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없는 지하철' 상 주자? 이 나라에선 이미 실패한 실험
싱가포르 지하철 실험의 교훈... 성공한 아이디어는 따로 있었다
지난 10일, 서울시가 '의자 없는 지하철'을 시범운행 하기 시작했습니다. 출근길 시간 지하철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의자 없는 지하철' 타보니…"아이디어 낸 사람 상 줘야" 감탄"이라며 극찬을 한 언론(중앙일보)도 있고, "의자 없는 4호선 '불편' '널널' 엇갈린 반응... 안전 우려도"라며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안전에 대해 우려하는 언론(오마이뉴스)도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일정 기간 시범 운행을 한 뒤 혼잡도 개선 효과가 검증되면 확대 시행도 검토할 거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출퇴근 시간에 혼잡한 지하철에서 힘들어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해 보는 것 대신 이미 이 방법을 시도해 본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는 건 어떨까요?
다른 나라에선 이미 실패한 실험
싱가포르는 2017년에 이미 같은 이유로 의자 없는 지하철을 시범운행 했습니다. 당시 싱가포르 언론 역시 승객 인터뷰 형식으로 찬반 의견을 함께 담아 보도했습니다. 5년이 더 지난 오늘, 싱가포르의 지하철에는 아직도 의자가 없는 객차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의자는 다시 설치되었습니다. 객차 안의 모든 의자를 치워버린 건 안전상 이유로도, 승객의 편의성을 위해서도 잘못된 결정이었습니다.
▲ 두 개의 객차에 한해 의자를 절반 정도만 없앴습니다. 앉아 가는 사람, 서서 가는 사람, 유모차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까지 모두 함께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이봉렬
그럼, 시행착오를 거친 이후인 지금의 싱가포르 지하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싱가포르 지하철은 MRT라고 부르는데 현재 6개 라인, 134개의 역이 있습니다. (라인마다 지하철 객차 시설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체 객차 중 두 개의 객차에 한해 의자를 절반 정도만 없앴습니다.
승객이 없는 시간에는 다들 앉아 갈 수 있고, 승객이 많아서 비좁은 시간에는 자연스럽게 의자 없는 쪽으로 사람들이 이동하게 되는 겁니다. 승객이 없는 시간에도 모두 다 어쩔 수 없이 서서 가야 하는 서울 지하철의 시범운행 칸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 의자 두 개를 빼고 기댈 수 있는 시트를 설치했습니다. 자전거, 휠체어, 유모차, 여행용 가방 등 여러 용도로 사용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 이봉렬
의자를 몇 개만 없앤 칸도 있습니다. 객차의 맨 끝부분에 둘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치우고 엉덩이를 걸칠 수 있는 시트만 남겨 두었습니다. 서서 가더라도 기댈 수 있어서 어느 정도 힘이 분산되어 도움이 됩니다. 의자 두 개를 없앤 이유는 혼잡도를 줄이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싱가포르 모든 역에는 가장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휠체어나 유모차를 가지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정 크기 이하의 자전거 역시 가지고 탈 수 있습니다. 의자 두 개를 뺀 곳이 바로 그런 경우를 위해 마련한 자리입니다. 휠체어, 유모차, 자전거, 여행용 가방 등 넓은 공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 싱가포르의 모든 지하철 역에는 휠체어 규격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대부분의 경우 승강장에서 3미터 안쪽으로 장애인이 이용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 이봉렬
물론 모든 지하철의 두 칸은 장애인용으로 지정되어 있고, 장애인용 휠체어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그걸로도 모자랄 수 있어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 겁니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행위 자체가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투쟁이 되는 서울 지하철과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 장애인용 칸에는 휠체어 전용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해서 지하철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라면 유모차를 끌든, 큰 짐을 옮기든 모두가 쉽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이봉렬
의자 없는 지하철에 대한 이야기를 SNS에 썼더니 많은 이들이 출퇴근 시간에는 접었다가 낮에는 펼 수 있는 의자를 설치하는 방법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이것도 아미 싱가포르에서 시험한 아이디어 입니다.
결론은 이것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복잡한 시간에 의자를 접는다 해도 접힌 의자 자체가 공간을 많이 차지해서 효과는 없는 상황에서 승객들에게 불편을 줬습니다. 버튼을 눌러 접는 방식인데 이미 앉아 있던 승객이 객차가 복잡해졌다고 다 같이 의견을 모아 의자를 접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접고 펴는 구조 때문에 의자가 펴져 있는 상태에서도 공간을 더 차지했습니다.
성공한 방식은 따로 있다
▲ 필요할 때만 펼쳐서 사용할 수 있는 의자, 공간 활용을 위해 설치했지만 한번도 접어서 사용한 적 없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 LTA (싱가포르 교통부)
혼잡도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혼잡한 시간에 지하철 운행 횟수를 늘리는 겁니다. 비용이 문제라고 하는데 개인이 타고 다니는 전기 자동차를 살 때 세금으로 수백만 원의 지원금을 주는 정부와 지자체가 다수의 서민이 타고 다니는 대중교통에 세금을 지원하는 건 왜 그리 아까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싱가포르 교통국은 2013년, 러시아워가 시작되기 전인 오전 7시 45분 이전에 시내 중심 지역에 있는 16개 지하철역의 출구를 통과하는 승객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는 실험을 했습니다. 오전 7시 45분에서 8시 사이에 출구를 통과한 승객은 지하철 이용 요금을 50% 할인해 줬습니다.
▲ 싱가포르에선 지하철 탑승 시간을 기준으로 오전 7시 45분 이전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든 승객에게 50센트 (약 500원)을 할인해 주고 있습니다 ⓒ PTC (싱가포르 대중교통협의회)
일년 동안 진행된 이 실험 결과 지하철 혼잡율은 7%가량 낮아졌습니다. 이 실험 이후 싱가포르는 지하철 탑승 시간을 기준으로 오전 7시 45분 이전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든 승객에게 500원을 할인해 주고 있습니다. 의자를 없애는 식으로 채찍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요금을 깎는 식으로 당근을 주는 겁니다.
지하철 혼잡을 해소하겠다면서 애꿎은 의자를 없애 시민의 불편을 강요하는 서울시는 승객을 대상으로 철지난 실험을 반복하기 보단 싱가포르 등 해외의 사례를 참조해서 시민의 편의를 돕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휠체어와 유모차가 아무 불편 없이 지하철을 이용하도록 아이디어를 내고 승객 분산을 위해 예산을 쓰는 싱가포르, 객차 내 혼잡도를 줄이겠다고 있던 의자마저 치우겠다는 서울시. 수준 차이가 너무 나서 지켜보기가 민망할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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