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
‘시장 바꾸니 모든 게 바뀐다’, 성급한 낙관주의 경계해야
“아무것도 안 한 시장이 되고 싶다.”
지난 26일 취임 6개월을 맞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말이다. “이명박 시장 하면 청계천이 떠오르는데, 박 시장은 임기 안에 꼭 이루고 싶은 게 뭐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박 시장은 “과거 시장들이 (대통령 선거 같은) 시장 다음 단계에 욕심을 갖고 전시행정과 성과주의에 매몰됐다”고 지적했다. ‘아무것도 안 한 시장’은 전임자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임기 안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위해 졸속으로 일을 벌이지 않겠다는 역설적 다짐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박 시장은 무상급식,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서울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뉴타운 대책 등 숨가쁘게 많은 일을 했다. 박 시장은 파격 소탈 언행과 개혁몰이로 인기가 부쩍 높아졌다. 한 누리꾼은 ‘박원순이 뭔데 서울시장? 청와대로 꺼져버려, 대통령이나 되라’는 글을 온라인에 올리기도 했다.
나는 요즘 “박원순 어때? 잘하고 있는 거 맞아?”란 질문을 자주 받는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내가 ‘서울시를 출입한다’고 하면 박 시장에 대한 평가를 안부 인사처럼 묻는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서울시 공무원, 서울시의원, 다른 부처 공무원, 동료 선후배 기자 등에게 ‘박원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지난해 서울시의회 민주당 무상급식 주민투표 대책위원장을 맡아 ‘오세훈 저격수’ 구실을 했던 강희용 시의원이 뜻밖의 평가를 내놨다. 강 의원은 “박 시장이 아직까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했다. 시립대 반값등록금이나 친환경 무상급식,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 등은 이미 시의회가 진행한 일에 박 시장이 서명만 했다는 것이다.
점심시간 소규모 음식점 앞 주차단속 완화는 지난 2월 온라인 설문조사 시민평가에서 박 시장 취임 이후 추진된 100개의 주요 정책 중 가장 높은 호응을 얻었다. 대표적인 ‘박원순표 친서민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은 정승우 서울시의원이 박 시장 취임 이전인 지난해 8월부터 점심시간 소규모 식당 앞 주차단속을 유예해줄 것을 서울시에 건의해 지난해 11월에 성사된 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박 시장은 나름의 성과를 거뒀고 서울 시정에 신선한 변화를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 한명을 바꾸니 모든 것이 바뀐다’는 성급한 낙관주의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서울시장은 바뀌었지만 서울시는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는 본청 공무원 1만6000여명에 25개 자치구 공무원 3만여명을 합쳐 공무원만 4만6000명이 넘는 방대한 조직이다. 박 시장은 공무원들을 만날 때마다 “함께 갑시다”라고 설득한다. 박 시장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결국 일은 공무원들이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 시장이 시청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안에 있던 직원들이 “으악” 하며 도망가곤 한다. ‘하늘 같은 시장님’이 어려우니 되도록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박 시장과 ‘함께 가기’를 머뭇거리고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박 시장의 남은 임기가 2년1개월이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이런 어려움을 딛고 서울시를 ‘희망의 근거’로 만들어야 한다는 진보개혁세력의 소임을 안고 있다. 박 시장은 ‘희망’이란 말을 무척 좋아한다. 서울시장이 되기 전에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였고, 지난해 10월 꾸린 서울시장 선거운동본부 이름도 ‘희망캠프’였다. 중국 작가 루쉰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썼다. ‘서울시장 박원순’에게도 희망은 길과 같다.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