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불법사찰 1×7=무한 사찰

道雨 2012. 4. 16. 17:52

 

 

            불법사찰 1×7=무한 사찰 

 

 지원관실 직제 분석, 불법사찰 드러난 지원관실 1팀 외에 6개 팀 비슷한 일을 한 정황 보여… 감찰·감사 업무 출신 포진된 40명 별동대, 부처 ‘나와바리’ 구분 없이 민간인 ‘방화벽’ 허물고 일했단 증언
 김남일
            싸이월드 공감  
선한 권력이란 있을 수 없다. 관리되는 권력이 있을 뿐이다. 권력의 ‘선의’를 믿는 순간, 그 권력은 우리를 속이기 시작한다.

공직기강 확립, 비위공직자 감찰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위장한 국가권력이, 공직사회가 아닌 시민사회 한복판에서 폭주하는데도 우리는 까맣게 몰랐다.

 

» 지난 4월1일 채동욱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사찰 문건 공개와 관련해 검찰의 견해를 밝혔다. 이날 검찰은 “‘사즉생’의 각오로 수사하겠다”고 했다. 2010년 1차 수사의 부실을 검찰 스스로 인정한 것일까. <한겨레> 김봉규

고삐 풀린 ‘암행감찰반’의 실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에서 작성한 사찰 문건들이 공개된 지 열흘이 넘었지만 사찰 충격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찰 파동의 동심원은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지원관실은 공직자 감찰을 빌미로 전 정부에서 임명됐거나 호남 등 특정 지역 출신 고위 공직자들만을 골라 축출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운영’이 지원관실 업무의 시작과 끝이었다.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의 돈줄을 옭아매고, 정권 우호적인 보수단체에 나랏돈을 퍼주는 일을 떠맡았다.

 

<한겨레21> 등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대통령이 ‘방송 장악’을 위해 내려보낸 ‘낙하산 사장’이 포진한 방송사에 대한 사찰과 동향 파악도 앞장섰다.

공직자 감찰을 넘어선 ‘정권 충성도’ 조사도 ‘공직자 복무 동향 파악’이라는 명분으로 마구잡이로 행해졌다.

동향 파악은 관가에 떠도는 풍문과 국가정보원·국군기무사령부 정보원,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신문 기자들에게서 얻어들은 몇 마디 말로 채워졌다. 이런 내용들을 담은 문건 수백 건이 들통 났다.

 

‘지원관실 공직윤리점검반 1팀’ 한 곳이 벌인 일이 이 정도다. 4급·5급 공무원 5~6명이 2년간 나라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한 일이다.

공직윤리점검반은 모두 7개 팀으로 구성돼 있었다. 나머지 6개 팀의 업무는 폭주하지 않고 ‘관리’되고 있었을까.

 

2008~2010년, 지원관실은 당시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 밑으로 크게 기획총괄과와 공직윤리점검반 2개의 조직으로 나뉘었다.

기획총괄과는 행정 지원과 함께 지원관실에서 행하는 각종 정책점검 계획을 짰다.

2010년 검찰 1차 수사 당시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진경락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4급)이 총리실로 차출돼 기획총괄과장을 맡았다.

 

공직윤리점검반은 관가에서는 이른바 ‘암행감찰반’으로 알려진 조직이다.

1팀은 행정안전부·보건복지가족부·국방부·경기도를 맡았다. 공개된 1팀 관련 사찰 문건들 가운데 행안부 소속인 경찰청과 소방방재청 관련 동향 파악과 복지부 소속 기관장 관련 내용이 많았던 이유다. 경찰 출신인 김충곤이 팀장을, 노동부 공무원인 원충연(5급), 경찰청 소속 이기영(경감)·권중기(경정)·김화기(경위)·최영호(경위)·김경수(경위)가 1팀을 거쳤다.

 

2팀은 교육과학기술부·법무부·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서울·대전·충청도를 담당했다. 검찰 소속 팀장(4급) 밑에 국무총리실(5급)·국세청(5급)·소방방재청(소방령)·경찰청(경정·경감) 소속 인사들이 팀을 이뤘다.

 

3팀 관할은 국토해양부·외교통상부·금융 관련 공기업·인천·강원도였다. 국세청 직원(4급)이 팀장을 맡았다. 정부 금융기관 출신 인사·농림수산식품부(5급)·교과부(5급)·경찰청(경정·경위) 소속 공무원들이 3팀 소속이었다.


4팀은 문화체육관광부·환경부·경남을 관할했다. 팀장은 국무총리실 공무원(4급)이 맡았다. 행안부(5급)·국세청(5급)·경찰청(경감)이 팀원으로 배정됐다.

