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1968년 프랑스를 필두로 전세계를 뜨겁게 달군 ‘68혁명’은, 젊은이들이 기존의 위계 질서와 권위주의에 저항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대학생들은 기성 질서에 대한 반감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시위 현장에 등장했던 구호들이 당시 ‘혁명’ 참가자들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경찰을 없애야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요구를 담은 도발적인 구호들이 거리를 뒤덮었다. 68혁명을 두고 “말과 구호의 혁명”(<68운동>)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 말과 구호에는 전쟁 반대부터 물질만능주의 타파, 전체주의 반대, 모든 종류의 차별 철폐, 성과 욕망의 해방 등에 이르기까지, 기존 가치를 전복하는 생각들이 두루 담겼다.
이성재 충북대 교수는 <68운동>에서 “(68운동의) 말과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지 않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함으로써, 이후 사회 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짚었다.
68혁명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호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이다. 지금도 68혁명 하면 이 구호를 떠올리는 이들이 꽤 많다. 68혁명이 대학 등 사회 전반의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68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파리 근교 낭테르대 학생들의 시위가 꼽히는데, 그 시위를 촉발했던 요인 중 하나가 남학생의 여학생 기숙사 출입 제한 규정이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대학 내의 억압적인 문화가 기름을 부은 68혁명은 프랑스에서 ‘대학 평준화’라는 제도 개혁 성과로 이어졌다. 페미니즘이 확산되고 시민들의 가치관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17일 “금기를 금기시해서 낡은 진보의 과감한 혁신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선거 일정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간 지 닷새 만에 다시 대선 무대에 복귀하면서 내놓은 메시지였다. 정년 연장, 연금 개혁 등 진보의 성역처럼 금기시돼온 의제들에 대해 공론화를 시작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진 울림이 크지 않다. 정책이 실종된 ‘비호감’ 대선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와 무관하게 금기를 깨는 일은 계속돼야 한다. 그래야 진보 정치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다.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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