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청와대 쪽의 태도는 적반하장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은행의 큰 지점에서는 관봉 상태로 내주는 것이 흔하다”며 “사실을 왜곡해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관봉 돈뭉치를 볼 기회가 없다는 것은 은행권 사람들한테는 상식에 속한다. 특히 비닐 포장마저 찢지 않은 관봉권이 일반 영업점 고객에게 그대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오히려 이런 특이한 돈뭉치가 나올 곳은 청와대와 거래하는 은행밖에 없으리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청와대의 위상 때문에 거래 은행 쪽에서는 항상 새 돈을 준비해놓고 있으며, 청와대에서 내달라고 하면 인출 목적 등도 묻지 않고 응하는 것이 관례라고 은행 관계자들은 말한다. ‘힘있는 기관’ 사람이 아니면 추적이 가능한 관봉 돈뭉치를 그대로 넘기는 ‘간 큰’ 행동을 했겠느냐는 비아냥도 무성하다.
이런 세간의 의구심에 대답해야 할 곳은 청와대다. 애초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이라고 주장했던 류충렬 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은 뒤늦게 “아는 분이 마련해준 돈”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 주장의 신빙성도 따져봐야 하겠지만, 과연 ‘아는 분’이 누구냐가 관심의 초점이 아닐 수 없다. 장진수 전 주무관은 “5천만원은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마련한 돈이라는 말을 류충렬 전 관리관한테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장 비서관은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번 관봉 돈뭉치 사건은 결코 쉽게 넘어갈 수도, 또 넘어가서도 안 될 사안이다. 돈의 조성과 전달 과정에 정부기관의 조직적인 개입 냄새가 물씬 풍겨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식 딴청만 부릴 게 아니라 좀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별로 근거도 없는 지난 정권의 사찰 의혹을 꼬치꼬치 캐는 열정에 비하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는 너무 낯두껍다. 하지만 진실은 드러나게 돼 있다. 외면하고 부인한다고 진실이 묻힐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