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파동은 정부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짓밟은 충격적인 사례다. 이명박 정권은 국가 안보를 포함해 국익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을 비밀리에 일본과 협상하면서 국무회에서 군사작전 하듯 가결하고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려 했다. 

현 정권은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한일 정부간 서명이 취소돼 국제적으로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그런데도 국무총리가 유감 표명을 하면서 지나가려하고 있지만 말도 되지 않는 태도이다. 이번의 심각한 국민 기만 및 국가 체면 손상 사태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물론 관계 국무위원 등 관련자들은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정부는 29일 밀실 처리 논란을 빚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연기하면서 졸속 추진에 따른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도 그 심각성을 인식치 못하고 있다. 정부는 도쿄에서의 협정 서명식을 한 시간 남짓 앞두고 협정 체결을 전격 연기한 뒤, 국회와 협의한 뒤 협정 서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김황식 총리는 협정 체결이 연기된 후 발표한 보도 자료에서 협정 추진이 국익의 관점에서 추진됐지만 절차상의 문제로 의도하지 않게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협정의 국무회의 상정 과정에 대한 오해가 있는 만큼, 정부는 앞으로 이 협정에 대해 국민과 국회에 상세히 설명하는 시간을 갖겠다면서, 책임 있는 자세로 이 문제를 처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말하는 국익이 과연 어떤 것인지는 깊은 성찰과 공론의 과정이 필요한 것인데도 김 총리는 아직도 그런 필요성을 인식치 못하는 민주주의 색맹의 증상을 드러냈다. 그는 국민에게 숨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면서, 절차상 문제로 국민에게 심려를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정직하지 못하다. 김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이 협정 안을 비밀리에 가결한 것을 놓고 ‘숨기려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뻔뻔스런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김 총리는 이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인접국인 일본과 상호 정보공유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2011년 1월 한일 국방장관회담을 계기로 협정 체결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총리는 북한 핵실험 등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과 지난해부터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지만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미래에 한반도를 재침하겠다는 야욕을 감추지 않는 지극히 위험한 도발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경각심이 없는 듯 하다. 그는 상대국과 체결 일정을 정했기 때문에 비밀리에 국무회의에서 가결했다고 거듭 변명했지만 이는 상대국만 의식했지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고백에 다름 아니다. 

국무회의가 지난 2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일본과의 정보보호협정을 즉석 안건으로 올려 비공개로 통과시킨 데는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으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그동안 한일 간 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등을 적극 추진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가 일본이 위안부ㆍ과거사 문제를 외면하고 핵무장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해방이후 첫 한일간 군사협정이 강행 처리되려했던 것은 그 동안 주요 사안마다 국회 날치기 통과를 여당에 독려했던 청와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 대통령의 ‘뼛속까지 친일, 친미’라는 속설의 진실성과 그의 반 민주주의 자질이 거듭 확인되고 있다 하겠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민주당의 협정 저지 운동 방침에 이어 새누리당까지 협정체결 보류를 요구하고 난 뒤 내려졌지만 이는 보류가 아니라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포기와 전쟁 범죄 인정 및 사과와 배상 등이 취해져 진정한 우방으로써의 태도를 보일 때까지 일본에 대한 경계의 태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중시 군사 전략 변경으로 동북아가 신냉전시대의 각축장으로 격변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군사 블록화를 촉발하는 조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남북 평화통일의 과제는 정권 차원을 뛰어넘는 민족적, 역사적 과업이라는 점에서 평화통일을 저해하면서 강대국의 이익에 놀아나는 식의 정치가 자행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