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으로 달려가자!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의 당위성을 강조할 때마다 당혹스럽다. 진상을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다른 정치적 이해에 따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가장 난감한 게 4대강 사업이 생명을 살리고 생태계를 복원하는 사업이라고 주장할 때다.
천주교와 불교 등 종교계에서는 4대강 사업이 생명을 죽이는 짓이라며 강력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느 쪽이 생명을 살리고 어느 쪽이 죽이는가.
이 대통령은 지금의 4대강은 오염이 심해 새와 물고기가 죽어나간다고 한다. 가뭄 때나 오·폐수가 강에 흘러들 때 간혹 그런 일이 있지만 4대강이 새와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썩어 있다는 건 사실 왜곡이다. 그는 이런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이렇게 아깝게 죽어나가는 생명을 살리는 게 4대강 사업의 최대 목표라고 한다. 기막힌 논리의 비약이다.
지금 당장 4대강 사업 건설 현장으로 가보자.
갈대와 버드나무 등이 우거져 아름답던 강변과 하얀 백사장 곳곳이 굴착기와 공사 차량에 짓뭉개지고 있다. 공사 현장에는 오염된 시커먼 진흙층이 드러나고, 푸르던 강물은 흙탕물로 누렇게 변해간다. 생명을 살리기는커녕 물고기와 새들의 서식처마저 망가뜨리고 있다.
공사판이란 게 처음에는 원래 그렇다 치자. 계획대로 공사가 다 끝나면 뭇 생명이 다시 돌아올까. 곳곳이 댐으로 막히고 강변은 콘크리트로 치장될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 아니라 생명을 내쫓는 인공하천이다.
독일이나 미국 등은 그동안 강에 건설했던 댐을 철거하고 자연하천으로 되돌리고 있다. 그 이유를 모른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면서도 첨단 기술로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자연의 질서를 무시하는 오만이다.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이 자기의 소신이니 반대하는 사람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주 사례로 드는 게 청계천과 경부고속도로 등이다. 당시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소신껏 밀어붙여 놓고 보니 다들 좋아한다는 것일 게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 대통령이 국민의 지적 수준을 유치원생 정도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청계천과 경부고속도로는 사업 성격상 4대강과 전혀 다르다. 청계천 사업은 복개돼 썩어 있는 개울을 5.8㎞짜리 콘크리트 인공하천으로 바꾼 것이다. 4대강은 무려 1300여㎞나 되는 살아 흐르는 자연하천이다. 4대강을 청계천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명백한 비교 대상 오류다.
자신이 4대강 사업을 완수하지 않으면 마치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국가에 죄를 짓는 것처럼 말하는 건 더 큰 착각이다. 국민은 한반도의 젖줄인 4대강을 마음대로 절단하고 파헤칠 수 있는 권한을 그에게 준 적이 없다.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이 정쟁의 도구가 되면 희생되는 건 국가의 미래라고 했는데, 4대강 사업 자체가 오히려 나라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후손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만행이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임기 안에 마무리하겠다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4대강 중 우선 하나만 시범적으로 해보자는 권고도,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한 뒤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제안도 철저히 묵살한다. 온갖 문제점과 후유증을 지적해도 쇠귀에 경 읽기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
뭔가를 하기 전에 먼저 4대강으로 달려가 공사 현장부터 직접 살펴보자. 봄나들이 삼아 아이들 손이라도 잡고 함께 가면 더 좋겠다. 아니면 지율 스님이 서울·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열고 있는 ‘낙동강 사진전’에라도 들러보자. 4대강 사업의 실상이 무엇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거기에 답이 있다.
[정석구 한겨레신문 선임논설위원]
신부님! 제발 가만히 좀 계세요?
- 하느님의 창조질서도 외면한 채 막무가내로 4대강 줄기를 막는 바벨탑의 교만을 닮은 대통령에게
“그만”이라 외쳐야 할 사람은 사제
얼마 전 신문 하단 광고에 ‘뜻있는 천주교 평신도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성당에 가서 미사 드리기가 무섭습니다’라는 글이 실리면서 여러 가지 의혹이 키워지고 있다.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두고 비싼 광고비를 출연하며 가톨릭 주교단의 공식 입장을 비판하고 있는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짓을 한 사람들은 진정 누구인지, 누구의 사주로 가톨릭교회를 흔들려고 하는지, 그 의도가 자못 궁금하다. 그러한 교란이 가톨릭교회의 더욱 강한 결속을 초래할 것임을 모르는 그들에게 그저 코웃음이 나올 뿐이다.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정권창출에만 눈이 먼 정권은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법 절차를 무시하고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수년 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4대강을 정비한다는 국책사업조차도 지방하천법 조례를 무시하고 홍수 조절이라는 비상 국면으로 몰아 이 나라를 온통 들쑤셔 놓고 있다.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소망교회의 장로이신 대통령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무시한 채, 하느님의 창조질서도 외면한 채 막무가내로 4대강의 젖줄기를 막고 있다. 급기야 가톨릭 주교단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각 교구의 의식 있는 젊은 사제들이 시대적 소명 앞에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지몽매한 이 정권의 교만함을 일깨우기 위해 예언자적 소명을 수행하고 창조질서를 회복해야 하는데 사제인 나보고 미사나 드리고 성당에서 기도나 하고 있으란다. 제2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가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촉구하고, 쇠고기 파동에 촛불을 들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인권을 위해 그들의 손수건이 되어 주고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지키려는 사제들을 보고 도대체 왜 그러시느냐고 묻는다면, 예수께서 유다와 빌라도에게 “그건 네 말이다”(마태26, 25/27, 11)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싶다.
