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사진

단속사터 답사사진 (2007. 10. 7)

道雨 2007. 10. 10. 16:19

 

 

                                            단속사터

 

* 단속사(斷俗寺)는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뜻을 가졌지만, 이름과 달리 절터에 집들이 들어서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대나무 숲속의 낮잠, 그리고  뱀을 조심하라"는 말로 기억되기도 하는 곳이다.

 단속사는 통일신라 때의 어진 충신 신충이 경덕왕 22년(763)에 지리산에 들어와 지었다고 하며, 이 절에 경덕왕의 초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솔거가 그린 유마상(維摩像)도 있었다고하는데, 지금은 그 자취조차 알 수가없다.

  또한 우리나라 금석문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신행(信行, 704-779)의 부도비, 그리고 대감국사 탄연(坦然, 1070-1159)의 비 등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신행은 통일신라시대에 처음으로 북종선(北宗禪)을 전래한 인물이다. 당나라에 들어가 북종선의 태두가 된 신수(信秀)의 제자 지공(志空)으로부터 3년간 공부한 뒤 귀국하여 북종선의 전파에 힘썼다.

  신행이 입적한 지 35년 만인 헌덕왕 5년(813)에 그의 부도비가 세워졌으며, 조선 중기까지 전하였으나 분실되었고, 지금은 일부 비편만이 동국대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고, 다행히도 종 28행, 각행 63자씩이새겨진 옛 탁본첩이 전해오고 있다.

  탄연은 고려 최고의 명필로 통한다. 인종 24년(1146)에 단속사로 들어와 의종 13년(1159)에 입적하였으며, 그의 부도비는 명종 2년(1172)에 만들어졌다.   

  탄연의 비는 신행의 비보다 더 컸는데, 현재 비편의 일부가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고한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동네에 살고 계신 분이 이것저것 흥미롭게 설명을 잘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한국전쟁시 빨치산의 활동무대이기도 하였으며, 지금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인 권영길씨가 이곳 출신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런 분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는 할 수 없고...

  예전에 왔을 때 캠코더로 찍는 분을 만났었는데, 국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향가를 연구하는데, 이곳이 그와 관련되어 찾아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덕천서원과 산천재, 남명기념관에서 만난 답사객들을 이곳에서 또 만났다. 우리가 그들을 뒤쫓아가는 형국이 되었다.

  이곳 단속사터에는 지금 통일신라 때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삼층석탑 2기가 있고, 절의 강당터로 보이는 곳에 건물의 기단에 사용되었음직한 석재들이 일부 방치되어 있다. 그리고 약간 아래쪽으로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이번에 오니 삼층석탑은 수리중에 있었다.

 

* 수리 중인 단속사터 삼층석탑. 크기와 모양이 거의 같은 쌍탑으로 되어 있다.  

 

 

* 빗속에, 안개 속에 서있는 석탑 

 

 

* 왼쪽이 서탑, 오른쪽이 동탑이다. 이상하게도 단속사터의 석탑은 쌍탑임에도 불구하고 보물 지정이 각각 되어 있다(동탑 : 보물 제72호,  서탑 : 보물 제73호).

  예전에 내가 문화재청에 문의해보니, 규정상 한 절터에 두 개의 탑이 있는 경우, 그 모양이 같으면 동일한 번호로, 그 모양이 다르면 탑마다 각각 다른 번호로 부여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규정으로 볼 때 이곳 단속사터의 석탑은 하나의 번호로 지정되어야 하는데, 예전부터 달리 지정되어 왔기 때문에 아직 수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경주 남산동의 석탑은 각기 그 모양이 다른데도 하나의 번호(보물 제12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것도 수정되어야 할 사항이다.  

   

 

 

* 단속사터에 있는 오래된 매화나무(정당매)의 유래를 적어놓은 비.

 

 

* 고려말의 문신 강회백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오래된 매화나무. 강회백이 '정당문학'이라는 벼슬에 올랐기 때문에 '정당매'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정당문학이라는 직책은 고려의 중서문하성 예하의 한 직책으로 종2품에 해당된다고 하니, 오늘날로 치면 차관 쯤 된다고나 할 수 있을까?

  단속사의 중심 건물터였던 이 정당매의 옆에는 강회백의 후손이 살고 있다. 

 

 

 

* 정당매의 유래를 새겨놓은 옛 비석. 

 

 

 

* 정당매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예절의 강당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터가 있다. 여기저기 석재들이 보인다. 오른 쪽에 대나무숲이 보인다. 뱀 조심하시길...

  뱀은 담배 냄새를 싫어하므로 담배를 가루내어 주변에 뿌려두면 뱀이 접근하지 않는다고 한다.

 

  석탑으로 가기 직전 왼편 소나무숲 옆에 있는 넘어지고 부러진 당간지주는, 지금 모두 제 짝을 찾고 수리하여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사진을 찍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