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간한 외부공격 앞에서는 끄떡도 않던 대한민국 보수-수구동맹체가 ‘폭탄’ 한 방에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조중동은 물론 당-정, 보수진영조차도 갈갈이 찢겨진 형국이다. 이들을 한순간에 갈라놓은 것은 휴전선을 넘어서 날아온 북한의 핵무기가 아니다. 지난달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상 네 번째로 발병한 ‘광우병 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진은 평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영웅처럼 추앙해 왔고, 그런 논조의 글을 <중앙일보> 지면에 수차례 실어왔다. 또 현실정치에서는 대체적으로 ‘친박’ 성향을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평소의 그답지않게(?) 박 위원장을 이처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는 매우 이례적일 일인데 그 이유는 글 도입부에 등장한다. “이토록 중요한 국면에서 박근혜는 검역중단을 주장했다. 반대세력에 동조한 것이다. 과연 박근혜 판단력은 안전한가”라고 한 대목이다. ‘반대세력’ 운운한 걸 보면 박 위원장이 마치 이적행위라도 한 듯이 질타해대고 있다.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김진은 “지도자라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국민 여러분, 미국산 쇠고기 안전에 위험이 생긴 상황은 없습니다. 세계인은 차분하게 대처합니다. 우리도 정부를 믿고 지켜봅시다. 4년 전처럼 괴담이나 선동에 휩쓸려선 안 됩니다. 저는 오늘 저녁 미국 쇠고기를 먹을 겁니다.’”라며 노골적으로 박근혜 위원장을 한 수 가르치기까지 했다. 김진이 이런 글을 쓴 데는 한국의 ‘검역주권’이나 ‘먹거리 안전’보다는 이번 사태가 한미관계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더 우려한 탓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김진의 이런 ‘우려와 충정’은 조중동의 공통된 시각일까? 지난 2008년 촛불집회 당시로 돌아가보면 조중동은 ‘한 몸’이었다. 그러면 <조선일보> 논조는? 뜻밖에도 <조선>은 둘과 달랐다. 이 날짜 사설에서 <조선>은 “정부는 2008년 5월 8일 주요 일간지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습니다’라는 광고를 냈었다”며 “정부는 이제 와 그 광고에 대해 ‘국민이 위험에 처한다는 판단이 들면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뜻이었는데 한정된 지면 때문에 표현이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며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한 기준을 세워 대응해야 한다”며 강경론을 펴 간접적으로 박 위원장 편에 섰다. 한편, 광우병 발생 초기에는 다소 우왕좌왕하던 새누리당은 지나달 27일을 기점으로 뚜렷한 입장을 정리해 내놨다. 골자는 MB정부의 방침에 대한 비판과 공세였다. 당 대변인이 먼저 깃발을 들었다. 황영철 대변인은 이날 오전 비공개 주요당직자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광우병 발생 사태에 대해 정부가 내린 검역강화 조치는 광우병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해소시키기에는 미흡한 조치라고 판단된다”며 “새누리당은 단호한 조치를 원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부가 즉각 검역 중단조치를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며 즉각적 검역중단을 촉구했다. 이는 정부와의 정면충돌을 공개표명한 것이다. 공세 마무리는 박 위원장이 맡았다. 당일(27일) 경남도당에서 열린 ‘경남 총선공약실천본부 출범식’ 참석한 박 위원장은 동행한 기자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 요구에 대한 입장을 묻자 “정부는 국민의 위생과 안전보다 무역마찰을 피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된다”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즉각 검역을 중단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또 “최종분석 결과 안전성이 문제가 있다고 밝혀지면 수입도 중단해야 한다”고 한 술 더 떴다. 그의 발언에 정치적 의도가 있든 없든 일단 이번 사안에서는 명쾌한 입장을 내놓은 셈이다. 박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김진이 게거품을 물고 덤빌만큼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중단과 또 만약 최종분석 결과에서 안전성이 우려되면 수입을 중단하라고 한 것이니 그저 상식 수준의 얘기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당국의 반응은 ‘앗 뜨거!’ 식이었다. 농식품 행정의 최고책임자인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당일 새누리당의 즉각적 검역중단 요구에 대해 검역중단을 하지 않겠다고 반박했다. 서 장관은 “미국에서 보내온 자료를 보니 검역을 중단할 필요가 없다”며 마치 미국 농무부를 대변하는 듯 했다. 당-정은 ‘검역중단’ 등을 놓고 이렇게 양 편으로 갈라섰다. 그러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당시 해당부처 책임자로 있었던 사람들의 입장은 어떨까? 여전히 같을까? 반면,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농식품부 장관을 지냈고 MB의 측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정운천 전 장관은 입장이 달랐다. 그는 “2008년 당시 광고에도 냈고, 청문회에서도 제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며 “약속이라는 것은 안전성(논란)은 둘째로 치더라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는) 빨리 검역중단을 하든지 약속을 지켜야 하며,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며 거듭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참고로 정 전 장관은 농업인 출신이다. 