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FTA와는 무관하다"는 괴담이 떠돌고 있다. 또한 이 괴담은 들쥐들이 쥐구멍에 어린 낟알 숨겨 두듯 <조선일보>에 의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FTA와 무관할까?
김황식 총리는 11월 11일 "한미 FTA 괴담은 우리 사회의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을 촉발하고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유언비어나 괴담은 우리 사회의 건강과 발전을 해치는 폐단이므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건강과 발전을 위해 필자가 국격을 한 번 높여보기로 결심했다.
괴담의 진실이 궁금한가? 위키리크스를 보라.
먼저 위키리크스 문서를 한번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께서 2008년 1월 16일 이노우에 및 테드 스티븐스 상원의원, 버시바우 대사를 만난다. 기자들이 없으니 자유롭게 말씀하신단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을 잠깐 들어보자. "쇠고기 문제가 FTA 비준 등 한미 간 제반 현안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쇠고기 시장 개방이 조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번에는 버시바우 미 대사가 2008년 3월 25일자로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2급 비밀보고 해주셨다. 버시바우는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의 대다수가 현재 미국의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한국 국민의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자유무역협상의 비준을 위해서 필요한 대가로 쇠고기 시장 재개방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는 지금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지도 않지만,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위험과 같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하는 정부는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이후 미 대사는 "한국의 무역팀은 이대통령 방미까지 미국측 요구에 맞춰 결과를 발표할 수 있도록 협상을 물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쇠고기 협상은 캠프 데이비드 한미정상회담 직전인 4월 18일에 타결되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여태껏 총선 전까지 쇠고기와 관련한 어떠한 '사전협상'도 없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 광우병 발생으로 수입이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는 한미 FTA 협상개시의 4대 선결조건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대국민담화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거부하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인 한미 FTA가 연내에 처리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
각하께서 깔끔하게 인증샷 날려주셨다
이 정도로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FTA와는 무관하다"는 말이 괴담인지 아닌지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애매한 상황을 '가카'께서 직접 정리해주셨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6월 19일 발표한 대국민담화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거부하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인 한미 FTA가 연내에 처리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봤습니다"라며 한미FTA와 쇠고기의 관계를 스스로 인정했다. 가카의 깔끔한 인증샷인 셈이다.
광우병 발생으로 수입이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는 한미 FTA 협상개시의 4대 선결조건이었다. 2006년 당시에는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선불로 쇠고기를 내줬던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를 불러온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조치도 한미 FTA 미국 의회 비준의 전제조건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광우병에 따른 30개월 이상 연령 쇠고기 수입 중단은 검역에 대한 조치이지 한미 FTA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어이상실, 개념상실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이 촛불시위로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막아낸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니.
선불제에서 후불제로 바뀐 쇠고기 지불방식
촛불에 크게 덴 미국정부는 쇠고기 개방의 결제방식을 살짝 바꿨다. 예전에는 선불제였지만 이번엔 후불제이다. 후불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미국 상원의 맥스 보커스 의원이 친절히 설명해주신다.
미국 상원 재무위원장인 맥스 보커스 민주당 의원은 2011년 10월 "한미 FTA가 발효되고 6개월 안에 한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을 위한 재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과의 협상은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주도할 것이며, 매우 영향력이 세고, 한국은 사실상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 정도 친절한 설명에도 애매하다고 느끼는 분들을 위해 후불제에 관한 추가 설명 들어간다.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2010년 8월 4일 상원 농림식량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검역 기준에 부합하는 쇠고기가 제한 없이 수출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이는 한미 FTA의 두 가지 핵심쟁점 중 하나"라고 답변했다.
그가 말한 핵심쟁점 두 가지는 자동차와 쇠고기를 말한다.
자동차 문제는 2010년 12월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미국측의 요구가 전면적으로 관철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쇠고기 문제. 미 행정부는 한미 FTA 미 의회 비준을 요청하기에 앞서 30개월 이상 쇠고기, 내장 등의 개방 요구를 한국 정부에 요청하지 않는 대신, 한국 정부가 이러한 목표를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가도록 '확실한 약속(secure commitments)'을 하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쇠고기를 선불로 요구했다가는 다시 촛불시위가 일어나 한미 FTA 비준 자체가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 후불제로 요구하기로 바꾼 것이다.