 

5팀은 지식경제부·농림수산식품부·대구·경북을 맡았다. 노동부 공무원(4급)이 팀장 업무를 수행했고, 그 밑으로 국토해양부(5급)·국세청(5급)·경찰청(경감) 소속 공무원이 차출됐다.

 

6팀 소관은 노동부·통일부·여성부·국민권익위원회·광주·전남·전북·제주였다. 팀장은 국무총리실 공무원(4급), 팀원은 경찰청(경정·경감·경위)·검찰청(6급)·농림부(6급) 공무원들로 구성됐다.

1팀에서 작성한 ‘밀착 미행 문건’은 한 사정기관 간부에 관한 것이었다. 청와대가 불법사찰을 사실상 주도했다는 것을 잇달아 폭로하고 있는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은 “해당 사정기관은 지원관실 직무 밖이었다. 명백한 불법사찰이었다. 그런 기관에 대한 감찰이 가능하다면 국회나 헌법재판소, 대법원에 대한 감찰도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고 했다.

 

장 전 주무관, “팀별로 일에 큰 차이가 없었다”

 

7팀은 애초 직제에서는 숫자로 분류되지 않고 ‘기동팀’으로 불렸다. ‘특수임무’와 함께, 기획재정부·법제처·국가보훈처·부산·울산을 맡았다. 7팀장은 환경부 공무원(4급)이, 팀원은 환경부(5급)·금융기관 출신 인사로 짜였다.

지원관실 관계자(2~7팀)는 특수임무에 대해 “중요하고 빨리, 급히 해야 할 일을 하는 팀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환경부 출신이 팀장과 팀원이었지만 특수임무로 4대강 사업 쪽을 맡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감찰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4대강 업무를) 부여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 면면을 보면 (일반 공직자 감찰) 노하우가 있었다.”

 

총리실 아래에는 38개 부·처·청이 있다. 각 기관에서 차출된 40명 가까운 ‘별동대’가 정부기관과 공기업, 도·특별시·광역시를 탈탈 털고 다녔다.

이 전 지원관은 검찰에서 “팀별로 담당하는 소관 부처를 나눴지만 꼭 (거기에) 얽매여 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른바 ‘나와바리’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총리실 관할을 벗어난 기관에 대한 감찰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1팀에서 작성한 ‘밀착 미행 문건’은 한 사정기관 간부에 관한 것이었다.

청와대가 불법사찰을 사실상 주도했다는 것을 잇달아 폭로하고 있는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은 “해당 사정기관은 지원관실 직무 밖이었다. 명백한 불법사찰이었다. 그런 기관에 대한 감찰이 가능하다면 국회나 헌법재판소, 대법원에 대한 감찰도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고 했다.

 

민간인 사찰은 어땠을까. 공직자와 민간인 사이에는 강력한 방화벽이 작동하고 있었을까. 지원관실에서 작성한 ‘공직윤리점검 활동의 정당성’ 자료를 보면, “민간인은 지원관실의 점검 대상이 아님”이라고 명확히 기재돼 있다.

그러면서도 지원관실 쪽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민간인이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경우 등에는 민간인 제보자의 동의를 얻어서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수사기관에 이첩하지 않고도 민간인 조사가 가능한 ‘예외’라는 얘기다.

 

1팀은 방화벽 자체가 아예 없었다.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는데도 “몰랐다”며 사찰을 정당화했다. 다른 팀들은 어땠을까.

장 전 주무관은 “팀별로 하는 일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담당 영역만 형식적으로 구분됐을 뿐, 업무 내용과 방식은 대동소이했다는 얘기다.

1팀에서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 등 고위 공직자의 동향 파악과 함께 정권 충성도를 뒷조사했듯이, 나머지 2~7팀도 담당하는 모든 부처 장·차관 등을 대상으로 뒷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직무 범위 바깥의 기관이나 민간인에 대한 사찰 역시 1팀과의 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진행됐을 개연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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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요소에 배치된 경찰 혹은 감찰·감사 출신

 

지원관실 공직윤리점검반(2~7팀)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업무 행태에 따라서는 잘못하면 인권침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 팀은 직무 범위에서만 일을 했다”고 했다.

‘민간인 사찰’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의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계는 애매하다.

 

이 관계자는 “조사를 하다가 민간인이 나오면 전화상으로는 확인하지만 해당 민간인을 직접 소환하거나 만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밖에서 우리 업무를 어떻게 보는지는 몰라도 (민간인 사찰은) 일반직 공무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사기관 이외의) 다른 부처에서 차출된 직원들은 정보가 없기 때문에 민원이나 제보를 처리하지 (사찰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열심히 일했는데 이렇게 오해를 받으니 안타깝다”고 했다.

