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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안 번지는 인주’의 진실, 표창장 아닌 수료증

道雨 2023. 11. 2. 11:35

정경심 ‘안 번지는 인주’의 진실, 표창장 아닌 수료증

 

 

 

번지지 않는 인주’가 표창장? 녹취 내용과 상반

장경욱 증언, ‘문질러본 건 표창장 아닌 수료증’

‘침 발라 문질러 번진 수료증’, 실제 존재 확인

인주 번짐의 변수, ‘보관 기간’과 ‘용지 종류’

‘상장용지’는 수일 지나면 문질러도 번짐 없어

 

 

[조국 사태의 재구성] 38. 정경심 ‘안 번지는 인주’의 진실, 표창장이 아닌 수료증이었다

 

 

 

‘강사휴게실 PC’가 발견된 9월 10일 동양대 교양학부 사무실의 상황으로 나아가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소위 ‘번지지 않는 인주’ 문제다.

이 건은 표창장 위조와 관련된 직접 증거가 아닌 부수적, 정황적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의 ‘표창장 원본 은폐’ 심증의 직접적 원인이 됐고 심지어 1심 유죄 판결의 주요 근거들 중 하나로 적시됐다.

하지만 이 사안의 이면에는 기가 막히고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내막이 있었다.

 

 

인주로 찍은 직인, ‘문지르면 번진다’?

 

정경심 교수의 1심 재판 중 2020년 4월 8일 공판에는 여러 이슈들이 돌출되었다. 앞서 살펴봤듯 이날은 ‘총장 직인 파일’이 연구실 PC에서 나왔다던 SBS 보도가 오보였음이 검사와 변호인 양측에 의해 확인된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공판을 취재했던 법조기자들 중 이 SBS 오보 문제를 보도한 기자는 며칠 후 아주경제 김태현 기자 한 사람뿐이었고, 대다수는 일제히 ‘번지지 않는 인주’ 녹취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 정경심, ‘집의 수료증 인주 문질러도 안 번진대요’. YTN 뉴스 캡처

 

 

 

이 통화 녹취는 동양대 교원인사팀장 박준ㅇ가 정경심 교수와의 통화 내용을 검찰에 임의제출했던 것으로, 이 4월 8일 공판에서 검찰이 공개한 것이다. 박 팀장은 2019년 8월 27일부터 9월 7일까지 총 7회에 걸쳐 정 교수와 통화를 했는데, 통화한 내용을 모두 녹음해 휴대폰 통째로 검찰에 제출했다.

그 녹취에서 ‘번지지 않는 인주’ 관련의 전체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정 교수: 총장님 직인 있잖아요, 상장에 찍을 때 어떻게 찍어요?
박 팀장: 대장에 기재를 하고 상장 용지에 직인을 찍습니다.
정 교수: 그러니까 이럴 가능성은 없는 거죠? 예를 들면 인터넷으로 이미지를 갖다가 이렇게 엎어서 찍거나 그럴 가능성은 아예 없는 거죠?
박 팀장: 그거를 뭐 직원이나 누가 악의적으로, 직인대장의 도장을 스캔해서 얹는다 그러면 얹을 수는 있겠죠. 그걸 뭐 포토샵 같은 걸로 해서.
정 교수: 진짜?
박 팀장: 직인을 찍잖아요. 이게 빨간색 인주로. 우리는 항상 찍어 나가거든요.
정 교수: 이게 컬러프린팅이 아니고?
박 팀장: 예예. 그러다 보면 그 인주 묻어있는 부분을 손으로 이래 문질러 보면 문질러보면 지워지지 않습니까?

(중략)

정 교수: 이상하네
박 팀장: 지금 뭐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죠?
정 교수: 집에 수료증이 있는데 수료증에 내가 원이, 어… 저기, 민이 보고 좀 찾아가지고 인주가 번지는지 좀 보라고. 이렇게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그, 안 번진다고 그래서요.

 

 

이 녹음과 관련해,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정 교수가 언급한 ‘번지지 않는 수료증’이 딸의 표창장을 의미한 것이라고 몰아갔다. 반면 정 교수 변호인은 녹취에서 실제 언급했던 대로 ‘아들 수료증’에 대한 문의라고 반박했다. 정 교수의 아들은 실제 동양대에서 두 차례 인문학 강좌에 참가하고 수료증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사실 조국 부부의 자녀에 대한 의혹 제기는 애초 표창장이 아닌 수료증에서 시작됐다. 검찰은 2019년 8월 말부터 이미 아들 수료증 관련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녹취의 당일인 9월 5일에도 채널A가 조국 아들 수료증에 대한 꽤나 구체적인 내용의 의혹 보도를 내보냈다. 검찰이 해당 강좌에서 찍힌 사진에서 조국 아들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허위 수료’를 의심한다는 것이다. ☞ [단독]사진에 없는 조국 아들, 인문학 강좌 ‘가짜 수료’ 의혹

 

* 채널A는 2019년 9월 5일 아들 수료증 의혹을 단독 보도했다. 채널A 뉴스 캡처.

