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자, 뻔뻔한 자, 비겁한 자
그는 비루하고 졸렬했다. 그는 끝까지 국민을 우롱했다.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뒤집어엎으려 하고, 한달 넘게 나라를 혼돈에 빠뜨렸던 사람이, 국민들에게 사과는커녕 변명과 궤변만 늘어놨다. 심지어는 자신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법이 모두 무너졌다’고 했다.
이런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뻔뻔하기가 철면피 같았다.
평소 법치의 화신인 것처럼 행세했던 이가, 정작 자신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자, 모든 법 적용을 거부해놓고선, 되레 법이 무너졌단다.
그리고 ‘관저 농성’을 하며 극렬 지지층을 선동하고 공권력 간 충돌까지도 압박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석에 응한다고 했다.
그가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됐다거나 ‘칠흑같이 어두운 시절’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는 말문이 턱 막혔다.
언어도단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인가.
야심한 밤에 군경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침탈한 뒤 독재정권을 수립하려 한 자가 도대체 할 소리인가.
그의 영상메시지는 문장 하나하나가 거짓으로 분칠돼 있어, 정반대로 읽어야 사실에 부합한다.
며칠 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한겨레를 비롯한 몇몇 진보매체에 단전·단수를 지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 그날 밤을 떠올렸다.
무시무시한 계엄포고문을 읽으며, 특히 언론인으로서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제3항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1970~80년대 같은 언론 암흑기가 시작됐음을 예고하는 문구였다.
다음날 새벽엔 계엄군이 신문사 출입을 통제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간단한 옷가지와 비상식량만 챙겨 회사로 향했다. 그래도 단전·단수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기사·칼럼 검열을 했지, 단전·단수까지 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아예 윤전기를 세워 신문을 내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던 셈이다. 이들은 군사독재 정권보다 더 악독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때, 처음엔 윤석열 대통령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가 총과 도끼를 써서라도 국회의원들을 본회의장에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전두환 같은 ×’라는 욕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 명령을 따랐다면 1980년 광주에서 벌어졌던 그런 유혈사태가 빚어졌을지 모른다.
그러고는 43일간 관저에 칩거하며 수사기관 소환을 거부하고 체포영장 집행도 거부했다. 지지층에 편지를 보내 자신을 지켜달라 선동했다.
마지막에는 관저를 요새화하고, 경호관들에게 ‘총은 안 되더라도 칼이라도 휴대해서 무조건 막으라’고 했다 한다.
미증유의 공권력 간 충돌이 벌어져도, 경호관들이 범법자가 돼도 알 바 아니라는 태도였다.
이런 식으로 극렬 지지층을 자극해 ‘내전’을 유도하고, 시간 끌기를 하며 뒤집기를 시도하려는 술수였다.
그는 체포되는 순간까지도 지지층을 선동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젠 그가 구제불능의 사악한 인간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계속 억지를 부릴 수 있는 건 비호 세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국민의힘 주류는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이 대역죄를 지었으면 마땅히 법적 절차에 따르도록 설득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되레 그를 감싸고 있다.
‘원조 윤핵관’ 권성동 원내대표는 체포영장을 ‘짝퉁 영장’이라 부르며 불법이라 우긴다. 윤상현 의원은 비상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했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김기현·나경원 의원 같은 중진 의원마저 관저 사수대에 가담했다.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친위 쿠데타마저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진영 대결로 몰고 가려는 책략이다.
권력을 놓치 않으려 이렇게 혹세무민하는 뻔뻔한 이들은, 더 이상 정치인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하다.
전임 한덕수 총리에 이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비겁하다. 그는 무정부 상태를 질서 있게 정리해 나가야 할 막중한 책무가 부여돼 있다. 더는 경제만 책임지는 관료가 아니라, 중요한 국정 현안에 대해 정무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정치 지도자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는 공수처·경찰 대 경호처 사이에서 관전자인 양 행동했다.
사태를 냉정히 봐야 한다. 윤석열 비호 주도자들은 그가 파멸하면 직간접으로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사건에 연루가 의심되거나, 검찰 혹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 등 각종 개인적 인연으로 얽혀 있는 이들이다.
거짓을 참이라 우기며 지연전략을 펴는 이들의 궤변과 요설에 더는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한달 넘게 이어진 혼란으로 국민들 간 분열이 심해지고 국가 이미지도 훼손됐다.
1960~70년대 쿠데타가 빈발하면서 정정 불안국으로 낙인찍힌 남미 국가들처럼 각인돼선 안 된다.
그 누구보다도 정치 지도자들이 혼돈을 조장 혹은 방치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원칙에 입각해 헌정질서 회복에 협력해야 한다.
박현 | 논설위원 :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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