수사기관 출신이거나, 출신 기관에서 자체 감찰·감사 업무로 잔뼈가 굵은 이들이라면 합법감찰과 불법사찰을 가르는 담장 위를 걸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각 팀에는 감찰·감사 업무가 주임무인 이들이 골고루 포진해 있다. 이인규 전 지원관은 국민의 정부 시절이던 1999년 5월부터 2001년 8월까지 국무총리실 소속 국무조정실 조사심의관실 팀장을 맡아 공직기강·공직윤리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이명박 정부의 지원관실과 유사한 업무였다고 한다.

 

이 전 지원관은 기동팀(7팀) 팀장인 이아무개, 5팀장 최아무개, 6팀장 정아무개를 데려왔다. 7팀장과 6팀장은 이 전 지원관이 과거 국무조정실 조사심의관실 팀장으로 있을 때 같은 팀에서 함께 일했다고 한다. 5팀장 역시 이 전 지원관이 노동부 감사관일 때 주무 계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1팀장인 김충곤은 경찰 보안과 출신이다. 1팀 대부분은 경찰 정보·보안·감찰 분야에서 일했던 이들이다.

2~7팀에도 경찰 출신이거나 감찰·감사 업무를 맡은 이들이 1~2명씩은 무조건 포함돼 있다.

지원관실의 ‘공식적인 임무’에 비춰보면 당연한 듯하지만, 시민사회 감시에 능한 정보·보안 출신들이 비공식적 영역까지 넘나들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총리실은 2010년 7월 민간인 불법사찰 후속 대책으로 지원관실을 ‘공직복무관리관실’로 개편하며 “조직 구성원들이 공직기강 관련 경험이 부족해 업무를 처리하는 데 다소 미숙한 점이 있었다”고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이다.

 

지원관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과 주로 업무 협조를 했다. 이 전 지원관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감사 관련 회의에서 공직기강팀장이 ‘확인해보라’고 어떤 단서를 주면 받아왔다. 통상 그다음에 청와대 회의에서 상황 보고를 하거나 회의가 없으면 보고서를 밀봉해 보고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그는 “흔하지는 않지만 총리실이나 국정원, 청와대에서 받아오는 사안의 경우 성격을 고려해 적절한 팀에 배당했다”고 했다. 청와대 하명 사건은 “아무래도 신경을 더 썼다”고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는 “지난 정부에서도 지원관실과 같은 업무를 했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참여정부에서 인사 검증 업무를 맡은 권오중 전 청와대 행정관은 “참여정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감사원, 국세청, 행정자치부, 국무조정실, 검찰청, 경찰청, 부패방지위원회,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기무사, 국정원 등 관련 기관의 협조를 받아 검증 업무를 수행했다. … 검찰과 경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에서 파견된 특정직 출신이 많다. 검증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 사정기관들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인사 검증 업무 외에 고위 공직자 복무 감찰도 다루기 때문”이라고 했다(<참여정부 인사 검증의 살아 있는 기록>)

 

» ‘관봉’ 형태의 현금 다발 5천만원의 사진을 공개한 다음날인 4월5일,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검찰 조사에 응하기 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촛불 이후 부활, ‘영포라인’ 총괄 지원관실

 

참여정부가 휘두른 권력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기관들의 정보·사찰 욕심은 정권을 가리지 않는다. 문제는 ‘관리되는 권력’과 ‘폭주하는 권력’의 차이에 있다.

참여정부 시절 조사심의관실에서도 일했던 장 전 주무관은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 민간인 조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철칙으로 생각했다. 한 달에 한 번씩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조사심의관실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폐지됐다. 2008년 2월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크게 덴 이명박 정부는, 불과 5개월이 지난 그해 7월 조사심의관실을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이름으로 부활시켰다. 책임자로는 경북 영덕 출신에 포항고를 나온 이 전 지원관을 앉혔다.

 

‘의도’는 명백했다.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원관실 직원들에게 “촛불시위, 미국발 국제 금융위기 등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공직사회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2009년 1월 총리실은 ‘업무지침’으로 “국정과제 수행 방해, 정부정책 비방 공무원 엄단 지시”를 내렸다.

2010년 1월에도 “(4대강 살리기 등) 정부 정책에 대한 고위 공무원들의 비협조를 엄중 조치”하라는 업무지침을 하달했다.

 

지침은 충실히 이행됐다. 시민사회까지 그 대상이 됐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