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잡탕밥' 통계, FTA는 대국민 사기극이었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미FTA가 첫 돌을 맞았다. 누군가에겐 복덩이 첫 돌일지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엔 후레자식 같을 게다. 복덩이라 믿는 쪽에서는 성대한 돌잔치를 준비할 모양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인사치레도 풍성하다.
주요 언론마다 한미FTA 첫 돌을 맞는 온갖 기사들을 내보냈다. 대개 이런 내용들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한미FTA 덕분에 수출도 늘고, 투자도 늘어서 흑자도 늘었다.' 덧붙여 '우리 농민 다 죽는다더니 아무도 안 죽었네'라는 식의 이야기도 눈에 들어온다.
수출이 늘었다는 얘기는 이미 올 1월에 등장한 것이다. 관세청이 자료를 내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한미FTA 덕택에 대미수출이 4.1%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새 정부에 향한 립서비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 관세청이 지난 1월 14일 내놓은 '2012년 수출입동향(확정치)' 내용 일부
ⓒ 관세청
그런데 발표가 나오자마자 <오마이뉴스>의 강력한 잽에 걸려 버렸다. '한미FTA는 2012년 3월 15일 발효됐는데 왜 2012년 1~3월 자료가 여기에 포함돼 있느냐'는 게 기사의 요지였고 제대로 걸렸다(관련기사 : [단독] 한미FTA 효과로 수출 증가했다고? 오히려 줄어). 1~3월 치를 빼고 보니 오히려 수출이 줄었다. 실제 4월부터 12월까지 대미수출은 매월 약 2%에 조금 못 미쳐 줄었다. 2010년 매월 수십 퍼센트씩 증가했던 것과 비교해봤을 때 보통 문제가 아닌 수치였다.
관세청 보도자료에는 심지어 한미FTA 덕분에 자동차 수출이 20% 가량 늘었다고 적혀 있었다. 치명적인 에러다. 왜냐하면 자동차 관세는 미국이 우리 팔을 비틀어 재협상을 강요해서 4년간 유예하지 않았던가. 쉽게 말해 자동차는 2016년까지는 한미FTA와 전혀 무관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미FTA와 전혀 무관한 데도 수출이 저리 늘어난다는 점일 게다.
한미FTA 첫 돌께 나온 자료는 '잡탕밥' 수준
아무튼 KBS뉴스까지 나서서 이 허위 과장 광고를 꼬집자 관세청은 부랴부랴 해명자료를 냈다. 그런데 3월 15일 발효일이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새 버전을 발표한다. 무역협회도 거들고 나섰다. 2012년 3월부터 2013년 1월까지의 대미수출을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보니 수출은 엄청 늘었고 무역 흑자는 자그마치 44%가 늘었단다. 증가 폭은 살짝 줄어 2.67%라고 했다. 한미FTA를 보위하기 위한 노력이 참으로 지난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2013년 1월까지일까.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2012년 대미수출은 2012년 2월 자그마치 47%, 3월에는 28%가 증가했다가 4월부터 내리막길을 헤맸다. 그리고 2013년 1월 21%로 급증하고 다시 2월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그렇게 본다면 대미수출 2.67%는 수출이 특히 많았던 2012년 3월 치와 2013년 1월 치를 버무려 만든 '잡탕밥'같은 수치인 셈이다.
발효일인 2012년 3월 15일부터 2013년 3월 15일까지의 자료는 여전히 나와 있지 않다. 단지 내가 입수한 2012년 4월부터 2013년 2월 20일까지 수출액을 바로 전년도와 비교해 본 자료에 따르면, 수출은 전년대비 99.4%, 즉 0.6%가 감소했다. 반면 수입은 89.6%, 자그마치 10.4%가 줄었다. 수출이 거의 그대로고 수입이 확 줄었으니 흑자가 느는 것은 당연하다. 한 40% 정도 된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인 셈이다.
한미FTA 발효 1년 동안 대미수출은 0%대 전후의 증감을 나타내지 않을까 추정한다. 최대 GDP 5.7%, 일자리 34만 개 등을 운운하는 것은 그냥 해본 소리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희대의 대국민 사기극이 분명하다. 정부도 갖고 있는, 동일하지만 가장 최신 버전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동원해 추정해보니 한미FTA 경제효과는 0.0%대로 나온다.
