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K-방산]
K9, 육지에서 15km 떨어진 해상 부표 명중...천궁, 공중에서 방향 바꿔 적 미사일 요격
* 지난해 12월 필리핀 국방부와 건조 계약을 체결한 3100t급 초계함. [사진 현대중공업]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가 요동치면서 K-방산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오랜 역사에서 보면 한국 무기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었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 나오는 거북선은 당시 다른 나라에선 생각하지도 못한 참신한 아이디어의 무기였다. 전함에 뚜껑을 덮어 왜군의 난입을 막았고, 소나무로 만든 거북선은 재질이 약한 삼나무로 만든 왜군 전선을 들이받아 파괴했다. 거북선에 장착한 함포는 조선군이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80년 전에 개발한 것으로, 당시 왜군에게 거북선과 함포는 가히 공포의 무기였다.
이 같은 한국인의 천부적인 무기 제작 기술이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에 다시 발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요즘 폴란드를 비롯해 스웨덴·핀란드·터키·이집트 등 세계 각국이 한국 무기에 쏟고 있는 큰 관심이 이를 증명해 준다. 한국 무기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건 K2 전차다. 육군이 보유한 미국제 M48 전차를 교체하기 위해 개발된 이 전차는 2014년 육군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당초 600여 대를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예산 등 문제로 400여 대로 줄었다. 이로 인해 마지막 분량만 생산하면 라인을 세워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폴란드가 K2 전차 1000대를 사겠다고 나온 것이다. 기존의 옛 소련제 T-계열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모두 양도한 뒤 K2 전차로 새롭게 재무장하기로 하면서다. 폴란드가 독일과 프랑스·미국 등 군사 선진국의 전차 대신 K2 전차를 선택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전차 개발·생산 기술은 세계 7위다. 미국·독일·프랑스가 1~3위고 중국은 8위다. 그런데 미국은 M1A1 전차 이후 후속 모델이 없고 독일과 프랑스는 탈냉전 이후 군비를 축소해 전차 생산 라인이 사실상 멎은 상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K2 전차가 고르지 못한 노면을 스무드하게 지나간 것은 로드암 내장형 유기압 현수 장치(ISU)라는 충격 흡수 장치 덕분이다. 자동차에 장착된 쇼크 옵서버와 같은 것이다. K2 전차의 ISU는 바닥의 충격을 흡수해 주고 디지털로 자동 계산해 전차의 포신을 항상 안정된 자세로 유지하도록 해준다. 그래서 포탄을 정확하게 사격해 명중률이 높다. 1차 사격한 뒤에도 포신의 흔들림이 거의 없어 곧바로 2차 사격이 가능하다. 심지어 K2 전차가 움직이면서 사격해도 2㎞ 이내에선 적 전차에 거의 명중한다.
그런데 독일제 레오파르트 2A7 전차는 다르다. 바닥의 충격을 흡수하는 현수 장치가 기계식인 판스프링이다. 그러다 보니 장애물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기동 중 자체 떨림도 많다. 차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사격하면 명중률이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K2 전차는 지난 1월 노르웨이 레나 기지에서 시험 사격을 할 때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표준 표적의 4분의 1 크기를 정확하게 맞혔다.
K2 이전에 한국 무기 중 최고 인기 품목은 포신 구경이 155㎜인 K9 자주포였다. 2000년 이후 155㎜ 자주포 세계 시장의 69%를 선점할 정도로 세계 최강이다. 폴란드가 최근 670문을 사기로 했다. K9을 생산하는 한화디펜스는 지난 2월에도 이집트와 200문 수출 계약을 맺었다. K9이 미국·독일·프랑스 등을 물리치고 단독 선두로 나서게 된 건 높은 성능과 신뢰성, 경쟁국 제품의 절반 이하인 저렴한 가격 덕분이다.
K9 자주포가 유럽에서 첫선을 보인 건 노르웨이에서였다. 2014년 겨울 한화디펜스(당시 한화테크윈)는 노르웨이에 K9을 수출하기 위해 경합을 벌였다. K9과 독일제 PzH2000이 마지막까지 남아 눈이 쌓인 노르웨이 산악에서 기동하고 사격했다. 이 시험에서 PzH2000은 엔진 과부하 등으로 고장이 잦았다. 유럽의 평지에 맞춰 개발한 PzH2000은 눈이 쌓여 미끄러운 노르웨이의 가파른 산악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반면 K9A1은 고장 없이 생생했다고 한다. 노르웨이와 유사한 한국의 겨울 산악 지형에서 수없이 훈련해 왔기 때문이었다. K9A1은 노르웨이 입찰을 따낸 뒤 핀란드·에스토니아 등에서도 연이어 수출 실적을 올렸다. K9 계열은 현재 9개국과 1520문의 수출 계약을 맺은 상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집트에선 K9이 육지에서 15㎞ 떨어진 해상의 부표(40×60m)를 정확히 타격했다. 1㎞ 떨어진 전차 크기의 작은 표적을 맞히는 시험도 통과했다. K9으로 적의 전차나 벙커 등을 조준해 파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경공격기도 최근 이목을 끌고 있는 품목이다. F-16 전투기를 축소한 수준이지만 내용은 첨단이다. 강대국이 아닌 경우 본격적인 전투기보다 FA-50 같은 작은 전투기가 오히려 유용하다. 공군 블랙이글스가 FA-50의 훈련기 기종인 T-50으로 공중에서 곡예를 벌이는 걸 보면 기동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폴란드도 이번에 48대를 사기로 했다. 조만간 국산 전투기 KF-21이 나오면 유럽의 전투기들과 국제 시장에서도 당당히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하고 LIG넥스원이 생산하는 천궁(M-SAM2)도 인기다. 한국형 패트리엇 미사일로 불리며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막기 위해 2011년 개발됐다. 현재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정도는 안정적으로 요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천궁의 특징은 발사된 뒤 마지막 단계에서 측면 추력 장치로 한 번 더 급선회해 적이 쏜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 35억 달러(약 4조8000억원) 어치를 팔기로 계약했다.
한국의 무기는 바다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차기 호위함(FFX)과 신형 구축함(KDDX)은 첨단 통합형 마스트와 위상 배열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 조선업계는 KDDX가 작은 이지스함 수준인 만큼 충분히 수출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방혁신 4.0과 함께 현대로템과 한화디펜스 등이 개발 중인 무인 전투 체계도 방산 수출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kim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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