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의 부정부패는 거대한 광맥과도 같다. 이명박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하나같이 검은돈 챙기기의 선수들이었다. 비리에 대한 경각심도, 공직자로서의 도덕적 의무감도 없었다. 박 전 차관은 현 정권이 출범한 2008년 초 대통령실 기획조정관으로 근무할 때도 강철원 당시 서울시 홍보기획관한테서 파이시티 관련 업무를 보고받았다고 한다. 권력의 사유화, 국정농단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던 셈이다.
박 전 차관의 구속은 현 정권 실세들이 저지른 부정부패에 대한 단죄의 시작일 뿐이다. 파이시티 사건만 해도 검은돈의 흐름이 과연 박 전 차관 선에서 끊겼을지 의심된다. ‘윗선’의 개입 확인 등 앞으로 검찰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박 전 차관의 그동안 행적을 보면 뇌물액수가 단순히 1억7000만원 정도에 그칠 것 같지도 않다. 직원이 고작 두 명인 소규모 씨앗가게를 운영하는 그의 형 계좌에 수억원의 현금이 수년간 잘게 쪼개져 입금됐다는 점도 구린 냄새가 물씬 풍긴다.
권력 이동에 민감한 검찰의 면모는 이번에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권력의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는 제대로 수사를 못하다가 해가 서산에 걸리자 뒤늦게 칼을 빼들었다. 그래도 칼을 안 빼든 것보다는 낫다. 늦었지만 이번 기회에 박 전 차관의 국정농단과 비리부정의 실체를 한점 의혹도 남기지 말고 밝혀내기 바란다.
박 전 차관은 에스엘에스(SLS) 이국철 회장의 로비 의혹, 아프리카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과 관련된 씨앤케이(CNK) 주가조작 사건,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등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돼 왔다. 에스엘에스 로비 의혹만 해도 검찰은 박 전 차관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나 일본에서의 술접대 의혹 등에 대한 그의 결백 주장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박 전 차관이 국무조정실 차장 시절 유례없이 대규모 민관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카메룬을 방문해 다이아몬드 협상을 벌인 사실 등도 이제는 새로운 각도에서 파헤쳐야 한다. 국정농단의 정점인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진상규명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사건들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면 박 전 차관의 구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검찰이 정확히 인식하기 바란다.
[ 2012. 5. 9 한겨레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