직접투자 중 M&A 자금은 80~90%대... '착한 투자'는 없었다
▲ 지난해 3월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발효 저지'를 위한 집회에서 참석한 시민들이 각자 준비해온 피켓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또 하나 FDI 곧, 외국인직접투자도 사상최대로 늘었다고 한다. 특히나 미국의 그것은 37억 달러로 전년 대비 자그마치 55%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 자료는 지식경제부에서 발표했다. 그래서 이 자료 또한 자세히 뜯어보니 그저 실소만 나온다.
같은 기간 FTA와는 전혀 무관한 일본의 FDI가 45억 달러로 98% 증가했고, 마찬가지 중국·홍콩 등 중화권의 그것은 40억 달러로 자그마치 107%나 증가했다. FTA를 체결하지 않아도 FDI가 미국의 그것보다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더구나 가관인 것은 그 돈이 어디로 갔느냐는 것이다.
지경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FDI가운데 M&A 자금이 245% 증가했고, 공장이나 사업장에서 내는 그린필드 자금은 46.5% 증가했을 뿐이란다. 쉽게 말해 투자된 금액의 대부분은 M&A 자금이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정부가 말한 37억 달러 직접 투자는 어디까지나 신고액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실제 통장에 꽂힌 돈 곧을 도착 기준으로 보니 1/3인 12억 달러다. 간단히 정리하면 말이다.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돈의 90%가량은 주식 자금이다. 대부분 투기성이 강한 단기자본이다. 나머지 돈은 직접투자 FDI라 할 수 있는데 그나마 이 돈의 80~90%는 M&A 자금이다. 한국 경제의 선순환, 곧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는 그런 '착한' 투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과연 이런 투자에 희희낙락하는 저들은 누구인가.
농민들 살았다? 참 고마운 '기후변화' 납셨다
'우리 농민 다 죽는다더니…'라고 어느 언론에서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 뒷말은 '아무도 안 죽었잖아' 정도가 될 게다. 또 그 뒷말은 안 봐도 빤하다. 그렇다. '천만다행이다, 아직 우리 농민 무사하다, 왜? 기후변화로 미국 내 곡물 생산이 줄어들어 수출 물량도 줄었다, 그래서 곡물수입이 줄었다.'
구제역 파동 이후 돼지고기는 공급 과잉이 됐고, 가격도 하락했다. 굳이 수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했다. 또 광우병이 발생했다. 게다가 불황으로 소비시장도 얼어붙었다. 바로 이런 이유들로 농·축산품 수입이 급감했다. 아울러 1년 차다 보니 관세 인하도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농촌도 살았고, 농·축산물 수입이 줄어 흑자도 늘어났다. 참으로 고마운 '기후 변화' 아닌가.
세계시장에 보호무역주의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산다는 우리로서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조사에 의하면 2012년 한국산제품에 대한 보호무역조치가 467건이라고 한다. 반면 외국산 제품에 대한 한국의 보호무역조치는 32건이다. FTA가 세계적 대세라고 노래를 부른 지가 엊그제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리고 아직도 이 흘러가는 옛노래가 18번인 사람이 부지기수다. 얼마 전 사라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한편으로 FTA가 확산되는 만큼, 다른 한편으로 보호주의 또한 강화되고 있다. 학자들 사이 오래된 격언이 있다. '자유무역은 강자의 보호무역주의'라는 말이 바로 그것. 이 말처럼 지금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호주의가 바로 '양적 완화'다.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충분히 악용해 달러를 마구 찍고, 그래서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산 제품 가격이 떨어진다. 혹시 인플레가 발생하더라도 서민들이나 다른 나라에 전가시키면 그만이다. 그렇게 확보된 가격경쟁력이야말로 오바마발 수출 드라이브 전략의 동력이다.
굳이 과거처럼 관세·비관세 장벽을 높이 쌓을 일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도 병행 구사된다.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 판정이 그렇다. 삼성·LG 등 한국의 기업에 대한 조사도 같은 맥락이다. 위장된 보호주의로 지적 재산권 강화·국제카르텔 규제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민주적 통상 거버넌스 생각할 때
ⓒ 오마이뉴스
한국은 대표적인 서비스무역 적자 국가다. 흑자를 운운해도 그것은 상품 무역에 한정된 이야기다. 상품무역 흑자에 버금갈 만큼 서비스 무역 부문에서의 적자가 쌓인다. 그리고 이 적자는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그런데 서비스 무역 적자의 가장 많은 부분이 유학·연수비용·지적재산권 등 사용료 그리고 법률·회계 등 사업 서비스 분야다. 자동차의 한 해 수출액 못지않은 지적재산권, 즉 로열티 지불액이야말로 미국 경제가 전세계적으로 거둬들이는 약탈적 잉여의 산 표본이다.