 

 

 

이 보도에서 검찰은 ‘9월 3일 압수수색에서 아들의 인문학 강좌 관련 자료도 압수했다’면서 ‘정 교수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는지 수사중’이라고 했다. 딸에 이어 아들에 대한 수사까지 본격화된 것으로 보이는 국면인 것이다. 이로써 정 교수는 딸의 표창장 문제에 더해 아들의 수료증 문제까지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즉 표창장 의혹이 진행 중인 국면에서 정 교수가 뜬금없는 ‘수료증’ 명분으로 꺼내든 것이 아니라, 당시 표창장 의혹과 수료증 의혹이 동시 진행 중이었고, 원래 먼저 진행 중이었던 수료증 수사보다 표창장 수사가 훨씬 커질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상할 수도 없었던 시점이었다.

 

 

‘번지지 않는 인주’가 표창장? 녹취 내용과 상반

 

그런데 검찰의 주장대로 당시 정 교수가 궁금해했던 것이 수료증이 아닌 표창장의 직인이었고 또 정 교수가 그런 방식으로 위조했다고 가정한다면, 오히려 이 녹취된 대화의 내용은 합리적인 상식을 한참 벗어난 어불성설이 된다.

직인 이미지를 잘라 넣는 방식으로 표창장을 위조했던 당사자가, 위조라는 숱한 공격을 한 몸에 다 받고 있는 와중에 학교 관계자에게 ‘그런 방식으로 표창장을 만들 수는 없겠죠?’ 하고 물어본다? 또 본인이 프린터로 인쇄해 놓고 학교 측에 전화까지 해서 ‘왜 안 묻어나지?’, ‘이해가 안 가네’ 하며 당황한다?

그렇다면 혹시 정 교수는 프린터 인쇄의 결과물은 문질러도 번지지 않는다는 기초적인 상식도 없어서, 표창장 위조 관련 언론 보도가 일파만파 퍼진 상황에서 굳이 그걸 학교 관계자에게 물어봐야 했다는 건가?

‘정경심이 위조의 주인공’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이 대화 내용은 어떤 방식과 상상을 동원해도 정상적으로 해석이 되지 않는다.

검찰 주장의 실질적인 핵심 취지는 정 교수가 ‘표창장 제작 방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제 발 저려 전화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대화의 내용은 어떻게 다방면으로 노력해보더라도, 정 교수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표창장을 만들어서 전화해 하소연한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표창장이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맥락이다. 정 교수는 수료증이나 상장 등이 이미지 편집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지 여부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날 정 교수에겐 그런 의심을 해야 할 직접적인 이유가 있었다.

지난 회에서 살펴본 대로, 이 9월 5일은 이인걸 변호사가 연구실 PC의 포렌식 현장을 참관한 황인형 변호사의 말을 정 교수에게 전달한 날이었다. 이날 포렌식 현장을 함께 참관한 검찰 수사관들은 연구실 PC에서 ‘아들 상장’을 찾아내고는 그것을 황 변호사에겐 ‘총장 직인 파일’이라고 이해하도록 기망했고, 그런 검찰의 거짓 정보가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없이 정 교수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따라서 당시에도 표창장 원본을 찾지 못하고 있던 정 교수로서는, 당시 가지고 있던 비슷한 총장 직인 날인 증서인 아들의 수료증을 가지고 그 같은 일, 즉 총장 직인이 찍힌 수료증이나 상장이 직인 파일을 이미지 삽입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확인해보려 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요컨대 검찰이 이날 공판에서 ‘몰이’를 했던 방식은, 녹취 내용을 풀어놓으면서도 정작 그 대화의 실제 맥락은 무시하고 ‘정경심 교수의 입에서 표창장 위조 방식이 거론됐다’라는 단편적 사실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이다. 이는 마치 경찰이 피의자에게 ‘당신이 살인범이니 살해 수법을 알고 있는 것 아니냐‘라고 몰아붙이는 것과 같은 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 표창장 제작 방식의 가장 핵심인 ‘총장 직인 파일’ 키워드를 정 교수에게 주입시킨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포렌식 현장을 참관한 검찰 수사관들이다. 다시 살인 사건에 비유하자면, 경찰이 피의자에게 미리 살해 방식을 슬그머니 흘려 줌으로써 그 관련으로 수소문하도록 유도한 것과 같은 일이다. 그래 놓고는 '살인 수법을 알고 있었잖아!'라며 몰아붙인 것이다.

