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업무 정부부처 연합체’ 만들 때가 왔다
사람은 역사를 만들고, 제도는 그것을 지속시킨다. 인사만큼 조직이 중요하다. 새 정부가 정부조직 개편을 시작했다. 외교 안보 분야의 조직 혁신도 활발하게 토론해야 한다. 다양한 쟁점이 있지만, 그중에서 핵심은 정보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정보공동체’, 즉 ‘정보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 부처 연합체’를 만들 때가 왔다.
안타깝게도 현재 국가안보실의 조직도를 보면, 부처 간 정보 공유가 어려워 보인다. 국방, 외교, 통일과 같은 기능별 조직으로는 실무 수준의 부처 간 협력을 할 수 없다. 특히 정보 융합이 별도의 부서 없이 위기관리센터 안에 포함된 것도 아쉽다. 정보 융합은 수직적 차원의 정보 수집만이 아니라, 수평적 차원에서 부처가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정보관리실을 두고, 매주 각 부처가 참여하는 정보 평가 회의를 열었던 경험을 참고했으면 한다.
선진국의 정보공동체는 크게 두가지다. 새로운 정보 통합 부처를 만들거나 협의체를 운영하는 방안이다. 미국은 새로운 부서, 즉 국가정보국(DNI)을 만들었다. 9·11테러가 정보기관들이 협력하지 않은 결과라고 판단한 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정보 공유를 제도화하는 새로운 장관급 부서를 만든 것이다. 2005년에 만들어진 미 국가정보국은 국가 정보기관의 예산을 의회에 통합 제출하고 각 정보기관의 정보 자산을 이동 배치하는 권한을 가졌다.
지난 20년 동안 국가정보국과 중앙정보국(CIA)의 갈등이 적지 않았다. 정보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부서가 오히려 비효율적인 옥상옥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성과를 무시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정보공동체의 합동 근무 제도는 2008년 하버드대학이 선정한 ‘미국 정부부문 혁신상’을 받았다. 정보공동체에서 고위직으로 승진하려면 반드시 다른 정보기관에서 1년 이상의 파견근무를 해야 한다는 이 제도는 정보기관 사이의 소통을 촉진했다.
18개나 되는 방대한 정보기관을 조율하는 미국의 제도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우리 실정을 고려하면 영국의 ‘합동정보위원회’나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정보조정위원회’와 같은 협의체가 적합하다. 물론 미국도 국가정보국 중심으로 직급별로 다양한 협의체를 운영한다. 안보의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에, 전통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공급망을 포함하는 경제 정보와 환경과 안전 분야 정보까지 공유해야 한다. 지금 있는 유명무실한 정보 공유 제도가 아니라, 정보공동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상시적이고 권한도 있고 책임도 지는 협의체가 필요하다.
정보 공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정보 유출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미국에서도 정보 공유 확대 과정에서 치명적인 정보 유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러나 정보 공유를 멈추지 않았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비밀 유출을 방지하는 제도를 보완하면서, 정보 공유를 확대했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정부 부처 사이에, 혹은 정부와 국회 사이에 정보 공유를 확대하려면, 관련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 당정 협의를 하는 현장에서 엠바고를 건 정보가 실시간으로 언론에 보도되는 관행이 고쳐지지 않으면, 정부와 국회의 정보 공유는 어렵다.
정보기관의 혁신은 내부 구성원들이 주도해야 한다. 외부에서 국가 정보 업무의 복잡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정보기관들이 새로운 세대의 정보 공무원과 달라진 조직문화, 그리고 정보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반영해서 과거의 기능 중심에서 유연한 임무 중심으로 조직 혁신을 시도한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민간의 정보 공유도 중요하다. 외교문서는 30년의 비밀 해제 기간을 두고 공개한다. 30년이 지난 남북회담 사료를 공개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 나아가 막대한 국민 예산으로 운영하는 비군사 분야의 북한 위성정보는 민간 전문가들과 공유해야 한다. 정보 공유로 민간의 연구 역량이 올라갈수록 국가의 정보 역량도 올라간다.
정부의 조직 개편은 달라진 조직도로 끝나지 않는다. 제도만큼 운영이 중요하다. 새로운 제도가 자리를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동시에 부처에 정원 이내라면 변화하는 상황을 반영해서 유연하게 조직을 개편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 공무원 인사 제도도 바꿔야 한다.
사이버 보안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에 민간의 우수한 보안 전문가를 채용할 수 있도록, 공무원의 직급과 보수에서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정보가 국력인 시대다. 급변하는 정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한국형 정보공동체를 만들 때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피와 망치 (0) | 2025.06.25 |
---|---|
‘인사청문회’라는 늪 (0) | 2025.06.24 |
경부, 인터넷, 에너지 고속도로 (0) | 2025.06.23 |
박근혜 정부가 영구정지한 핵발전소 (0) | 2025.06.23 |
이재명과 룰라, 참 닮은 두 지도자의 삶과 투쟁 (0) | 2025.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