80년대부터 우리 민족에게 부활은 희망이었다. 4월의 봄기운과 함께하는 부활의 여명은 오랜 군부독재의 억압 속에 잠들어 있는 이 민족에게 자유와 민주를 흔들어 깨웠다. 인동초의 대통령과 권력을 버린 바보 대통령이 나올 수 있도록 살아 있는 의식을 심어준 것도 바로 부활이다. 국민들에게 깨어 있는 의식을 심어주고 주인의식을 갖게 만들어 시대를 역행하는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도 바로 부활이다.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창세11, 4)고 외치던 바벨탑의 교만처럼 시대를 역행하고 하늘을 찌르는 대통령의 공명심이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세계가 우려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인 4대강 사업 추진을 밀어붙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우리는 당당하게 깨어 있는 부활의 삶을 노래해야 한다.
엘살바도르의 대주교였던 오스카르 로메로처럼 우리도 이 시대에 누군가 “그만”이라고 외쳐야 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들 사제이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부활의 삶이요, 시대적 소명인 것이다.
<송영오 천주교 수원교구 봉담성당 본당신부 >
4대강 사업이 강을 살릴 수 없는 이유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넌다.
4대강 사업이 한창인 여주 남한강으로 가기 위해서다. 같은 한강이지만 여주와 이곳 동서울을 지나는 물길은 모양도, 생명력도, 경관도 천양지차다.
80년대 한강치수사업을 건설사 사장으로서 총지휘했다는 대통령과 그의 동지들이 이야기하는 4대강 사업의 모델 한강 서울구간의 모습이 물 많은 것을 제외하고 어떤 점에서 모범이라는 것인지 4대강을 속속들이 다녀본 나로서는 정말 모르겠다.
치수와 이수를 중심으로 강을 보고 통치하던 시대가 있었다. 한국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개발국가가 그랬다.
강 주변에 농지가 있고 너른 벌판에 도시를 만들어 살았기에 50년,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큰비 한 번에 집과 마을이 잠기고, 하수 처리에 돈 들일 여건이 안 돼 똥오줌이 떠다니던 그런 시대, 강은 더럽고 위험했다. 그래서 너도나도 물이 공격할 수 없도록 높은 둑을 쌓았고, 아래로 빨리 내려가라고 물길을 반듯하게 만들었다. 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사람을 위한 다리나 댐은 수백개 만들었을지언정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사람의 손으로 심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강은 삭막한 공간으로 변했다. 콘크리트 둑과 호안에 갇힌 물은 다양한 생명을 잉태하지도, 키우지도 못하는 크고 빈약한 물그릇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무서워서 물을 가뒀지만 그로 인해 마땅히 강에 있어야 할 습지와 새들과 물고기와 조개들이 사라지면서 강이 생태적으로 사막화됐다.
콘크리트에 갇혀, 콘크리트를 바라보며 사는 현대인들의 메마른 심성을 어루만질 도시공간이 절박해지자 강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강을 되살려 도시에 자연을,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대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선진국들이 개발시대 마구 지었던 둑과 댐과 운하를 철거하고, 강에 자연을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이다.
그런데 2010년 한국의 강은 상처투성이다. 16개나 되는 보 건설로 강의 속살이 처참하게 드러나고, 모래와 자갈을 파내 100곳에 이르는 하천습지가 파괴되고 있다. 10여종의 귀한 생물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남한강 여주에선 멸종위기 2급인 단양쑥부쟁이 군락지가 파괴됐고, 금강 금남보 공사구간에선 멸종위기 1, 2급인 흰꼬리수리와 참수리의 휴식처가 모두 사라졌다.
생태계 파괴뿐인가?
강 하구를 제외하고는 평균적으로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 기준 2급수를 유지하던 강물이 공사로 인한 오·탁수와 퇴적층의 중금속 오염원에 노출돼 빠르게 오염되고 있다. 강의 생태계 복원과 수질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는 4대강 사업이 반대로 4대강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4대강 공사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파괴적인지는 공사현장에 가보면 잘 알 수 있다. 거창한 논리나 구체적 수치가 필요치 않다.
