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관련

한미FTA 불평등 협정은 ‘경제적 을사늑약’

道雨 2011. 11. 7. 18:14

 

 

 

 


  한미FTA 불평등 협정은 ‘경제적 을사늑약’

                                           (블로그 ‘사람과 세상 사이’ / 오주르디 / 2011-11-04)


더 잘 사는 나라, 경제 강국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한미 FTA라는 게 이명박 정권의 주장이다. 통상확대를 위한 최선의 방책이니 다소 불평등한 요소가 있더라고 눈 감고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게 한미 FTA 찬성론자의 입장이다.


불공정한 게임이 ‘살 길’이라니

한미 FTA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측의 견해는 정반대다. 대한민국의 주권까지 위협하는 수준의 불평등조약을 맺는다면 큰 화근이 될 것이며 장차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 초래돼 국가 경제가 도탄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청와대는 ‘불평등을 감수하는 대신 경제적 실익을 추구하자’는 식이다. 정말 ‘실익’이 있을지 제대로 따져나 본 것일까. 한미 FTA를 체결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후유증이 확인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면 한국경제는 이미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을 게 뻔하다.

한미 FTA는 다른 나라와의 통상협상과 완연히 다르다. 경제 최강국인 미국과 경제선진국 문턱이 아직도 높게 느껴지는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체중 50kg의 초경량급이 100kg의 중량급과 한판 벌인다면 승패를 논하기도 전에 이미 ‘불공정 게임’이 된다.


불공평 조약의 상징 ‘을사늑약’이 떠오르는 이유

한미 FTA 강행을 고집하는 현 정권을 바라보며 ‘을사늑약’을 떠올려야 한다는 현실이 괴롭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불평등한 조약을 꼽으라면 단연 ‘을사늑약’이다. ‘한일 외국인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제1차 한일협약)’을 맺은 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기선을 잡은 일본은 아예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할 목적으로 ‘제2차 한일협약’을 강요한다. 일본으로부터 증원군을 파송 받은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 공사 곤스케는 궁궐을 포위하고 고종을 압박했지만 고종은 조약 승인을 거부했다.

 

 

일본은 전략을 바꿔 조정 대신들을 겁박하고 매수에 나선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의 강압에 의해 열린 경운궁 어전회의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황당한 짓을 한다. 직접 종이와 펜을 들고 대신들에 다가가서 조약의 가부(可否)를 물었다.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 등 세 명의 대신들은 울면서 불가(不可)라고 썼다.

 

을사5적 -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그러나 일본에 의해 회유 된 학부대신 이완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은 찬성을 표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웃었다. 그러고 선언했다. 대신 8명 중 5명이 찬성했으니 조약은 사실상 체결된 것이라고. 그러니 고종이 칙재를 내려야 한다고 우겼다.

고종의 칙재를 받는 게 쉽지 않자 일본은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를 불러 조약에 서명하도록 하고 이로써 ‘제2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었음을 선포한다. ‘을사늑약’은 이렇게 체결됐고 조선은 망했다.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 핵심내용

1. 일본국 정부가 재동경 외무성을 통해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하고 지휘한다.

2. 한국정부는 일본국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조약을 절대로 맺을 수 없다.

3. 일본국정부는 한국 황제의 궁궐에 1명의 통감을 두며 항구와 필요한 지역에 이사관을 둔다.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하며 협약 실행에 대한 일체의 사무를 맡는다.

4. 일본국과 한국 사이의 조약 및 약속은 본 협약에 저촉되지 않는 한 그 효력이 계속된다.

 

고종은 수차례에 걸쳐 국제사회에 ‘을사늑약 무효’를 알렸지만 이미 칼자루를 쥔 일본을 막을 수 없었다. 고종이 그렇게 바라던 ‘을사늑약’의 공식적인 무효선언은 60년 뒤에 이루어진다. 박정희 정권이 일본과 맺은 한일기본조약에서 한일 양국은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이 무효임을 확인했다.

 


한미 FTA를 ‘을사늑약’에 비유해야 하는 현실

한미 FTA 협정문을 ‘을사늑약’에 비유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임을 인정한다. 다소 비약이 있더라도 두 조약 간의 ‘유사성’에 의존해 ‘을사늑약’을 거론하는 것이다. ‘한미 FTA만이 살 길’이라고 우기는 정부의 기만적 태도가 논리적 비약을 허용하게 만들었다.

한미 FTA 협정문에 독소조항이 많다는 건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래칫조항, 네거티브식 개방, 최혜국대우 조항, ISD 문제, 비위반 제소, 책임입증 조항, 서비스 비설립권 인정, 공기업 민영화와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 철폐, 금융자본시장 완전 개방, 스냅백 조항 등 한국경제의 미국 예속화를 급진전시킬 수 있는 조항들이 즐비하다.

 

 

한국경제가 이미 미국에 예속된 상태라고 진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불평등한 통상조약도 무방하지 않겠느냐는 투의 망발을 내뱉는 이도 있다. 여태껏 그럭저럭 살아왔으니 FTA에 독소조항이 있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지 않겠느냐며 ‘자포자기 모드’에 돌입한 사람도 적지 않다. 정부의 집요한 FTA 강요 때문이다.