이처럼 표창장 제작 방식을 먼저 언급한 것이 정 교수가 아닌 검찰이었고, 정 교수는 검찰이 흘린 말에 당황해 수소문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 이날 공판에서 완전히 간과됐다. 실체적 진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렇게 어이없게 조작되고 왜곡되며, 그 결과로 엄중해야 할 법원의 판결문도 거짓이 된다.

 

 

* ‘표창장 제작과정을 물어봤으니 범인’이라 단정했던 진중권. 진중권 페이스북 캡처

 

 

 

장경욱 증언, ‘문질러본 것은 표창장 아닌 수료증’

 

그런데 이 ‘번지지 않는 인주’ 대화는 박준ㅇ와의 대화가 끝이 아니었다. 정경심 교수는 9월 5일 당일 박준ㅇ와의 통화 후 동료 교수인 장경욱 교수와도 전화로 관련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즉 9월 5일에 전화로 ‘번지지 않는 인주’ 관련으로 통화한 사람은 박 팀장만이 아니라 장 교수까지 두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장경욱 교수는 박 팀장처럼 몰래 녹취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3개월여 후인 2020년 7월 23일 공판에 출석해 법정 증언으로 당시 정 교수와의 통화에 대한 공식 기록을 남겼다.

장 교수의 증언 내용은, 당시 정 교수가 박준ㅇ 팀장과의 통화 후 자신과 통화하면서 수료증에 침을 바르면서 뭔가 연구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아래는 변호인 신문에서의 증언 내용이다.

 

“정경심 교수가 원이 수료증인가 상장인가 원이 거를 가지고 보고 있는데 이게 침을 바르니 뭐니 하여튼 저는 왜 그 직인을 연구하는지 몰랐는데 그런 얘기를 저랑 나눴습니다.”

 

여기서 ‘침을 바르니 뭐니’라는 말만 봐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될 것이다. 이보다 좀 더 명확해진 진술은 같은 공판의 검사 측 재신문 과정에서 드러났다.

 

안 검사: 조원 수료증 직인 부분이 번진다고 했나요, 안 번진다고 했나요.

장 교수: 안 번져서 나중에 저는 앞에 뭔 얘기가 있고 나중에 침 발라서 해봤다고 하는데 침 바르는 흔적이 있는 수료증이 있을 겁니다.

안 검사: 정경심 피고인이 조원 수료증 직인이 침 발라봐서 번졌다고 했나요, 안 번졌다고 했나요.

장 교수: 안 발라서 침 발랐더니 그게 묻어나더라, 이렇게 들었습니다.

 

 

* 장경욱 교수는 9월 5일 밤 정 교수와의 통화에서 수료증 직인에 침을 발랐더니 번지더라 라는 말을 들었다. 장경욱 증인신문 조서 캡처

 

 

 

그냥 손으로 문질렀을 때는 안 번졌는데, 나중에 침을 발라서 문질러봤더니 묻어나고 번졌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정 교수가 박준ㅇ과 통화하면서 문질렀을 때 안 번졌다는 것은 ‘전반부’에 불과했고, 박준ㅇ과의 통화 이후 다시 침을 발라 문질렀더니 번졌다는 것이 전체 사실관계였다.

그런데 이 중요한 증언 부분은 당시 공판을 취재한 법조기자들 누구도 보도하지 않았다. 이 공판에는 포렌식 분석관들과 문서감정관 등이 먼저 증인으로 나왔고, 특히 오전에 출석한 포렌식 분석관 이승무의 강사휴게실 PC에 대한 검찰 측 포렌식 결과 증언에 모든 언론의 보도가 집중됐다. 

