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검경, 공권력, 공공 비리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 강화하기 위해 판사를 선출하면…

道雨 2025. 6. 23. 09:32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 강화하기 위해 판사를 선출하면…

 

 

 

민주주의(民主主義)란 무엇일까.

한자로 ‘백성이 주인이 되는 방침’이다.

‘국민의 자기지배’로 표현된다.

 

간단해 보이지만, ①누가 국민인가, ②국민의 의사를 무엇이라고 인식할 것인가, ③국민의 의사를 공동체의 주요 결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의 영역으로 질문을 나누어 보면 답을 내기가 만만치 않다.

 

유색인종이나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선출된 위정자에게 국가 공동체의 중요 사항을 결정할 권한을 무조건적으로 위임하였기에, 그들의 결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의도 해서는 안 된다던 시절이 있었다. 다수의 의사라면 소수자의 생명을 빼앗아도 정당하다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및 대통령 등을 선거로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하되, 국민의 직접 참정권(국민투표제도, 국민소환권, 청원권 등)을 인정하여 대의제를 보완한다. 민주주의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나타난 대규모 집회·시위와 시민운동도, 우리나라의 특징적 국민주권 실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법치주의(法治主義)란 무엇일까.

한자로 ‘법이 다스리는 방침’이다.

이는 사람이 법을 사용해 나라를 통치한다는 뜻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법을 준수하여 법이 공동체의 실질적 행위규범이 되도록 하는 것도 법치주의의 요소이긴 하나, ‘통치권력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법으로써 제한한다’는 부분이 핵심적 내용이다.

이를 위해 통치권력도 법 앞에선 평등해야 하고, 법적 판단을 내리는 사법은 통치권력인 입법 및 행정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사법이 정권에 굴복했을 때 법을 사용해 사람을 다스리는 독재자가 등장했고, 독립된 사법이 통치에 대한 사법심사 범위를 확대하였을 때 통치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했다.

 

 

국민 다수가 선택한 위정자의 통치를 사법이 재판을 통해 무위로 돌리거나(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 및 행정소송 등) 법적 지위를 박탈할 때(탄핵, 당선무효 등)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출된 통치권력이 제멋대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국민의 뜻은 아닐 것이다.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뜻에 부합한다. 이럴 땐 법치주의가 통치권력의 국민에 대한 배신을 엄단하여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두 개념의 관계를 해석할 때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헌법이다. 국민이 제정한 헌법을 국민의 총의로 간주하고, 입법, 행정, 사법 모두 헌법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데 목표를 둔다고 해석한다면, 헌법에 위반한 통치권력을 사법이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총의에 부합하므로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가 아니다.

다수의 뜻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책이 같은 주권자인 소수자의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면 헌법에 위반되므로 사법이 무효화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소수자의 관점에서 ‘국민의 자기지배’가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게 된다.

다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길항 관계로 작용하려면, 사법이 헌법에 따라 자의적 통치를 제한하고 소수자 보호를 충실히 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법부 구성은 비민주적으로 이루어진다. 국민이 판사를 선출하지 않고, 대법원장 및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판사들의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편, 현대사회는 복잡해지고, 정치적 해결 능력은 떨어지면서 수많은 정치적 사안이 사법으로 몰려든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법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재판을 하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충돌하는 외관이 형성되면,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 또는 민주적 책임성을 강화하자는 흐름이 나타난다.

사법농단이나 5·1 전합재판처럼 사법통치나 정치개입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이를 넘어 사법부를 통제하자는 흐름이 형성된다.

 

그러나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판사를 선출하면 사법의 정치적 중립성은 흔들릴 것이고, 사법을 통제하기 위해 재판을 처벌 및 탄핵 사유로 삼으면 재판독립이 흔들릴 것이다.

사법이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사법통치권력으로 나서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이 이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과정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간 승부처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간 길항 관계를 강화시키는 방법을 찾는 길로 이어지길 바란다.

 

 

 

류영재 |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