한미FTA를 체결해야 되는 이유를 두고 혹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기업이 미국을 상대로 겪는 가장 큰 고충이 바로 각종 비관세장벽, 곧 보이지 않는 보호주의'라고 말이다. 그래서 FTA를 체결했다. 그런데 어떤가. 우리가 미국이 되면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지 말아야 할 일 아닌가.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산 제품, 특정 산업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자국 이기주의는 앞으로 더욱더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서 미국은 돈이 될 만한 구석이 보이면 여지 없이 그 구석을 파고들 것이다. 실제 금액은 얼마 되지 않는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요구 그리고 최근에 불거진 지식경제부의 IT·네트워크 장비 시장에 대한 지침에 대한 개정 요구가 그 예다. 정부 조달 시장을 더 열어달라는 요구가 바로 이것이다.
요컨대, 한미FTA는 미국의 보호주의에 무용지물이다. 미국의 약탈적·공격적 그리고 위장된 보호주의에 대해서는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미국의 보호주의에 복무하는 칼날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미FTA 1년, 아직 많은 것이 열려있다. 새로운 민주적 통상 거버넌스를 위한 통상정책이 준비돼야 한다. 오바마의 측근들이 오바마 시대를 열면서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왜 통상협정 때문에 누군가는 언제나 손해를 봐야 하는가.'
[ 이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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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미국과 FTA 미체결국 수출 성적, 한국보다 좋다"
한미FTA 1년, 정부 통계 왜곡 논란 지속
정부가 발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자료의 통계 왜곡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은 미국 정부 자료를 근거로 지난해 한국의 대미 수출 성적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저조했다고 지적했다.
15일 심 의원실이 미국 무역위원회(ITC) 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미국의 10대 무역국의 대미 수출은 전년 대비 4.85%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대미 수출 증가율은 3.3%에 그쳤다.
한미FTA 덕분에 대미 통상 성적이 좋았다는 정부 주장과 달리, 오히려 10개국 평균에 비해 1.55%포인트 저조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특히 이들 10대 무역국 중 캐나다, 멕시코, 한국 등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를 제외한 일본, 독일, 영국, 중국, 브라질, 프랑스, 대만의 대미 수출 증가율은 5.37%에 달했다. 오히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의 대미 수출 증가율이 FTA를 체결하지 않은 나라보다 낮았다는 얘기다. 이 중에서도 한국의 대미 수출 증가율은 FTA 비체결국보다 2.07%포인트나 낮았다.
미국 시장 점유율 통계에서도 한미FTA의 허상이 드러났다고 심 의원실은 지적했다. 10대 무역국 중 2011년 대비 지난해 중국의 점유율 상승치는 0.65%였고 일본은 0.57%에 달했다. 멕시코와 독일도 각각 0.27%, 0.25% 증가했다.
그러나 한국의 점유율은 고작 0.01% 늘어나는 데 그쳐, 10개국 중 8위에 불과했다. 정부가 한미FTA 체결 이유로 내건 '미국 시장 선점 효과'는커녕, 미국 시장 점유율 상실만 나타난 셈이다.
오히려 한미FTA 체결 전 대미 수출 성적표가 더 좋았다고 심 의원실은 지적했다. 심 의원실이 관세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6년부터 2011년 사이 대미 수출 평균 증가율은 6.35%였으며, 특히 발효 1년 전인 2011년 증가율은 12.8%에 달했다. 그러나 한미FTA가 발효한 2012년에는 4.12%에 그쳤다. 2011년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심 의원은 "주식 시장에서 한미FTA 기대주의 주가가 떨어진 게 오히려 한미FTA의 실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며 정부가 "미국 시장의 여건 변화나 다른 국가의 수출 증가를 고려하지 않고, 한국 대미 무역의 절대적 변화만을 조합해 국민을 기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미FTA 체결로 인해 오히려 "국가적 과제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지연되는 정책 위축 효과가 발생하고 있고, 투자자국가제소제(ISD)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정부는 철지난 시장주의 이념과 거짓 홍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한미FT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정부는 14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한미FTA 1년을 홍보하는 자료를 냈다. 정부는 발효 후 대미 수출이 1.4% 증가했고, 수입은 9.1% 줄어들어 무역수지가 전년 동기 대비 39.1% 급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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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1년 만에 곳곳서 공공정책 무력화"
[한미FTA 1년 ④] 송기호 국제 통상전문 변호사 인터뷰
3월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꼭 1년이 된다. 1년 전 정부는 거대시장 미국으로의 경제고속도로가 연결됐다고 자축했다. 자동차부품과 섬유의류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늘어 국내 기업들이 큰 이익을 볼 것이라고 했다. 반면 국내 농축산업 등의 피해도 우려됐다. 지난 1년 한미FTA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오마이뉴스>는 중소 수출기업과 감귤농장 등의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등과 함께 향후 대안을 고민해본다. [편집자말] |
