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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의 비뚤어진 정의

道雨 2025. 5. 8. 09:53

조희대 대법원의 비뚤어진 정의

 

 

 

미국 대선 후보들의 티브이(TV) 토론회는 주먹만 쓰지 않았지 싸움이나 진배없다. ‘말로 하는 격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누가 상대방의 예봉을 피하면서 공세적으로 밀어붙이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잠시라도 말을 더듬거렸다가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처럼 곧바로 후보 자격을 의심받는다.

후보들은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도 기지를 발휘해 돌파해야 한다. 그래서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거나 심지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거짓말 제조기로 불릴 정도로 예외적 인물이지만, 다른 대선 후보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필자가 2012년 특파원 시절 지켜봤던 버락 오바마(민주당)와 밋 롬니(공화당) 후보간 토론회에서도 그랬다. 언론과 팩트체크 기관들은 발언의 진실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작업을 해 유권자들에게 알리기에 바빴다.

대표적 팩트체크 기관인 폴리티팩트(Politifact)의 확인 결과, 정직하기로 이름난 오바마조차도 선거 토론과 유세 과정에서 나온 603개 발언 가운데 거의 거짓말과 거짓말이 각각 11%, 새빨간 거짓말도 1%를 차지했다.

 

이 기관은 ‘사실-거의 사실-절반만 사실-거의 거짓말-거짓말-새빨간 거짓말’ 6단계로 평가한다. 트럼프의 경우 1024개 발언 가운데 거의 거짓말 19%, 거짓말 39%, 새빨간 거짓말 19%였다. 다른 정치인들도 ‘절반만 사실’이 중윗값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검찰이 기소를 하고, 법원이 허위사실 유포죄로 처벌하는 경우는 없다. 아예 이를 문제삼는 법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선 과장이 섞이거나 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발언을 하더라도 공론의 장에서 걸러지도록 하고, 유권자들의 최종 심판에 맡긴다.

 

 

우리나라도 ‘돈은 묶고 입은 풀라’는 게 선거법의 기본 취지다. 대법원도 선거법 위반죄에 대해 선거운동의 자유를 점차 확대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해왔다.

그런데 어떤 연유에선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방향이 바뀌고 말았다.

선거 과정의 치열한 정치적 공방 속에서는, 고도로 단련된 후보라 하더라도 발언이 즉흥적이고 거칠어 사실과 다소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후보자의 표현의 자유는 더 넓게 보장해줘야 하는데도, 조희대 대법원은 되레 일반인보다 협소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동원했다.

돈도 묶고 입도 묶겠다는 권위주의 시대의 발상이다. 이는 민주주의 축제장인 선거에서, 후보자를 위축시키고, 주권자들의 선택권을 제약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퇴행시킨다.

 

 

대법원은 이런 시대착오적 원칙뿐만 아니라, 구체적 발언에 대해서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판단을 내렸다. 쟁점은 골프 발언과 백현동 발언 두개다.

골프 발언은 ‘국민의힘에서 4명 사진을 찍어가지고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 사진 중 일부를 떼내 가지고 이렇게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지요’라는 내용이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이 발언을 ‘골프를 친 것처럼 조작한 것’이라 해석했으나, 반대의견의 주장처럼 ‘사진을 조작한 것’이라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유권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이 후보가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단정적으로 판단했다.

유권자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 이를 어떻게 알고서 판단했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다. 우리가 판결하면 그게 정답이라는 오만함이 느껴진다.

 

백현동 발언에 대한 판단은 더 심각해보인다. 이 발언은 이 후보가 국토교통부의 혁신도시법상 의무조항(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에 근거한 요구를 받고 백현동 부지의 용도지역을 변경했으며, 그 과정에서 국토부로부터 이를 어길 시 직무유기를 문제삼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는 취지다.

다수의견은 국토부의 2014년 12월9일 ‘의무조항에 근거해 용도지역 변경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공문을 근거로 이 발언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반대의견을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국토부는 이미 2006년 발표한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에 식품연구원을 포함했고, 이에 따라 식품연구원은 이전 자금을 마련하고자 2011~2013년 8차례에 걸쳐 백현동 부지 매각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식품연구원은 성남시에 용도지역 변경을 3차례 요청했고, 그때마다 국토부도 성남시에 협조 요청을 했다. 이 후보가 국토부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압박’받은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과장해서 문제의 발언을 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판결문 어디를 읽어봐도 다수의견이 이런 배경까지 고려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관가를 십수년간 출입해본 경험상, 정부부처와 지자체·공공기관은 사실상 갑을 관계나 마찬가지다. 정부부처는 법령 개정과 예산배분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 부처 공무원의 말을 압박감으로 느끼기 마련이다. 대법원은 공문에 드러나지 않는 이런 ‘진실’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다수의견 대 반대의견 10 대 2.

이 숫자로 보면 다수의견이 훨씬 설득력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30년 남짓 사회 현안을 다루며 글을 써온 상식인으로서 판결문을 숙독한 소감은, 반대의견이 전체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다들 머리 좋은 대법관들인데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다수의견 대법관들이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수진영 여론주도층들을 만나보면, ‘윤석열 탄핵’에 찬성한 나름 합리적 인사도 이 후보에 대해서는 포퓰리스트라며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보수적 법관들도 그런 정서에 빠져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 판결의 절차와 내용 모두 설명이 잘 안된다.

다수의견 대법관 5명은 보충의견에서 초고속 심리를 해명하려는 듯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편견에 사로잡혀 내린 비뚤어진 정의야말로 정의가 아니다.

 

 

 

박현기자

논설위원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