 

 

‘침 발라 번진 수료증’, 실제 존재 확인

 

장경욱 교수는 당일 공판의 시간이 많이 지체된 후 나온 마지막 증인이었고, 이 '인주' 관련 증언은 장 교수의 증언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진술이었다. 법조기자들뿐만 아니라 재판부도 이 증언을 완전히 무시했고, 그래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장 교수가 이 증언에서 “침 바르는 흔적이 있는 수료증이 있을 겁니다”라고 진술했던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이번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장경욱 교수에게 연락을 해서 이런 사실 관계들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이 통화에서, 장 교수는 이전에 공개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장 교수가 이 증인 출석 이후에 실제로 직인 부분이 문질러져서 번져 있는 수료증의 사진을 자신이 실제로 목격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사실에 대해 다시 크로스체크를 하기 위해 필자는 다른 경로로 탐문을 했고, 이 ‘침 발라 문질러 번진 수료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

요컨대 이 문제의 수료증은 검찰이 실물을 확보하고 있어 장 교수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 경우 즉각 확정적으로 반박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장 교수는 실제 침 발라 번진 직인의 수료증 사진을 자신의 봤다는 것이며, 이는 다른 경로로도 사실임이 확인됐다.

실제 문질러서 번진 수료증이 존재한다는 것은, 1심의 4월 8일 공판 당시 검찰이 몰고 갔던 ‘문질러봤다는 것은 수료증 아닌 표창장이었다’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대 증거가 된다. 또 정 교수의 말대로 당시 침을 발라 문질러 본 것은 아들이었으니 굳이 필요하다면 DNA 분석도 가능할 것이다.

결국 ‘표창장이 아닌 수료증의 직인을 문질러 본 것’이라는 정 교수 측 주장은 진실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주 번짐의 변수, ‘보관 기간’과 ‘용지 종류’

 

그런데, 이 수료증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의문을 가져볼 부분이 있다. 그냥 손으로 문질렀을 때는 안 번졌고, 또 침을 발라 문질렀더니 번지더라,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여기에 ‘번지지 않는 직인’ 문제에서 그동안 완전히 간과되었던 문제가 하나 있다. 과연 상장이나 수료증에 인주로 찍은 직인은, 손으로 문지르면 번지는 게 당연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먼저, 필자가 현 시점에서 2019년에 필자의 고객사와 계약했던 ‘계약서’의 직인은 손가락으로 문질렀을 때 번졌다. 반면 2010년에 날인된 다른 고객사와의 ‘계약서’의 직인은 아무리 문질러도 번지지 않았다. 이 계약서들의 종이는 모두 일반 A 용지였다.

한편 필자가 보관 중인 직인이 날인된 문서들 중에 ‘인감증명서’들도 여러 개가 있는데 각각 2013년, 2015년, 2016년에 발급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감증명서’의 직인은 실제 인주로 찍은 것인데도 시점과 무관하게 아무리 문질러도 번지지 않았다.

(부연하자면, 인감증명서 상단의 ‘인감’ 부분이 아니라 증명서 하단의 ‘발행기관 직인’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발행기관 직인은 인쇄된 것이 아니라 실제 인주로 찍힌 것이다.)

 

 

* 인감증명서 하단부. 발행기관의 직인이 찍혀 있고, 가장 아래에는 ‘특수용지’라고 명시되어 있다.

 

 

 

반면 2016년에 일반 A4 용지를 사용한 ‘계약서’에 찍힌 직인은 지금도 문지르면 번지고 있다. 같은 2016년 시점에 찍힌 인주 직인인데도 ‘인감증명서’는 안 번지고 ‘계약서’는 번지는 것이다. 그러면 이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확인해보니, 인감증명서는 전용의 특수용지가 따로 있었다. 인감증명서를 발행할 때 사용하는 용지는 조폐공사에서 별도 제작하는 특수용지로서 그 하단에 “210mm X 297mm(특수용지 80g/㎡)”라고 별도 표기되어 있다.

즉 ‘인감증명서 전용 용지’는 일반 A4지에 비해 번짐이 훨씬 적어 잘 묻어나지 않고, 비교적 단시간 내에 전혀 묻어나지 않는 것이다. 인감증명서에 전용 용지를 사용하는 주목적은 위변조 방지이지만, 부수적으로 장기간 보존의 목적에 따라 번짐이 덜한 용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추가로 더 확인해보니 인감증명서뿐만 아니라 관공서에서 발행하는 ‘증명서’ 종류는 모두 ‘보존용지’를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인감증명서 역시 증명서이므로 그 용지 역시 보존용지 종류일 것이 당연하다.

정리하자면, 종이에 찍힌 직인의 번짐 여부는 무조건 일정한 것이 아니라, ①’보관 기간’과 ②’용지 종류’에 따라 크게 상이한 것이다.

