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론스타에 2900억 배상 책임…청구액 4.5% 인용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국제분쟁(ISD) 사건에서 한국 정부에 2900억여원의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2012년 11월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소송을 제기한 지 10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법무부는 31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중재판정부는 론스타 쪽 주장 일부를 인용해 우리 정부가 2억1650만달러(30일 환율 기준 2924억원 상당)를 배상할 것을 명했다”고 밝혔다.
투자자-국가 국제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 국가의 법령이나 정책 등으로 침해를 당했을 경우 국제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는 제도로 단심제다.
앞서 론스타는 2007~12년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매각 승인 지연과 부당한 과세로 피해를 봤다며, 2012년 11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46억7950만달러(30일 환율 기준 6조3030억원 상당)에 달하는 투자자-국가분쟁을 제기했다. 이날 인용된 금액은 청구금액의 4.5% 수준이다.
당시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34억원에 인수한 뒤, 2007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5조9천억원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해당 계약은 이듬해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의 이유로 무산됐다. 이후 론스타는 2010년 11월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지주에 4조6888억원에 넘기기로 계약을 체결했으나, 2012년 최종 매각가는 7732억원이 줄어든 3조9156억원에 거래됐다.
론스타는 두 차례의 외환은행 매각 추진 과정에서 한국 금융당국이 의도적으로 매각 승인을 지연시켰고, 하나금융 지주에게 매각 대금 가격 인하를 압박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과 관련한 감사 및 수사·재판 등이 진행돼 매각 승인이 늦어졌고, 가격 인하를 압박한 사실이 없다고 맞섰다.
한국 정부는 2012년 11월 론스타가 국제중재를 신청한 직후 국무총리실장(현 국무조정실장)을 의장으로 하는 ‘국제투자분쟁대응단’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는 2013년 5월 중재판정부를 꾸린 뒤 같은 해 10월부터 변론 과정을 진행해 왔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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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남은 론스타 분쟁 10년…소송 비용만 478억원 달해
론스타 청구액 4.5% 배상책임 인정에
정부 안팎에서 “선방했다” 분위기
론스타는 세종, 정부는 태평양에 소송 맡겨
정부 비용만 478억원, 배상액의 16% 수준
한국 정부와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간 투자자-국가 국제분쟁(ISD)이 2900억여원의 배상책임만 인정되면서, 10여년 만에 일단락됐다. 6조원 넘는 청구 금액을 론스타에 물어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막대한 소송 비용과 행정력 낭비 등 남은 상처가 만만찮다.
법무부는 31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중재판정부는 론스타 쪽 주장 일부를 인용해, 우리 정부가 2억1650만달러(30일 환율 기준 2924억원 상당)를 배상할 것을 명했다”고 밝혔다. 론스타에 상당한 돈을 물어줘야 해 소송에서 완벽히 이겼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애초 론스타가 청구한 금액인 6조원 대에 견줘 4.5% 수준이어서 ‘선방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론스타 사건의 시작은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이라는 ‘헐값’에 인수했다. 외환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하는 자기자본비율 8% 미만의 부실은행이었기에 가능한 계약이었다.
4년 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5조9천억원대에 팔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외한카드 주가조작 사건’ 등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취득할 때 적법성에 관한 의혹이 있다며 대주주 자격을 문제 삼은 한국 정부는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유보했다. 그 사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세계 금융가를 강타했다. 홍콩상하이은행과의 매각 협상이 무산되자, 론스타는 2011년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3조9천억원에 팔고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1년 뒤인 2012년 론스타는 6조3천억원(46억7950만 달러) 규모의 투자자-국가 국제분쟁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의 매각 승인 유보로 외환은행을 더 비싼 값에 못 팔아 손해를 보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10년 동안 한국 정부와 론스타 사이 지지부진한 법정 분쟁이 이어졌다. 2013년 시작된 서면 심리절차만 2년 동안 이어졌다. 서면 절차가 마무리 된 뒤 2015년 5월 열린 심리기일은 1년에 걸쳐 모두 4차례나 열렸다. 심리기일이 끝났지만 조니 비더 의장중재인이 건강 상 이유로 2020년 3월 사임하는 변수가 생기기도 했다. 3개월 뒤 새 의장중재인이 선정됐고 2년이 지난 올해 6월이 돼서야 절차종료가 선언됐다.
분쟁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심리기일이 4번 열린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 심리기일은 1번이면 끝난다”며, “그만큼 쟁점과 사실관계가 복잡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의장의 사임과 새 의장 선정 등이 겹치며, 적어도 1~2년 전에 끝났을 소송이 더 지연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분쟁 기간이 길어진 만큼 막대한 세금이 소요됐다. 2012년부터 최근까지 중재판정부와 사무국에 지급한 중재절차 비용, 정부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법률 자문 비용과 심리기일 비용 등으로만 모두 합쳐 약 478억원이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론스타에 물어줘야 하는 돈의 16% 가량이 소송비로만 쓰인 것이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 정부를 대리한 한국의 태평양과 미국의 아놀드앤포터(Arnold&Porter) 등 법무법인 몫이다.
<한겨레>가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론스타 사건 연도별 법무법인 지출 내역’을 보면, 정부는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두 법무법인에 415억원 가량을 지급했다. 2015년 한 해에만 198억원이 넘는 돈이 나간 적도 있다. 론스타는 세종과 법무법인 케이엘(KL)파트너스를 국내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론스타 쪽의 소송 비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관련해 국회예산정책처는 ‘2021년도 예산안 분석’ 자료를 통해 법무부가 소송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책처는 “법무부가 국내 법무법인과 자문계약을 맺은 론스타 등 사건에서, 법률자문 및 대응뿐 아니라 국외 법무법인 선정과 계약 등 광범위하게 위임사무 범위를 설정해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2020년 법무부에) 전담조직인 국제분쟁대응과가 신설된 만큼, 향후 제기되는 사건 쟁점이 복잡하지 않으면 국내 법무법인에 위임하던 사무는 직접 수행하고, 국외 법무법인에만 법률 자문의뢰를 하는 등, 법무부 직접 수행 역할을 강화해 중재수행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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