그러면 이번엔 보수진영은 과연 어떤 입장들일까? 조갑제 씨와 어버이연합의 경우를 보자. 대표적 극우 논객인 조갑제 씨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생각 있는 국민들은 정부 발표를 믿고 차분하다. 문제는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의 선동”이라며 “최근 조선일보 사설은 사실보다는 좌익들의 선동을 더 중시하는 논지나 정치적 고려를 강조하는 주장을 가끔 편다”며 조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 날짜 <조선> 사설은 <동아> <중앙>과 달랐다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래서였던지 조 씨는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의 오늘자 칼럼이 조선일보 사설보다 더 언론답다”며 김진을 극찬했다. 참고로 조 씨의 극우적 논조가 배태된 곳은 <조선일보>라고 할 수 있다. 행동파 극우보수 노인들이 주축이 된 ‘어버이연합’은 이번 광우병 사태를 어찌 보고 있을까? 구체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무엇일까? 그들 역시 나름의 입장을 갖고 있었는데 그들은 ‘검역 중단’ 쪽이었다. 이 단체의 추선희 사무총장은 30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이 미 광우병 소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반대하지만 우선 정부가 사태를 신중하게 판단해 미 쇠고기 검역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며 일단 ‘검역 중단’에 힘을 보탰다. 같은 극우라도 조갑제와는 또다르다. 한편, 이번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 같은 ‘보수’이면서도 갈라서지 않은 채 여전히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집단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인데, 이 둘은 여전히 짝짜꿍이 잘 맞고 있다. 이번 광우병 사태로 인도네시아에 이어 태국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을 결정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꿈쩍도 않으면서 현재로선 별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는 식이다. 오죽하면 미국 농무부 장관이 한국 등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규제를 강화하지 않은 몇몇 국가들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겠는가? <한겨레> 장봉군 화백은 1일자 ‘한겨레 그림판’에서 이를 두고 ‘값싸고 질긴 한미동맹’이라고 표현했는데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광우병 폭탄’에 박살난 조중동과 ‘보수동맹’
그나마 성한 곳은 오직 하나, ‘값싸고 질긴 한-미동맹’ 뿐
정운현 기자 | 등록:2012-05-02 09:55:04 | 최종:2012-05-02 10:25:11 | 조회:512
목하 광우병으로 뜨거워진 분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4월 30일자 <중앙일보>에 김진 논설위원이 쓴 칼럼. 김진은 ‘광우병에 흔들리는 박근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두고 “진실 파악 능력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진실을 말할 용기가 부족하다”며 인신공격성 비난을 쏟아냈다. 앞서 박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MB정부에 대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즉각적 검역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일반국민들이 우려하는 사안에 대해 책임 있는 정치인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 4월 30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김진 칼럼. ⓒ 중앙일보 사이트 캡쳐
우선 <동아일보>부터 살펴보자. 이 날짜 <동아>는 사설에서 “지금 여야는 당시의 신문광고를 근거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하지만 4년 전과 똑같은 미봉책을 선택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또다시 이런 거짓과 괴담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며 2008년 촛불시위 때 나온 ‘어떤 유언’이라는 노래 가사를 거론했다. 4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안전성을 문제삼을 경우 이를 ‘괴담’ 운운하는 버릇은 여전한 셈이다. 미국에서 버젓이 광우병 소가 발견됐음에도 말이다. 결국 <동아> 논조의 맥락은 <중앙>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우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을 주도했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새누리당 당선자)은 지난 2008년 5월 농림부 등이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며 중앙 일간지에 게재한 정부광고에 대해 “특별히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또 “국회 통상이라는 게 엄청나게 돼 있고 나라 간에는 늘 협의가 있고 우리나라 속담에도 호미로 막을 일이 있고 가래로 막을 일이 있지 않나?”라며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으면 잘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라며 정치권의 검역중단 목소리를 과잉대응으로 해석했다.
▲ '값싸고 질긴 한미동맹'. ⓒ 한겨레 그림판(5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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