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지키려 공직 버린 구청장, 국힘 ‘불량 공천’ 책임져야
문헌일 서울 구로구청장이 주식 백지신탁 결정에 불복해 16일 사퇴한다고 밝혔다. 보유 주식을 지키려 소송까지 냈으나 패소하자, 아예 구청장직을 내던진 것이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2022년 7월 민선 8기 구청장에 취임한 지 2년여 만이다.
이렇게 공직을 가벼이 여기는 인물을 공천한 국민의힘은 공식 사과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문 구청장은 서울 구청장 중 재산이 두번째로 많았다. 올해 196억3446만원의 재산을 신고해, 지난해보다 47억8123만원 늘었다. 정보통신 설계·감리 회사인 문엔지니어링 최대주주인 그는, 문엔지니어링 비상장주식 4만8천주 등 주식으로만 169억9334만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
인사혁신처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는 지난해 3월, 문 구청장의 문엔지니어링 주식이 공직자 업무와 상충한다고 보고, 해당 주식을 백지신탁 하라고 결정했다.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은 직무와 관련 있는 3천만원 이상의 보유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 해야 한다. 백지신탁 한 주식은 수탁기관이 60일 이내에 처분해 다른 재산으로 바꾸어 운용하고, 수탁기관은 위탁자에게 신탁재산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 위탁자가 신탁재산의 운영에 관여할 수도 없다.
문 구청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관내 사업자가 발주하는 사업의 수주를 금지하는 것으로 회사 정관을 변경했고, 본점을 구로구에서 금천구로 이전했으므로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식 백지신탁에 대한 고위 공무원들의 불복 사례는 2021년 1건에서 지난해 3건, 올해 7건으로 급증했다. 윤석열 정부의 돌격대장 노릇을 자처한 유병호 감사원 감사위원이 사무총장 시절,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배우자의 주식을 백지신탁 하라는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패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해충돌에 관한 공직자들의 인식이 해이해진 것이다.
구로구청장 보궐선거는 내년 4월2일 치러질 예정이다. 보궐선거 비용으로 수십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한다. 애초에 공천을 제대로 했다면 쓰지 않아도 될 돈을 낭비하는 셈이다. 행정 공백으로 인한 주민 불편까지 고려하면, 유형무형의 공적 손실이 적지 않다.
공직에 관한 인식이 희박한 인물을 40만명에 가까운 구민의 삶을 책임지는 자리에 공천한 국민의힘은 사죄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보궐선거에 공천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상식 아닌가.
[ 2024. 10. 17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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