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
오 봉 렬
학교 교실이 보였다. 그리고는 곧 어둠이 닥쳐왔다. 어둠 속에서도 나는 주위 사물들을 잘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쫓기고 있었다.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도 몰랐다. 벌써 몇 번인가 탈주하다 붙잡히곤 했었다.
어느 건물의 옥상으로 도망쳤다. 그 곳은 성역이었다. 도망자들 만이 올라갈 수 있었고, 쫓는 자는 그 밑에서 도망자가 내려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도망자들이 운신을 못하도록 뾰족한 창이 밑에서 쑥쑥 올라오기도 했으나 곧 잠잠해졌다.
둘인가 먼저 올라온 탈주자가 있었다. 아니 탈주자인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하나는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어서 얼굴도 형체도 희미하니 잘 보이지 않았다. 옥상 위에서 꼼짝않고 숨어 있는 동안 다른 하나와는 친근하게 되었다. 半男半女라고나 할까? 분명 남자같기는한데 ··· . 우리는 서로 위안을 하고 끌어안기도 하면서 시간을 좀 보냈다.
한밤중의 인적도 없는 고요한 곳이었다. 옛날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초등학교)인 것 같았다. 밑을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살아있는 것을 알면 저놈들이 끝까지 지키고 있겠지’
먼저 번에도 어설피 내려갔다가 붙잡혔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이번에는 진짜 완전한 탈주가 되게끔 참고 견뎌보자.’
자정도 훨씬 넘었고, 또 꽤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너 밑에 한 번 봐라!”
내가 나지막히 말했다. 그(半男半女)가 가만히 밑을 내려다 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럼 내려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이 때까지도 아까 지붕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그놈은 기척도 하지 않는다.
‘자, 이제 진짜 이 곳에서 도망칠 때가 되었는가 보다.’
내심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 옆에 있던 그가 내려가려고 하던 차, 누군가 한 놈이 밑에서 나타났다.
“어, 위에 아직도 사람이 있다. 잠깐 기다려라!” 하면서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간다. 아마도 이놈은 감시역이고, 제 상급자나 동료를 부르러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였다. 내 옆에 있던 그 中性은 간 곳이 없어지고, 우리가 내려가려고 하던 곳에 전에 없던 사다리가 걸쳐져 있다.
‘옳다구나, 됐다!’ 하고는 잽싸게 내려가 밖으로 도망쳤다.
‘됐다, 이제 성공이다. 이제 집으로 가는거다. 도대체 몇 년 만이냐?’
집 쪽으로 향하였다. 집은 시흥역 쪽에 있었다. 가다보니 시장이었다. 돼지뼈를 삶는 듯 고깃물 냄새가 코에 스민다.
“개에게 개뼈다귀를 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라는 문제로 이상한 토론이 벌어졌다.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나는 우겼다.
뭘 좀 먹고 가라는 시장 안 어느 식당 아주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시장 밖으로 나왔다. 곧 큰 길이 앞에 나왔다. 아침 이른 시간이었는데 큰 길가의 언덕배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무슨 달리기 대회라도 구경하려는 듯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은 데는 피해야지’ 하며 약간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왁자지껄하니 일단의 무리들이 큰 길을 따라 뛰어갔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 나는 길을 가로질러 건너갔다. 그 때였다. 누군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더니 나한테 다가왔다.
범진이었다!
바로 직전의 나의 모습은 변장한 모습이었다. 코 밑에는 카이젤 수염이 있었고. 범진이는 친구인듯한 아이와 같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어느틈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빠다!”
“범진아!”
나지막히 내뱉었다. 범진이는 그전보다 약간 커 보였다.
“형은 어디 있니?”
“저기 사람들 달려가는데···”
“그래? 자, 집에 가자.”
몇 년 만에 보는 자식의 모습인가? 예전과는 좀 다른 데가 있어 보였다.
“범진아, 너 지금 몇 살이지?”
“여덟 살”
“그럼 학교 다니겠네?”
“올해 들어 갈거야. 아직 입학 안했어.”
그러고 보니 아직 3월이 안되었는가 보다. 범진이는 나를 만났다고 반가워했다. 그러나 여느 아이들처럼 팔딱팔딱 뛰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손을 잡고 걸었다. 한마디로 어른스럽게 여겨졌다. 집쪽으로 함께 걸었다. 벼르던 말이 내입에서 나왔다.
“엄마는? 엄마는 뭐하니?”
“······”
뭐라고 말한 듯 했는데 잘 못 알아들었다. 다시 물었다.
“엄마는 뭐해?”
“주 - 욱 었 어.”
다시 희미한, 그러나 약간 알아 들었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죽었어”
풀이 죽은, 힘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뭐라고! 죽어?’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숨이 탁 막힌다.
‘그랬던가? 그랬더란 말이지···.’
언제 어떻게 죽었느냔 물음도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눈에 눈물이 고여왔다.
‘그러면 어떻게 이 어린 것들이 먹고 살아왔단 말인가?’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래? 그럼 할머니는?”
“할머니는 계셔”
‘그랬었구나, 그랬었구나.’
할머니가 계시다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범진이에게는 할머니)께서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뜨거운 밥을 말아 주시던 것이 생각났다. 약간 시큼하면서도 따뜻하고, 그러면서 뭔가 입에 잘 맞는 맛 ···.
그렇게 할머니가 챙겨주신 밥을 먹는 범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랬었구나 ···. 그랬었구나. 아내가 ···’
차분해진 범진이를 안아 올리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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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떠졌다. 눈물이 가득 고여 흘러내린다. 고생만 하는 아내가 옆에 누워있고, 아이들도 그 너머에서 누워 자고 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눈물을 씻는 내 기척이 느껴진 듯이···
요즘들어 아내는 아프다고 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무척이나 건강했었는데 ···.
아이들 둘 낳고, 또 요즘 내가 늦게 다시 공부한다고 그 뒤치닥거리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제 저녁에는 공진이 종아리를 많이 때렸다. 사내답지 못함과 어른의 말에 대한 소홀함 등에 경종을 울리려는 뜻이었는데, 좀 심하게 했다. 아내가 “공진이 대신에 내 종아리를 때리시오” 하고 나설 정도였으니까.
꿈 속의 범진이의 말과, 범진이를 안으며 느꼈던 그 감정만큼 깊고 슬픔이 가득찬 적은 없었다. 차후에는 조금이라도 더 가족을 생각하고 아껴주는 마음과 행동이 있어야겠다고 다짐해보며, 1989년 10월 28일 새벽에 글로써 남겨 본다.
* 이 글은, 내가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예과 1학년 재학 중인 1989년에 썼는데, 1993년 초에 한의대에서 발간된 학술지 ‘의혼’(제3집) 문예부문(꽁트)에 기고하여 실렸던 글입니다. 실제로 매를 맞은 것은 공진이였는데 편집과정에서 바뀌었습니다.
** 뒷 부분의 누락된 글 내용
잠재의식의 흐름이란게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엇인가 내 마음 속에 맺혀 있던 것이 이렇게 생생한 꿈으로 나타나다니. 벌써 이와 유사한 -형태면에서- 꿈이 여러 번 나타나 기록해 두고 싶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유난히도 감정이 깊고 슬픔이 가득차고, 내 생활을 반성해보고 싶은 생각에 이렇게 글로써 남겨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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