▲ 송기호 변호사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법률사무소인 수륜법률사무소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한미FTA 뿐 아니라 한중일FTA·아세안플러스·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각종 통상 협정이 난무하고 있다며 국회나 시민사회가 현재의 외교통상전략이 올바른지 심각하게 논의하고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
ⓒ 유성호 |
"1년이라는 시간이 짧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한미FTA(자유무역협정)라는 괴물이 어떻게 우리의 민주주의와 정책들을 좌절시켰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하죠. 물론 정부는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항상 느끼지만 그는 말을 조근조근하게 한다. 송기호(50) 변호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미FTA가 발효된 지 1년을 맞아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국내서 통상법을 전공한 몇 안되는 통상전문 변호사다. 한-EU, 한미FTA 체결과 발효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거셀 때마다 그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1년 전 그는 기자에게 "이제 한미FTA라는 괴물이 동굴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젠 책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거리를 휘젓고 다니고, 사람들은 실체를 알게될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그 '괴물'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 송 변호사께서 말씀하신 '괴물'이 활보한 지 1년이 됐다.
"(미소를 띄우며) 벌써 그렇게 됐다. "
- 어떻게 보셨는가.
"그동안 꾸준히 FTA 문제점을 제기했던 사람으로서, 과연 그런 문제들이 실제로 얼마나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 해왔다."
- 국민들 사이에선 아직 괴물의 실체가 피부로 크게 느껴지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1년이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한미FTA의 본질이 단지 미국과의 수출입 양을 늘리는 숫자의 문제뿐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제도와 문화까지도 바꿀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좀더 유심히 봐야 한다."
"한미FTA라는 괴물의 실체, 정부는 보이지 않게 하려 한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정부의 수출입 통계자료도 내보였다. 이어 "적어도 통계만 보면 한미FTA를 통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관세청이 내놓은 지난 2월 20일까지의 잠정치 통계를 보면 미국과 FTA를 맺기 전인 2011년보다 수출입이 늘지 않았어요. 정부도 1년 치 최종 통계치를 내놓겠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적어도 FTA를 통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든가,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요."
실제 기획재정부가 14일 내놓은 '한미FTA 발효 1년간 주요성과' 자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3월 15일부터 지난 2월 28일까지 한미 두 나라 사이의 교역액은 969억 달러였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2% 감소한 수치다. 대신 수출액은 570억 달러로 1년 전보다 1.4% 증가했다. 수입액이 399억 달러로 전년보다 9.1%나 줄어 전체 교역 규모가 줄어들었다.
송 변호사의 관세청 자료에는 대미 수출액이 510억8401만 달러(전년대비 -0.6%)였다. 기간도 작년 4월부터 2월 20일 치까지였다. 정부 최종 통계에는 23일 동안의 대미 수출액이 추가로 포함된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한미FTA로 인해 대미 수출이 늘고 무역흑자도 커졌다"고 평가했다.
- 정부는 꾸준히 한미FTA를 통해 수출이 늘고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해왔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미국과 FTA를 맺지 않은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보다 대미 수출이 훨씬 늘었다. 요즘 수출기업들 상당수는 FTA보다는 환율에 더 민감하다. 미국과의 FTA 본질은 단지 수출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미국산 제품 값이 떨어지면서 이익을 보는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
"물론 일부 품목들은 관세가 없어지니까 값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피부에 느낄 정도로 그렇게 떨어졌을까. 오히려 중간에 수입유통업자들 이익만 늘었다. 국가 입장에선 관세라는 세금 수입만 줄어들었다."
"바뀐 법률 등 66개... 시민 삶을 지탱해주는 정책들, 미국 이익에 맞춰 바뀐다"
- 좀전에 한미FTA의 본질을 말씀하셨는데.
"(곧장) 잘 알지 않은가. 그동안 한미FTA를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갈등이 무엇 때문인가. 우리가 미국이라는 경제영토를 넗히는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일부 수출대기업의 이익이 늘지는 몰라도 대신 우리나라 사회제도·법·문화가 미국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는 기자에게 한미FTA로 바뀌는 법률 목록을 보여줬다. 관세법을 비롯해 지방세법·대외무역법·상표법·약사법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23개 법률이 바뀌었다. 여기에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까지 모두 합하면 바뀌는 제도만 63개에 달한다. 송 변호사는 "민변에서 꼽아본 것이 이 정도지만 누락된 것들도 있다"며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은 법률 등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법률을 고친다는 것은 말그대로 제도를 바꾼다는 것인데.
