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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찰의 유구한 민낯

道雨 2022. 11. 8. 09:18

정보경찰의 유구한 민낯

 

 

 

                                                            * 정보경찰의 유구한 민낯. 김재욱 화백

 

 

 

2014년 5월17일 34살 염호석씨가 강원도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삼성전자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삼성전자 제품을 수리하던 염씨는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그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뒤 회사 쪽의 집요한 탄압에 시달렸다.

노조는 염씨 유지에 따라 노조장을 치르려 했으나, 갑자기 나타난 염씨 아버지가 주검을 인수한 뒤 가족장으로 치러버렸다. 나중에 아버지가 회사 쪽에서 6억원을 받았고, 이 과정에 양산경찰서 정보경찰 2명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5월 염씨 주검 거간의 대가로 회사에서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이들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정보경찰 개혁이라는 묵은 과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정보경찰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 특별고등경찰이다. 주로 독립운동가들을 색출·추적해 탄압하는 선봉 구실을 했다. 해방 직후에는 경찰서마다 사찰계와 사찰과가 있었는데, 그 이름답게 주요 업무는 독재정권의 이해에 반하는 운동 세력이나 좌파를 사찰하고 탄압하는 것이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서도 이들의 패악질은 극악했다.

4·19 혁명 뒤 제정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은 부정선거 당시 특정 지위에 있던 이들을 열거하며, 심사위원회의 판정을 거쳐 반민주행위자의 공민권을 제한하도록 했는데, 그 대상으로 “사찰계 형사로 근무한 자”를 첫손에 꼽았다. 자유당 중앙위원과 대통령 비서, 검찰총장, 3군 참모총장 등이 순서에서 밀릴 정도였다.

 
 
 

정보경찰은 치안본부와 경찰청 시절을 지나면서도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강력한 방어막으로 작동했다. 오랜 비판에 직면한 경찰청 정보국은 2020년 공공안녕정보국으로 이름을 바꿨으나 그 기능은 여전히 바뀌지 않은 듯하다.

 

지난달 29일 밤 인파가 몰린 이태원에서 참사를 예견하는 112 신고가 잇따랐는데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앞서 안전사고 우려가 담긴 정보보고서가 작성됐지만 묵살된 사실도 드러났다.

 

대신 참사 직후 ‘정책참고자료’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경찰청 정보국 문건에는, 범죄 정보와는 무관한 전국민중행동, 세월호 관련 인권단체,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의 동향이 담겼다.

 

안전엔 무능하고 권력 심기 경호에만 유능한 ‘해바라기’ 정보경찰의 민낯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