 

 

‘상장용지’, 수일 지나면 문질러도 번짐 없어

 

그러면, 일반A4 용지와 인감증명서용 특수용지가 아닌, 수료증이나 상장 등에 사용되는 ‘상장용지’는 어떨까?

필자는 2020년 정경심 교수의 1심이 진행되던 동안 동양대 장경욱 교수와 함께 다양한 표창장 인쇄 테스트를 했었던 바 있다. 당시 시험을 위해 시중의 여러 상장용지들를 구입했었고, 그와 별도로 장경욱 교수의 도움으로 동양대의 상장용지들도 입수했었다.

 

 

*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다양한 상장 용지들.

 

 

 

이런 여러 종류의 상장용지들에, 필자는 한 달쯤 전에 같은 필자의 도장을 여러 번 찍어두고 시기별로 하나씩 따로 문질러봤다.

결과는? 상장용지에 인주로 찍은 직인은 찍은 직후에는 문질렀을 때 묻어 번졌다. 다음날에 다시 문지르자 역시 약간 번졌다. 그런데 3일 후부터는 거의 번지지 않았고, 일주일이 지나자 문질러도 번지지 않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2일차로, 엄지에 힘을 줘서 눌러 30번 이상 문질렀지만 전혀 번지지 않는 상태다. 별도 구입한 상장용지들과 동양대 상장용지 모두 결과가 같았다.

결국 동양대 것을 포함해 통상적인 ‘상장용지’에 인주로 찍힌 직인은, 불과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문질러도 전혀 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혹시 인주의 품질에 차이가 있고 동양대에서 사용하는 인주가 저가품이어서 일반 인주보다 많이 묻어날 수도 있을까? 하지만 필자가 사용하는 인주 역시 고급품이 아닌 시중 문구점에서 구입한 저가 제품이다.

또 종이에서의 번짐 여부에 물리적 변수가 될 수 있는 인주의 주성분은 피마자유인데, 이 피마자유는 고급, 저급을 막론하고 어떤 인주이든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인주의 차이로 번짐 정도에 차이가 생긴다고도 보기 힘든 것이다.

한편, 장경욱 교수의 ‘침 발라 문질렀더니 번졌다’ 증언을 확인한 후 필자 역시 이전에 문질러도 번지지 않았던 직인 부분에 다시 침을 발라 문질러 봤다. 그랬더니 정말로 직인 주변으로 번졌고, 손가락 지문 부분에도 빨간 인주 흔적이 묻었다. 장경욱 교수가 증언한 내용이 실제 사실과 일치한 것이다.

 

 

박준ㅇ의 거짓 주장, 장경욱의 진실

 

앞서 녹취의 대화에서 박 팀장은 정 교수에게 ‘인주 부분을 손으로 문지르면 지워진다’라면서 문질렀을 때 번지는지 여부가 ‘인주로 찍은 직인’과 ‘인쇄된 직인’을 구별하는 기준인 것처럼 정 교수에게 알려줬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된 박 팀장의 말은 정경심 교수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

하지만 실제 사실은 전혀 달랐다. 상장용지에 찍힌 인주 직인은 불과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손으로 문질러도 번지지 않는다. 즉 기본적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인 것이다.

더욱이, 상장용지에 비해 장기간 번지는 일반 A4 용지에 찍은 직인조차도, 2016년 것은 번지는 반면 2010년 것은 번지지 않았다. 이를 볼 때 문제의 시기인 2012년, 2013년에 찍힌 것은 번지지 않을 개연성이 상당하다. 즉 2012, 2013년 직인이 찍힌 상장용지 수료증은 너무도 당연히 번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대 교원인사팀장 박준ㅇ가 정 교수에게 인주로 찍은 직인과 인쇄된 직인을 구별하는 기준이 번짐 여부인 것처럼 알려준 것은, 결과적으로 거짓이었다. 반면 장 교수가 증언으로 전한 정 교수의 말, ‘침 발랐더니 지워졌다’는 그대로 사실이었다.

2019년 9월 5일, 정경심 교수와의 통화에서 ‘번지지 않는 인주’ 관련 말을 들었던 동양대 관계자는 박준ㅇ 팀장과 장경욱 교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박 팀장의 녹취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재판부의 유죄 심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반면, 장 교수의 증언은 어느 언론도 보도하지 않았고 재판부도 전면 무시해 완전히 묻혀버렸다. 그 결과로 정 교수의 표창장 위조 혐의에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 ‘번지지 않는 인주’ 관련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회에서 계속 이어진다.

 

 

 

 

박지훈 IT 전문가jeehoon.imp.par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