한국 ‘법 정비 후’ 발효, 미국 ‘법 없이’ 발효

한미 FTA는 ‘발효’ 개념부터 극심한 불평등을 보인다. 한국의 ‘발효’와 미국의 ‘발효’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경우 비준안이 통과된다 해도 한미 FTA가 발효되려면 관련 부수법안이 모두 정비돼야 한다. 한미 FTA 관련 부수법안은 25개와 이에 따른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FTA 협정문에 맞게 모두 고쳐야 한다. 국내 법령이 FTA 협정문과 배치되거나 이로 인한 피해가 생기면 한국정부가 모든 손실을 배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지난 10월 미 의회가 의결한 것은 한미 FTA 협정문 1500쪽이 아니라 80쪽에 불과한 ‘이행법안(Implementation Act)’이다. 미국정부는 이것으로 이행준비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국회 비준을 통해 1500쪽 협정문 원문 모두를 ‘법령화’해야 이행준비가 끝난다.

 

 

한국정부는 모든 법령을 FTA에 맞게 정비를 해야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연방법과 주 차원의 법률이 서로 다른 미국이 한미 FTA를 위해 연방과 주가 법 제도를 정비할 리 없다. 미국의 법체제 복잡성은 미국 정부가 법령정비를 기피하는 데 훌륭한 변명거리가 된다.

미국은 국내법 그대로 두고 FTA를 하게 되지만 한국은 국내법을 FTA 협정문에 양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심각한 불평등이다.


“분쟁 시 미 연방법이 우선”이 대전제, 지독한 불평등

분쟁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미국 정부의 ‘이행법안’에는 이렇게 명시돼 있다. “분쟁 시 미국연방법이 우선한다(United States law to prevail in conflict)” 이것을 대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게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안’이다. 더 구체적으로 못 박아 놓은 조항도 있다. “한미 FTA 협정문의 조항과 특정인이나 상황에 대한 그 조항의 적용이 미 연방법률과 일치되지 않는다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에는 FTA 협정문에 대해 ‘법’ 이상의 효력을 명문화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협정문의 효력을 미 국내법의 하위 개념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한국에서 미국의 입장은 법으로 보장받지만, 미국에서 한국의 입장은 법으로 보장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한국에는 ‘법대로’를 주장하면서 자신들에게는 ‘우리 맘대로’ 하겠다는 얘기다. 지독한 불평등이다.

미국기업이나 상품이 한국에 ‘행차’할 때를 위해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완벽하게 ‘신작로’를 만들어 놓으라고 하면서도, 한국기업이나 상품이 미국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경우 법적 대응이 애매하도록 설정돼 있다. 주(州) 법률과 한미 FTA 협정문의 충돌에 대해 이렇게 명시해 놓았다. “주(州) 법률 또한 한미 FTA에 의해 무효화되지 않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주체는 미 연방정부다.”


제소권은 오직 미 연방정부에게 있다니

한국기업이나 정부가 미국의 주(州)정부와 법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미 연방정부가 나서 주정부와 협의해 처결하겠다는 뜻이다. 또 주정부가 FTA 협정에 반하는 행위를 할 때도 이에 대한 제소권은 오직 미 연방정부에 있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불평등이 도를 넘었다.

양국 간 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옳고 그른가에 대한 판단을 미국이 하겠다는 얘기다. 한미 FTA 협정문의 효력이 미국의 주(州) 법률보다 하위이기 때문에 미 연방정부가 거들어 주지 않을 경우 해결이 불가능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가재는 게 편이다. 분쟁이 생길 경우 미 연방정부가 어느 편에 서겠는가. 공정한 처결을 위해 자국의 경제적 이득을 포기하고 한국기업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그럴 리 없다. 한국기업의 억울한 입장을 이해하는 편에 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정도라면 한미 FTA 협정문의 주인은 미국이고 한국정부는 단지 머슴일 뿐이다.


한미 FTA 불평등 조항과 ‘을사늑약’의 유사성

‘을사늑약’과 한미 FTA의 불평등 조항에 유사성이 있다고 앞서 밝힌 바 있다.

▲ 일본 정부를 통해서만 대외관계가 가능하도록 규정한 ‘을사늑약’과 분쟁으로 인해 제소가 필요한 경우에도 미 연방정부와 미 연방법에 따라야 한다는 독소조항과는 서로 별반 다를 게 없다.

▲ ‘일본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조약을 맺을 수 없다’고 한 ‘을사늑약’이나 타국과의 통상 협정을 맺을 때 한미 FTA 보다 조건이 나을 경우 미국은 자동적으로 나은 조건에 적용된다는 한미 FTA의 ‘최혜국 조항’은 국가 주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서로 크게 다를 게 없다.

▲ 통감과 이사관을 두어 협약 실행에 대한 사무를 맡긴 ‘을사늑약’의 조항도 한미 FTA 독소조항과 닮아있다. 한국에게는 FTA를 위한 철저한 사전 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FTA를 주 법률보다 하위에 두겠다는 미국의 태도다. FTA에 맞춰 개정되고 정비되는 한국의 법령이 사실상 ‘통감과 이사관’의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불평등’ 지적은 ‘오해의 소치’?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경제 을사5적’

한미 FTA에 대해 불평등조항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정부는 이런 식으로 답을 한다. “한미 양국 간 법체계 차이에서 생기는 오해이며 미국이 일방적으로 FTA 협정을 위반할 리 없다.” 아니다. 미국이 NAFTA협정을 이용해 수백 건의 제소와 이의제기를 해 자국 기업의 이득을 챙겨준 사례가 적지 않다.

‘불평등’을 ‘불평등’이라고 지적하는 것을 ‘오해의 소치’라고 말하는 이들, 이들이 바로 ‘경제 을사5적’이다.

굴욕적이며 불평등한 한미 FTA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불평등을 감수하는 대신 주어지는 약간의 관세 혜택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다는 게 국민의 공분(公憤)이다.

국민의 속앓이가 ‘촛불’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오주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