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매체의 기괴한 분석...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싫었나
한국이 더 잘하는데 자꾸 대만 따라하라는 언론들... K방역만큼은 최고 수준
文정부 자화자찬하던 K방역은 없었다… 대위기 부른 5가지 원인 - <조선일보>
오미크론 변이가 아직 확산되기도 전인 지난해 12월 25일에 나온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입니다. <조선일보>는 "사태 초기 입국 제한 조치"를 통해 "대만과 같은 '코로나 제로' 모델을 유지"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대위기"를 부른 첫 번째 이유로 꼽았습니다.
코로나 확진자 '한국 760만 명 vs 대만 2만 명'…부끄러운 K방역 - <매일경제>
오미크론 확산으로 일일 확진자 수가 연일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던 지난 3월 16일, <매일경제>의 기사 제목입니다. 누적확진자 수만 단순 비교해 놓으니, 한국이 대만에 비해 수백 배 더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심각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대만 총통 "1인당 GDP, 19년 만에 한국 추월한다…방역 성공 덕" - <중앙일보>
실외 마스크 규제가 풀린 후인 지난 5월 5일, <중앙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들이 외신을 인용해 올해 대만의 1인당 GDP가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는 대만 총통의 발언을 전하면서, 그 원인이 "방역 성공"에 있는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미중 갈등에 따른 세계적인 공급망의 변화가 원인이라는 일반적인 분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 한국과 대만의 누적확진자 수를 비교하며 K방역을 부끄러워 하는 <매일경제> 보도 ⓒ 매일경제
포털에서 이런 기사들만 본다면, 한국은 감염자의 해외유입을 초기에 막지 못해 방역에 실패했고, 대만은 반대로 조기에 코로나 유입을 차단하여 방역에 성공해서 경제 성장까지 이루어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 과연 실상은 어떨까요?
한국과 대만
<중앙일보>에 대만이 방역에 성공해서 1인당 GDP가 한국을 추월할 거라는 기사가 실렸던 5월 5일, 공교롭게도 대만의 일일 확진자 수가 한국을 추월했습니다. (나라별로 인구가 다르기 때문에 인구 백만 명당 일일 확진자수를 비교한 수치입니다)
아래 도표는 세계적인 데이터 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에서 2022년 한국과 대만의 일일 확진자 수를 비교한 것입니다. <매일경제>가 "부끄러운 K방역"을 이야기했던 3월 중순의 한국 일일 확진자 수는 대만의 2500배가 넘었는데, 그 사이 한국은 확진자가 크게 줄고 대만은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이 시작되면서 역전이 된 것입니다.
▲ 오미크론 변이 이후 한국은 확진자가 급증했다가 줄어 들고 있는 추세이고, 대만은 4월 말부터 급증하고 있는 추세인데 5월 5일 숫자가 역전됐습니다. ⓒ 아우어 월드 인 데이터
그래도 아직 대만에 비해 한국의 누적 확진자 수는 30배가 넘고, 누적사망자 수도 10배가 넘으니, 대만은 방역에 성공한 게 맞고, 한국은 실패한 게 아니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습니다. 방역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확진자 수나 사망자 수만 가지고 기계적으로 성적을 매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블룸버그통신>은 경제활동 재개(Reopening Progress), 코로나 상황(Covid Status), 삶의 질(Quality of Life) 등 3개 부문의 11개 지표를 이용하여 전체적인 방역 성과에 대한 점수를 매겨 매월 순위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것이 아직 한국의 일일 확진자 수가 10만 명 이상이던 4월 27일입니다. 한국은 통계가 잡히는 전체 53개국 가운데 19위를 차지했습니다. 코로나 초기 늘 10위권 안이었던 것에 비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전체 여섯 개 그룹 중 세 번째로 좋은(Better) 쪽입니다. 그럼 언론에서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한다고 한 대만은 몇 등일까요? 32위로 네 번째 그룹인 나쁜(Worse) 쪽입니다. 이마저도 40위 이하로 최하권이었던 작년에 비해 상당히 많이 회복된 순위입니다.
▲ <블룸버그>가 매달 발표하는 "코로나 회복 순위" 4월 27일 결과. 한국은 19위, 대만은 31위입니다. 한국 언론은 대만을 배우라고 하는데, 블룸버그는 한국이 훨씬 더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 블룸버그
대만의 순위가 낮은 건 누적 확진자 수와 누적사망자 수만 적을 뿐, 다른 지표에서는 조사 대상 국가의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사회에서의 이동성과 항공편 회복 정도, 백신 접종자 여행 등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해외 항공편의 재개 속도가 더디고, 외국인 관광객의 무비자 방문도 허용하지 않고, 사업상 방문의 경우에도 의무격리기간이 있습니다. 그럼 국내에서의 일상적인 활동은 어떨까요?