‘아! 이것이었구나. 대통령과 그의 동지들이 살리려 한 것은 4대강의 생명도, 수질도 아니고 행렬을 지어 쉴새없이 움직이는 중장비들이었구나. 중장비들의 사슬인 토건동맹이었구나’ 하는 것을 그냥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4대강 추진세력은 국민을 상대로 80년대 타령을 늘어놓고 있다. 4대강 강물이 똥물이고 생태계는 다 죽어서 황량한 곳이니 한강처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강 서울도심구간과 여주 남한강을 직접 비교해보라. 복원해야 할 강의 생태계, 살려야 할 수질이 과연 어느 곳인지를. 어디에 홍수대책이 필요한지를.
낙동강과 금강, 영산강도 결코 다르지 않다.
국민을 둘로 가르고 4대강 유역을 총체적으로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은 이쯤에서 중단하는 것이 대통령과 강과 국민 모두를 살리는 길이 아닐까?
<김종남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4대강 사업은 무엇을 죽이는가
강은 언제든 달려가면 아름다움과 생명의 경이로움으로 우리의 심성을 늘 곱고 맑게 치유하는, 어머니의 마당이다. 그 강은 흐르면서 쌓고 나누면서 아우르며 죽이면서 살리는 세 가지 역설을 지녔다.
강은 흐르면서 퇴적물을 쌓고 그 퇴적물에 생명이 깃들고 마을이 조성되고 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를 형성한다. 강은 나뉘어 흐르면서 온갖 생명의 종과 사람들의 말씨와 문화를 다르게 하고 서로 물길을 따라 오고 가며 하나로 어우러지게 한다.
미생물을 물고기가 삼키고 이를 물새가 먹고 그 주검을 다시 미생물이 처리하기에, 강이 흐르는 한 죽음이 삶이 되는 순환은 영원하다. 하지만 보로 막는 순간 이 모든 것은 끝장이 난다.
물은 흐르면서 이온작용과 미생물의 활동, 식물들의 흡수에 의해 자연정화를 하고, 막히면 그것이 불가능하여 빠른 속도로 썩는다.
이 상식을 어기고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 정권은 4대강 사업으로 홍수를 예방하고 물을 확보하며, 34만명의 취업효과를 유발하며, 물을 맑게 한다고 주장하는데, 모두가 거짓이다.
홍수는 지류에서 90% 이상이 발생하므로 홍수를 막으려면 본류보다 지류 살리기로 전환하여야 한다. 콘크리트 호안을 두를 경우 유속이 빨라지고 완충지대가 없어져 외려 홍수가 더 크게 일어난다.
선진국은 강의 유역을 넓히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물은 지금만으로도 4대강 모두에서 남는다. 낙동강의 경우 1100만t이 남으며, 정부는 1인당 1일 생활용수 수요량을 일본인 평균보다 100ℓ나 많은 453ℓ로 계상하여 국민을 속였다.
모든 것을 중장비에 의존하기에 취업 증대 효과는 2만명 남짓이며, 오히려 현재 2만2000명의 농부가 삶의 터전을 잃고 실업자로 전락하였다.
엠비 정권은 첨단 기기와 기폭시설로 물을 정화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들 스스로 강물이 오염될 것을 전제한 것이며, 저절로 맑게 흐르는 물을 오염시켜 놓고서 이를 기기로 정화하여 해마다 수백, 수천억원의 혈세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울산 태화강도 보를 허물자 맑아져 새와 물고기가 돌아왔으며, 선진국은 댐을 해체하고 ‘생명의 강’으로 복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엠비 정권은 국가재정법, 하천법, 환경영향평가법, 문화재보호법 등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24시간 조명등을 켜놓고 속도전을 강행하고 있는 것일까.
토목공학자들의 주장대로, 4대강 사업은 운하가 아니라면 목적이 없는 사업이다. 16개의 보를 쌓고 모든 강바닥을 5m 깊이로 준설하고 있는 공사는 실제 대운하 사업이다.
정부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면, 국토가 철저히 파괴되고 이 땅과 강과 바다가 오염되어 수많은 생명이 죽고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홍수나 침수 등 재앙이 곳곳에서 발생할 것이며, 243점의 귀중한 문화재와 1400곳의 문화재 분포지역이 침수되거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 사업에서 토건카르텔은 수조원을 챙겨, 일본의 자민당 체제가 그랬던 것처럼 장기 집권할 수 있는 토대를 조성할 것이다. 이 경우 이 땅의 민주주의 또한 사망하고 부패는 구조화한다.
현 정권이 진정으로 강과 나라를 살리려 한다면 이를 당장 중지하라. 나중에 복원하려면 수백조원의 예산과 수십년의 시간이 든다.
독일 이자르강의 경우 8㎞를 복원하는 데 21년 동안 458억원이 소요되었다.
최소한 조사와 합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시범적으로 한 곳을 실시하고 이를 분석하고 검토한 뒤에 국민의 동의를 얻어 전국적으로 시행하자.
후자마저 거부한다면, 재앙과 저항은 필연이다.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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