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에 실린 '동서의 시력'이라는 글이다.
사람(환자)과 질병을 대하는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관점의 차이에 대하여, 환자의 입장에서 경험한 사항을 말하고 있기에 옮겨보았다.
동서(東西)의 시력
내 몸이 성할 때는 조금도 그런 생각이 없는데, 어쩌다 앓게 되면 육신에 대한 비애를 느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모른 체했다가, 조금 지나서는 큰 마음 먹고 약국에 들른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토록 머리 무거운 병원 문턱을 들어설 때 그 비애를 느끼는 것이다.
진찰권을 끊고 차례를 기다리며 복도에 앉아 있는 그 후줄근한 시간에는 육신이 사뭇 주체스러워진다.
의사를 대했을 때 우리는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된다.
재작년 겨울이던가, 눈이 아파 한동안 병원엘 드나든 적이 있었다.
그 무렵 성전 간행 일로 줄곧 골몰했더니 바른쪽 눈이 충혈되고 찌뿌드드해 무척 거북스러웠다.
안약을 넣어도 듣지 않았다.
미적미적 미루다가 하루는 마음을 크게 먹고 신문에 자주 나오는 안과를 찾아갔다. 나처럼 서투르고 어설픈 사람이면 대개가 그렇듯이 광고의 유도를 받은 것이다.
그 안과는 어찌나 환자들로 붐비던지 진찰받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몇 곱절 더 길었다.
의사는 밀린 환자 때문에 그럼인지 경기장에서 갓 나온 운동선수처럼 씩씩거리면서 내 눈을 살폈다.
시력에는 이상이 없었다. 기표소처럼 휘장이 쳐진 구석을 가리켰다. 대기하고 있던 간호원이 철썩 엉덩이에 주사침을 꽂았다. 그리고 안약 한 병, 지극히 단순하고 신속한 진료였다.
날마다 오라고 했지만 나는 그 의사의 초대를 사양했다. 날마다 찾아갈 성의도 여가도 함께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 의사에게 신뢰가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내친 걸음에 다음날은 그 길 건너에 있는 안과를 찾아갔다. 분위기가 차분했다. 물론 씩씩거리지도 않았다.
병명은 구결막 부종. 우리 시민 사회의 말로 하자면 눈의 흰자가 좀 부었다는 것이다.
시력에는 영향이 없으니 걱정말고 눈을 푹 쉬라고 했다. 그런데 출간 예정일 때문에 눈을 쉬게 할 수가 없었다. 할 일은 태산 같은데 몸이 따르지 못하는 그런 안타까움이었다.
그렁저렁 두어 주일이 지났다. 의사는 걱정마라 했지만 당사자인 나는 차도가 없으니 속으로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번듯한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그곳은 진찰권을 끊는 창구부터가 큰 혼잡이었다. 복도마다 환자들로 장을 이루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앓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갈데없이 나도 환자로구나 싶었다.
한 시간 가까이 안과 앞에서 기다리다 못해 그만 일어서려는데, 그때 유감스럽게도 내 이름을 불렀다.
진료에 참고가 될까 해서 그간의 경과를 이실직고했더니 담당 의사는 갸웃거리면서 내가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내리갈겼다.
간호원은 나를 혈액 검사실로 보냈다. 그러고 나서는 변을 받아 오라고 했다. 이거 왜 이럴까 싶었지만 착한 어린이가 된 환자라 시키는 대로 순종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하, 종합병원이란 곳은 참으로 종합적으로 진찰을 하는 데로구나. 주머니 실력도 종합적으로 공평하게 분산시키는 데로구나.
혈액이고 변이고 검사 결과는 물론 정상이었다. 그토록 정상인 내 몸을 이번에는 또 수술실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조직검사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 방면에 문외한인 나는 조직검사가 어떤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었다. 만약 사전에 알았더라면 그것만은 단연 불응했을 텐데.
수술대에 누이더니 눈 언저리에 마취주사를 놓았다. 구결막을 두어 군데 오려내고 꿰매는 것이었다. 내 눈은 납치범이 아닌 의사의 손에 의해 철저히 봉해졌다. 이것도 뒤늦게야 안 일이지만, 혹시 암이 아닌가 싶을 때 조직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한주일 후에야 그 결과가 판명된다는 말을 듣고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나는 몹시 답답하고 막막한 심경이었다.
귀로에 나는 문득 내 육신에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평소 잘 먹이지도, 쉬게 하지도 못하고 너무 혹사만 했구나 생각하니 새삼스레 연민의 정이 솟았다. 그리고 업보로 된 이 몸뚱이가 바로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거듭거듭 절감하게 되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그 한 주일 동안은 불안한 나날이었다. 불필요한 상상력이 제멋대로 날개를 쳤다. 젠장 살다가 병신이 될 모양인가.........
이때 나는 베토벤이 아니었더라면 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했을 것이다. 어떠한 병고라 할지라도 그가 겪은 것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았다. 그의 가혹한 운명적인 생애가 병고에 위축된 그 겨울의 나를 따뜻하게 그리고 밝게 조명해주었던 것이다.
검사 결과는 혈관이 좀 수축되었다는 것, 그뿐이었다. 다행이라 싶었지만 한편 생각하니 괘씸했다. 돈 들이고 병을 산 셈이 아닌가. 그 동안에 입은 정신적인 피해는 놔 두고라도 조직검사로 인해 눈을 더 망쳐놓은 것이다. 의사 자신이나 그 가족의 경우였다면 그같이 했을까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 마음먹기로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왜 하필이면 내가 그날 그 병원에 가서 그 의사한테 진료를 받게 됐을까. 그것은 모두가 인연의 줄에 얽힌 까닭일 것이다.
설사 그 의사의 신중하지 못한 임상실험으로 내 육신이 피해를 입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지어서 받은 과보이다. 내가 아쉬워서 내 발로 찾아갔으니까. 그리고 유기체인 이 육신을 가지고 항상 온전하기를 바란다는 것부터가 과분한 일 아닌가.
눈은 그 뒤 한의사의 가루약 다섯 봉지를 먹고 나았다. 조직검사의 자국만은 남긴 채.
그 한의사의 말인즉, 너무 과로했기 때문에 간장에 열이 생겨 상기됐다는 것. 상기가 되면 구결막이 붓는 수가 있다고 했다. 간장의 열만 다스리면 저절로 나을 거라고 지어준 약을 먹었더니 이내 나았다.
그런데 모두가 의학박사이기만 한 그 의사들은 병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겉에 나타난 증상만을 치료하려 했다.
그때 나는 안질을 통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사회현상을 비롯한 사물의 실상을 측면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시야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시력(관점) 같은 걸 내 나름으로 잴 수 있었다. 막막한 그 육신의 비애를 치러 가면서.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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