아래 표는 코로나 발생 이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를 조사한 것입니다. 한국은 상황에 따라 크게 25%까지 줄기도 했지만, 다시 회복하여 10% 정도 줄어든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대만은 상황이 안 좋을 땐 60% 넘게 줄어든 경우도 있고, 지금도 35% 이상 줄어든 상태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대만 국민의 이동성에 제약이 있다는 뜻입니다. 국민의 불편을 담보로 하는 확진자 수 억제가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을 두고, 코로나에 대한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버스, 지하철, 기차역 등의 방문자 수를 조사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성을 지수화한 도표 ⓒ 아우어 월드 인 데이터
대만이 한국보다 방역을 더 잘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누적확진자 수와 누적 사망자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확인한 것처럼, 대만은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는 초기의 상태(기초감염재생산지수 : 2.33)이고, 한국은 코로나 확산의 정점을 넘어 이제 안정화 되고 있는 상태(기초감염재생산지수 : 0.58)입니다.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오미크론 변이가 대만의 확진자 수를 어디까지 끌어올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조선일보의 이상한 해석
언론들이 한국의 방역은 실패했다며 대만을 배우라고 자꾸 닦달하지만, 그들의 말만 믿고 대만을 따라 했다면 지금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정도면 방역이 성공했다고 말해도 될 것 같은데, <조선일보>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오미크론 확진자 발생의 정점을 막 지나가고 있던 지난 3월 26일, <조선일보>는 <코로나 사망·확진 세계 최악인데 "방역 성공 마무리" 말이 나오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아무리 자료를 확인해 봐도 한국의 사망자 수가 세계 최악은 아닌데, 어떻게 저런 주장을 할 수 있나 싶어 사설 내용을 확인해 봤습니다.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가 인구 대비 누적 사망률 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서유럽은 우리와 문화가 달라 마스크 쓰기, 거리 두기 등 강도가 우리와 크게 달랐다. 우리와 비슷한 강도로 거리 두기 등 방역을 실시한 나라들과 비교하면 우리가 가장 나쁘다. 인구 100만 명당 누적 사망률이 우리는 278명인 반면, 일본은 218명, 호주는 226명, 뉴질랜드는 39명, 대만은 35명 등이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우리보다 사망자가 훨씬 많지만 우리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제외하고, 대만,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정말 방역을 잘한 나라들과 비교하면 우리가 가장 사망자가 많기 때문에 "세계 최악"이라는 이런 참신하면서 엉뚱한 논리는 처음입니다.
아래 도표는 조선일보가 비교 대상으로 고른 나라에 더해 각 대륙별로 대표적인 나라 하나씩을 골라서, 인구 백만 명당 누적 사망자 숫자를 도표로 만든 것입니다. 남미의 브라질이나 북미의 미국에 비해서는 6분의 1, 유럽의 프랑스에 비해서는 4분의 1,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비해서도 3분의 1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세계 평균보다도 절반 이하입니다.
▲ <조선일보> 비교 대상으로 삼은 나라와 각 대륙별로 대표적인 나라 하나씩을 골라 인구 백만명당 누적 사망자 숫자를 도표로 만들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저 아래 다섯 개 나라 중 한국의 사망자 수가 제일 많다고 "세계 최악"이랍니다. ⓒ 아우어 월드 인 데이터
우리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대륙은 모두 제외하고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만을 대상으로 삼은 뒤, 그 중에서도 우리보다 누적사망자가 많은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모두 제외한 다음, 세계에서 방역 성과가 제일 좋은 나라들만 골라서 비교를 했으니 한국이 세계 최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싫었나
한국의 코로나 치명률은 0.13%로 세계 평균 1.21%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한국보다 더 낮은 나라는 뉴질랜드, 싱가포르, 호주 세 나라뿐입니다. 인구 백만 명당 사망자 수 역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백신 접종률은 86.8%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구 백만 명당 확진자 수 역시 세계 최저 수준이었지만,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 이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나라가 됐을 뿐입니다. (인구 1천만 명 이상 국가 대상)
이 모든 데이터는 한국이 코로나 발생 초기에 대응을 잘해서 확진자 수 관리가 안정적으로 됐고, 백신 보급이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에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 이후에도 사망자 수를 세계 최저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만의 경우처럼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며 국경을 틀어막지 않았기 때문에, 일상으로의 복귀도 그만큼 빠를 수 있었습니다.
▲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유행이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2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공원에 서울시가 설치한 독립문광장 선별검사소에 운영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2.5.2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발생 이후 문재인 정부가 보여 준 이른바 "K방역"은 세계 어디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습니다. 이번에 취임한 새 정부가 다른 건 몰라도 K방역만큼은 제대로 계승하여 이번 코로나 사태를 잘 마무리하고, 향후 또 발생할지 모르는 또 다른 감염병에 대처하는데 잘 활용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새 대통령에게 한 가지 바라는 게 있습니다. "인터넷 매체에 하지 말고 국민들이 다 아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이제 버리라는 겁니다. 메이저 언론만 보다가는 이렇게 잘한 K방역을 부끄럽다 여기고 거꾸로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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