨간색으로 적혀 있다.

 

* 통일부 직원 업무 참고용 탁상용 달력의 6월. “김일성·김정일 생일은 빨간색인데 국내 주요 보훈 기념일은 검은색”이라는 <조선일보>의 지적과 비판은 사실인가? 역시 사실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6월6일 현충일”은 달력에 빨간색으로 적혀 있다.

 

 

통일부 달력의 ‘빨간색’과 ‘검은색’은 (법정 공휴일 등) ‘쉬는 날’ 여부로 구분된다. 김일성 생일(4월15일)과 김정일 생일(2월16일)이 빨간색인데, 김정은 생일(1월8일)이 검은색인 까닭이다. 김일성·김정일 생일은 북에서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태양절”(4월15일)과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광명성절”(2월16일)로 불리며 법정 공휴일이다.

반면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생일 1월8일은 정부의 추정일뿐, 북한 당국이 공식 확인한 생일이 아니다. 아직 법정 공휴일도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외국문출판사’가 펴낸 2022년 벽걸이용 달력을 보면, 1월8일은 아무런 표시 없이 검은색으로 돼 있다.

 

③ 김일성·김정일 생일 예우? 북 군사행동 가늠할 주요 일정

 

                  * 통일부 직원 업무 참고용 탁상용 달력의 4월.

 

 

무엇보다 김일성·김정일 생일(태양절·광명성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수립일(9월9일),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9월9일) 즈음은 통일부 직원들이 ‘최고 긴장’을 유지한 채 업무를 해야 하는 ‘비상 시기’다. 예컨대 21세기 들어 한반도 정세의 변곡점을 이룬 북한의 전략적 군사 행동이 대부분 이 시기 앞뒤로 이뤄졌다.

북한의 1차 핵시험은 2006년 10월9일 있었는데, 이날은 노동당 창건 기념일(10월10일) 하루 전이다. 3차 핵시험은 광명성절(2월16일)을 나흘 앞둔 2013년 2월12일에 있었다. 김정은 체제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계기가 된 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곧 ‘광명성 2호’(2009년 4월5일)와 ‘광명성 3호’(2012년 4월13일) 발사는 태양절(4월15일)에 임박해 이뤄졌다. 북한 당국은 ‘광명성 3호’ 발사에 앞서 “태양절 100돌 계기”로 쏜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통일부가 2022년도 직원 업무 참고용 탁상용 달력에 “北, 김일성 생일(’12)” “北, 김정일 생일(’42)”을 빨간색 글씨로 적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비상 대기”가 불가피한 날이니 개인 일정을 짤 때 참고하라는 사전 안내이기도 한 셈이다.

이제 국민의힘과 <조선일보>에 질문을 되돌려줘야 할 시간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하고 새해 계획을 가다듬어야 할 세밑에, 한국의 시민들이 국민의힘 논평과 <조선일보> 기사를 읽고, 사실관계를 따져보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를 바라나? 이런 ‘소음’은 심신의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가?

국민의힘 논평과 <조선일보> 기사는 ‘시대착오’인가 ‘나치 괴벨스식 참주선동’인가?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