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박물관 '함안 말이산 34호분 전' | ||||||||||||||||||||||||||||||||||||
1917년 아라가야 고스란히 재현 최고 지배자 묘역 가야 첫 발굴지…미공개 유물 공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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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말이산 34호분은 대형봉토분에 속한다. 이 고분군은 1917년 가야지역에선 처음으로 고고학적 조사가 이뤄진 곳이다. 그리고 90년 후, 말이산 34호분의 출토 유물 150여 점이 처음으로 일괄 공개됐다. 김해박물관 가야누리 특별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함안 말이산 34호분 기획특별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전시는 전시 이상의 가치를 안고 있다. 가야지역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뤄졌다는 의미도 있지만 논란을 안고 있는 고분군이기 때문이다. 미공개 유물 150여 점 중 금제는 단 1점뿐. 유물구성이 다른 고분출토 유물에 비해 열악하다. 녹각제 칼집끝장식은 금관가야, 대가야, 왜와의 교류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고 일부 유물은 아라가야의 높은 토기기술을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산 34호분의 규모나 형태에 견준다면 성에 차지 않는다. 아라가야의 최고 지배자 묘역이건만 왜 유물이 이뿐일까. 말이산 34호분은 발굴 주체를 볼 때 발굴이냐, 도굴이냐를 끝없이 의심케 하는 곳이다. 1917년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뤄진다. 그해 10월 14일 함안군수와 순사주재소장, 기타 발굴관계자, 일꾼 29명이 고분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발굴은 시작되고 12일만에 발굴은 종료됐다. 일부 사진기록이 남아 있지만 정확한 봉분 조성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작성하지 않았다. 고분군 사진은 있지만 실제 유물이 출토된 모습을 담은 사진은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특히 봉분의 축조상태, 석실의 구조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금도 이 묘의 묘제에 대한 논란이 학계에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획전을 준비하던 중 장용준 학예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간한 유리원판목록을 참조해 1914년도에 제 3회 사료조사가 이뤄졌다는 것을 밝혀냈다. 150여점 중 금제 1점뿐, 일제강점기 도굴 논란일 듯 |
출처 : 김짱! - 김정권과 짱짱한 사람들!
글쓴이 : 過猶不及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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