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방송3사 비판능력 실종 앵무새 방송…“사과수위 높다” 용비어천가 언론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SBS 앵커 “MB 사과 서글프고 화가 치밀어”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검찰 기소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돌연 대국민 사과를 한 데 대해 방송 3사를 비롯해 언론들이 비판능력을 상실한채 “지금껏 사과한 것 중 가장 수위가 높다”며 ‘찬가’ 수준의 평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비판이라면, SBS 앵커가 뉴스 말미에 “화가 치민다”는 약간의 감정을 드러낸 것이 거의 유일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방송 3사는 나란히 “대통령이 사과했다”는 사실만을 전하는 리포트 1~2건 만 내보냈다. SBS의 경우 2건의 리포트를 방송했지만 이명박 대통령 사과의 심정을 애써 안타깝게 묘사한 표현들이 적지 않았다. SBS는 24일 저녁 <8뉴스>의 톱뉴스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
“준비된 담화문을 읽는 내내 이명박 대통령의 표정은 무겁고 침통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며 참담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탓할 수 있겠냐며 모두가 자신의 불찰이라고 자책했습니다”
“심기일전해 대통령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으로 이 대통령은 4분 간의 사과 담화 발표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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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저녁 방송된 SBS <8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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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뉴스에 나온 표현들은 ‘말했다’, ‘밝혔다’ 등 평문체 표현이 아니라 (이 대통령 표정이) “침통했다”, “참담한 심경” “자책했다” “각오를 밝히고” 등 기자가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거나,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에 서서 국민이 안타까워하게끔 하는 서술어들이었다.
더구나 SBS는 이어진 사과담화 발표 경위와 여야 반응을 담은 리포트에서 “대통령 사과 담화가 발표된다는 사실은 발표 30분 전에야 알려졌다”, “핵심 참모들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이 대통령 스스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며칠간 사과 시점과 내용을 고민했고 담화문도 혼자서 다듬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라고 전했다.
대통령이 며칠간 사과의 시점과 내용을 친히 고민한 흔적을 뉴스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흔적이 역력해 보이는 리포트였다.
이 같은 기자들마저 ‘애통해하는’ 표현은 KBS 뉴스에서도 발견된다. KBS는 이날 9시뉴스 세 번째 리포트에서 “굳은 표정의 이명박 대통령은 친형과 측근 비리로 국민에게 큰 심려를 끼쳤다며 사과했다”며 “나라 안팎이 너무나 긴박한 상황이라며 임기 말까지 경제 위기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 죽기 전에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는 사이후이의 각오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역시 ‘굳은 표정의’, ‘너무나 긴박한 상황이라’, ‘각오를 밝혔다’ 등 이 대통령 사과의 순간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표현이 곳곳에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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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밤 방송된 KBS <뉴스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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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KBS는 여야 반응에 대해 “여당은 측근비리 반복이 안타깝다고 밝혔고 야당은 진정성 없는 사과로 대선자금에 대한 고백이 없었다고 평가절하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임기중 크고 작은 비리와 사고로 무려 여섯 번 넘게 고개를 숙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친형·측근이 모조리 부패한 짓을 저지른데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다. 도덕적으로 깨끗한 정권이라고 4년 내내 외쳐온 국가원수가 도덕적으로 ‘더러운’ 결과를 낳았다면 그것은 사과로 그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 같은 불법부정이 이뤄지는데 이 대통령이 알고 있었는지, 관여했는지 등에 대해 의심을 갖는 것은 상식적인 여론이다.
그런데도 KBS는 이런 비판에 대해 “평가절하했다”고 평가했다. 이 표현 하나가 리포트 전체를 편파적이고, 친여성향의 뉴스라 인식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MBC는 <뉴스데스크>에서 8번째 리포트 한 건으로 짤막하게 보도하고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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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밤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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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앵커는 “80년 이후 집권한 모든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는 기록은 이번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라며 “대통령 퇴임하는 날 깨끗한 정권이었다고 칭찬하는 뉴스 전하는 게 기자생활의 소원이라면 소원이었는데, 또 5년 미루게 됐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앵커는 “서글프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방송 3사 외에도 24일 이 대통령 사과 이후 용비어천가급 언론보도들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의 사과 수위가 높다고 격찬한 기사들이었다.
연합뉴스는 이날 오후 출고한 기사에서 “이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하면서 2차례나 깊이 고개를 숙였고, ‘억장이 무너지고’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 ‘어떤 질책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등 강도높은 표현을 사용했다”며 “이 대통령은 지난 며칠간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루며 사과 시점과 내용 등을 고심했고 참모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담화 원고를 다듬었다고 한다. 원고의 최종본 역시 인쇄한 게 아니라 이 대통령이 직접 수기한 원본 그대로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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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저녁 방송된 SBS <8뉴스> 클로징 멘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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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도 “측근비리로 집권 말기 ‘레임덕’은 불가피하겠지만 강도 높은 사과로 잔여 임기동안 대통령직을 꿋꿋히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점이 눈에 띈다”며 “이날 대국민사과는 지난 측근비리 사과 때보다 한층 강도가 높았다”고 평했다. 이런 평가는 불교방송과 서울경제, 아시아투데이 등의 뉴스에도 나타났다.
이를 두고 고재열 시사인 기자는 이날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 사과에 대해 “사과를 하려면 먼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얘기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래야 진짜 사과를 하는지 가짜 사과를 하는지 알 수 있다. MB는 정말 답이 없다”면서 “근데 이걸 사과 수위 높다고 칭찬하고 있다. 웃기고들 있다”고 혹평했다.
뭘 잘못했는지 나타나있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담화는 기자들의 아무 질문도 받지 않은 채 4분간 카메라 앞에서 읽고 끝났다. 이런 점에 대해 비판한 언론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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