"아마 앞으로 엄청난 변화들이 있을 것이다. 지난번 미국과 재협상으로 시행을 미뤘던 의약품의 특허와 시판 허가를 연계하는 것은 2년 후에 시행된다. 법을 또 바꿔야하는데, 아마 국민 건강권 문제 등도 본격적으로 불거질 것이다."
그는 "이미 1년만에 미국쪽에서 우리의 환경 등 각종 사회정책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의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들어보자.
"환경부가 원래 올해 7월부터 저탄소차 보조금 제도를 하려고 했어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소형차를 사는 사람에게 적게는 50만 원부터 300만 원까지 돈을 주는 거예요. 대신 중대형차에는 부담금을 물리는 것인데, 이것을 미국쪽에서 한미FTA 위반이라고 압력을 넣었어요. 결국 정부는 이와 관련된 법안을 수정해서 시행을 2015년 이후로 연기해 버렸어요."
- 지난해에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반발을 했었다.
"문제는 2015년에 정부가 이 제도를 시행할수 있느냐다. 한국수입차협회에서 환경부 장관에게 의견서를 보내서 아예 저탄소차 지원금제도 자체를 도입하지 말 것으로 제안하기도했다."
"저탄소차 지원금 제도 연기 등 사회·환경정책들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포기"
▲ 송기호 변호사는 "한미FTA를 통해 일부 수출대기업의 이익이 늘지는 몰라도 대신 우리나라 사회제도·법·문화가 미국식으로 바뀌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 |
ⓒ 유성호 |
인터뷰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처럼 보였다. 다시 그의 이야기다.
"우체국 보험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2011년 11월에 정부는 우체국 보험의 가입한도를 4000만 원에서 6000만 원으로 올린다고 입법 예고를 했어요. 근데 암참(주한미상공회의소)에서 한미FTA의 약속을 거스리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대하면서 결국 좌절됐어요. 대표적인 서민금융인 우체국 보험의 가입 한도까지도 미국 눈치를 봐야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다.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올 2월에 외식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지만, 미국 기업이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규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송 변호사는 "우리 국민의 삶을 위한 중요한 환경 사회정책들이 한미FTA라는 덫으로 인해 줄줄이 걸려 넘어지고 있다"고 했다.
- 미국 쪽은 우리와의 FTA로 어떤 변화는 없나.
"우리는 FTA를 통해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당했던 무역보복조치 등을 바꿔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지난 1년 동안 미국은 우리 삼성과 엘지 등 제품에 대해 반덤핑 상계 관세를 부과했다. 오히려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더 강해졌다. 미국 시스템은 적어도 지난 1년 동안 전혀 변한 게 없다."
- 과거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등 통상당국자들은 미국과의 무역 마찰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긴 했는데.
"(고개를 절레 흔들며) 현실은 정반대다. 한미FTA로 인해 미국의 개입 여지가 더 커졌다. 통상압력 뿐 아니라 투자자 국가 소송제(ISD) 등을 통해 훨씬더 자기들의 이익을 내세우고 있다."
- 황교안 신임 법무부장관은 ISD가 한국 사법주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한미FTA 체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미FTA 협정문과 국내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헌법상 한미FTA가 법이 된다. 문제는 한미FTA로 인한 정부의 공공정책 결정권이나 사법권 등 정당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미 대통령도 이같은 문제를 인식해서 미국과 재협상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와의 이야기는 어느덧 2시간째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어투는 여전히 큰 변화가 없다. 가끔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표정은 진지했다. 정부를 향한 비판은 여전히 매서웠다. 그는 "FTA 찬성론자들은 지금 무엇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한미FTA 발효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무엇을 어떻게 얻을 것인지 전략과 전술이 나오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기자가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라고 물었다.
"지금보면 한중FTA 뿐 아니라 한중일FTA·아세안플러스·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각종 통상 협정이 난무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하나같이 국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것들인데도 제대로 논의나 소통조차 되지도 않아요. 국회나 시민사회가 현재의 외교통상전략이 올바른지 심각하게 논의하고 재검토해야죠. 정말 앞으로 새 정부 5년이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수도 있으니까..."
[ 김종철,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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