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재

[스크랩] 김해박물관 `함안 말이산 34호분 전`

道雨 2007. 8. 3. 09:24
김해박물관 '함안 말이산 34호분 전'
1917년 아라가야 고스란히 재현
최고 지배자 묘역 가야 첫 발굴지…미공개 유물 공개
2007년 07월 31일 (화) 박종순 기자 yard@idomin.com

   
 
  기획조사 준비과정에서 드러난 1914년 '도굴갱' 추정 사료.  
 
이른바 '말이산 고분군'이라고도 불리는 함안 도항리·말산리 고분군은 함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라가야 최고 지배자 집단의 묘역이다.

그 중 말이산 34호분은 대형봉토분에 속한다. 이 고분군은 1917년 가야지역에선 처음으로 고고학적 조사가 이뤄진 곳이다. 그리고 90년 후, 말이산 34호분의 출토 유물 150여 점이 처음으로 일괄 공개됐다. 김해박물관 가야누리 특별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함안 말이산 34호분 기획특별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 유물을 보면서 어렵게 석곽의 규모를 상상할 필요가 없다.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로 세로 높이 969×166×172㎝에 달하는 수혈식 석곽묘를 고스란히 재현했기 때문이다.

   
 
  김해박물관 전시 작품.  
   
 
  수레바퀴 모양 토기.  
 
당시 실제 유물들과 수장자 모형도 위치, 방향을 그대로 옮겨왔다. 아라가야 고분군의 특징이자 석관묘의 주춧돌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감실도 재현돼 있다. 상설전 만큼이나 심혈을 기울인 특별전이다.

이 전시는 전시 이상의 가치를 안고 있다. 가야지역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뤄졌다는 의미도 있지만 논란을 안고 있는 고분군이기 때문이다.

미공개 유물 150여 점 중 금제는 단 1점뿐. 유물구성이 다른 고분출토 유물에 비해 열악하다. 녹각제 칼집끝장식은 금관가야, 대가야, 왜와의 교류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고 일부 유물은 아라가야의 높은 토기기술을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산 34호분의 규모나 형태에 견준다면 성에 차지 않는다.

아라가야의 최고 지배자 묘역이건만 왜 유물이 이뿐일까.

말이산 34호분은 발굴 주체를 볼 때 발굴이냐, 도굴이냐를 끝없이 의심케 하는 곳이다. 1917년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뤄진다. 그해 10월 14일 함안군수와 순사주재소장, 기타 발굴관계자, 일꾼 29명이 고분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발굴은 시작되고 12일만에 발굴은 종료됐다.

일부 사진기록이 남아 있지만 정확한 봉분 조성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작성하지 않았다. 고분군 사진은 있지만 실제 유물이 출토된 모습을 담은 사진은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특히 봉분의 축조상태, 석실의 구조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금도 이 묘의 묘제에 대한 논란이 학계에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획전을 준비하던 중 장용준 학예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간한 유리원판목록을 참조해 1914년도에 제 3회 사료조사가 이뤄졌다는 것을 밝혀냈다.

150여점 중 금제 1점뿐,  일제강점기 도굴 논란일 듯

사료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사진 속에는 도굴갱으로 추정되는 형태가 드러났다. 이는 발굴조사가 1914년 이전일 수도 있다는 것, 그동안 유물이 빠져나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을 밝혀내는 실증 자료인 것이다.

박물관 특별전 입구에는 유물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뿌옇게 처리된 석관묘 내 사진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1917년 말이산 34호분과 2007년 같은 자리의 사진이 비교 전시돼 있다. 다른 듯 같은 모습이다. 사진 속 흔적이 읊조리는 듯 하다. 말이산 34호분은 우리가 밝혀내야 할 일제의 잔재라고. 전시는 25일 시작해 9월 말까지 열린다.

출처 : 김짱! - 김정권과 짱짱한 사람들!
글쓴이 : 過猶不及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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