미 의회조사국은 2011년 3월 3일 <한-미 쇠고기 분쟁 : 이슈와 현황> 보고서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위한 5가지 꼼수를 제시했다.
미국 농무부는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더 많이 소비하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증가하고, 미국 내 광우병 전파를 차단하는 미국 정부의 조치가 효과적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다음 몇 가지 아이디어와 유인책을 통해 한국의 협상팀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고 밝혔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5가지 꼼수 중 하나를 한국 정부가 합의해줄 경우 2008년 4월 협정문 본문을 그대로 둔 채 '서한 교환(exchange of letters)' 방식을 통해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최근 이러한 꼼수로 한미 FTA 국회비준을 어물쩍 처리하려다 여론의 된서리를 맞은 바 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한미 FTA 협정문 본문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ISD 문제를 '서한 교환(exchange of letters)' 방식으로 처리하려는 꼼수를 부렸다.
미국이 요청하면 7일 이내에 쇠고기 협상에 응해야
머랜티스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는 2011년 4월 7일 미 하원 세입위원회 무역소위 청문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의회 비준을 촉구하면서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국제적 과학기준에 부합하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쇠고기 시장의 추가적인 개방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론 커크 무역대표부 대표는 2011년 5월 4일 막스 보커스 의원에게 서한을 보내 다시 한 번 후불제 쇠고기 개방을 약속했다. 그는 "한국 측에 공식적으로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협의를 요청한 후 7일 이내에 한국 측이 협상에 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25조에 딱 그렇게 적혀 있다.
이후 2011년 5월 12일 미 하원 농업위원회 청문회에서 미 농무부장관과 무역대표부 대표가 쇠고기 개방 후불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톰 발색 미 농무부장관은 "한미 FTA 발효 후 공격적 쇠고기 마케팅"을 약속했고,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한미 FTA 발효 후 추가적인 쇠고기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
차기 상원의원 선거를 염두에 둔 보커스 의원은 뭔가 반대급부를 받아낸다. 그는 미 행정부에 한미 FTA를 우선적으로 처리해주기로 양보를 하면서 미국 정부가 대한국 쇠고기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캠페인 비용으로 100만 달러를 미국육류수출협회(UNMEF)에 지원하는 성과를 올렸다.
▲ 한미 FTA 반대 집회에 참여한 시민. ⓒ프레시안(김윤나영) |
이젠 쥐들의 횡포에 맞서 무서운 개를 불러야 할 때
자, 이쯤 되면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FTA와는 무관하다"는 괴담의 진실이 밝혀진 것 같다. 우리 국민들은 누가 우리 사회의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을 촉발하고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매우 부적절한 행위를 했는지 판단할 능력과 자격이 충분하다.
공무원, 고위관료, 국회의원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마땅하다.
한미 FTA 협상 당시 청와대 회의 내용까지 주한 미 대사에게 보고하고, 핵심사항인 '약가 적정화 방안'에 대해 죽을 힘을 다해 미국의 이해를 관철하려고 노력했던 고위 관료는 진정 어느 나라 소속 공무원이었을까?
한미 FTA 협상 초기 개성공단을 우선 협상의제로 배치하라는 대통령의 훈령을 무시한 고위 관료가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과연 이런 공무원들에 의해 주도된 한미 FTA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다산 정약용 선생은 '쥐 안 잡는 도둑고양이'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 / 너더러 쥐 잡아서 백성 피해 없애라 했지. / 들쥐는 구멍 파서 어린 낟알 숨겨 두고 / 집쥐는 온갖 물건 안 훔치는 것이 없어 / 백설들은 쥐등쌀에 나날이 초췌해 가고 / 기름 말라 피 말라 피골까지 말랐다네. / (…) / 너 요즘은 한 마리 쥐도 안 잡고 / 도리어 네놈이 도둑질하는구나. / 쥐는 본래 좀도둑이라 피해 적지만 / 너는 힘이 센데다가 맘씨까지 거칠어라./ (…) / 내 이제 붉은 활에 큰 화살 매겨 너를 쏘리라. / "쥐들이 행패 부리면 차라리 무서운 개를 부르리라."
- (다산 정약용 시선, 평민사, 1986, p 126)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괴담으로 치부했던 정부가 또다시 2011년 한미 FTA 반대 촛불시위를 괴담이라고 우긴다면 쥐들의 횡포에 맞서지 않는 고양이를 화살로 쏘아 죽이고 무서운 개를 부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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