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불법선거 관련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 가만히 두면 더 커진다.

道雨 2013. 11. 1. 19:30

 

 

 

              가만히 두면 더 커진다 
[표지이야기] 디지털 시대 관권선거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 발견, 수사팀장은 수사 방해·외압 폭로…‘누가 대선 개입을 지시했느냐’에서 ‘누가 이를 덮으려 하느냐’는 의문으로 확대되는데 대통령은 침묵

 

 

국정원과 국방부,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의 ‘삼각 공조’ 정황도 드러났다. 국정원이 박근혜 캠프 SNS 미디어본부장이 운영하던 불법 SNS 조직 ‘십알단’과 같은 글을 퍼나르는 등 함께 불법 선거운동을 벌인 사실도 밝혀졌다.

1950~60년대에는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라는 말이 흔했다. ‘밀가루 선거’라고도 했다. 선거 행정을 맡은 ‘관’이 투표용지 바꿔치기에 나설 때다.

1970년대에는 ‘반상회 선거’라는 말도 등장한다. 돈을 뿌려 표를 사는 데 공무원들이 동원됐다. 관권선거와 금권선거는 한 몸통이었다.

‘야당 지지하면 빨갱이’라는 윽박지르기와 지역감정 부추기기도 빠지지 않았다. 군인들은 병영 내에서 줄지어 ‘기호 1번’을 찍어야 하는 시절이었다.

 

오랜 군부독재의 암흑 끝에 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이런 행태는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992년 ‘초원복집’ 사건은 대표적 관권선거다.

2002년 대선 ‘차떼기 사건’ 이후 거액의 돈다발이 뿌려지는 일이 사라지고, 관권선거 시비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선거제도를 투명하게 정착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관권선거는 2012년 대선에서 한층 진화한 형태로 다시 나타났다.

국가정보원·국방부 등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디지털 시대의 관권선거라 할 만하다. ‘종북 척결’을 명분 삼은 부정선거다.

 

 

막걸리…고무신… 댓글·트위터 선거


‘결정적 증거’가 발견됐다. 수사팀장은 수사 방해와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누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을 지시했느냐는 애초 의문은 누가 이를 덮으려 하느냐는 또 다른 의문으로 확대되고 있다.

민주당이 10월20일 공개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소장 변경 신청서에 나타난 ‘국정원 트위터’는 분량도 내용도 충격적이다. 국정원 요원들이 단 인터넷 게시글·댓글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란 예상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1일부터 12월18일까지 트위터로 퍼뜨린 글이 5만5689건에 달한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국정원 심리전단 4개 팀 가운데 기획팀, 인터넷커뮤니티팀(6월14일 기소), SNS팀(10월18일 공소장 변경 신청) 외에 포털팀에 대해서도 추가 공소장 변경을 준비하고 있다.

국정원과 국방부,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의 ‘삼각 공조’ 정황도 드러났다. 대선 개입 의혹을 받는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요원의 수는 애초 4명에서 15명으로 늘어났다.

국정원이 박근혜 캠프 SNS 미디어본부장이 운영하던 불법 SNS 조직 ‘십알단’과 같은 글을 퍼나르는 등 함께 불법 선거운동을 벌인 사실도 밝혀졌다.

 

윤석열 전 수사팀장이 10월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말도 충격적이다. 그는 “국정원 사건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으며, 황교안 법무장관도 (외압에서) 무관치 않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야당을 도와줄 일이 있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윤 전 팀장은 “수사팀 검사들은 트위터 글을 보고 상당히 분노했다.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검사의 본모습이면 이런 보고를 받았을 때 수사를 해보자고 해야 하는데 조 지검장은 보고도 안 받은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하고…. 수사를 책임진 분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건 공소장 변경 신청을 철회하기 위한 단계 아닌가 싶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2233건… 극히 일부만 아는 구체적 수치

 

 

외압 주체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외부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0월20일 기자간담회에서 “5만5689건 가운데 2233건만 국정원 직원과 연결됐다는 증거가 제시됐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여야에 제출한 공소장 변경 신청서에는 없는 내용이다. 수사팀과 수뇌부 등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구체적 수치가 새누리당에 흘러 들어간 것이다.

 

국정원은 노골적으로 수사를 방해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윤 전 팀장은 “체포한 국정원 직원 조사에 입회한 변호사들이 ‘진술하지 말라. 진술하면 (국정원에 의해) 고발될 수 있다’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지시를 반복 주입했다”고 말했다.

 

기소를 관철시킨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국정원이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정보를 활용한 스캔들에 연루되자 황교안 장관은 그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당시 황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모든 일을 잘하고 계신다”는 ‘칭찬’을 받았다.

결정적인 증거가 공개되면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 어려워지자, 여권은 “개인적 일탈”로 규정하고 “전체 트위터 글의 0.02%에 불과하다”며 사실과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수사 방해와 외압 의혹이 윤 전 팀장에 의해 폭로된 뒤에는 이를 ‘항명’ ‘하극상’으로 물타기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권의 ‘무죄 전략’이 실패할 지경에 처하자 수사 방해를 통해 ‘개인 일탈’로 축소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검찰이 국정원 댓글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한들 어느 누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 의문”(최경환 원내대표)이라거나 “검찰 수사팀은 개인적 차원의 일탈 행위까지도 모두 국정원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 활동이라고 침소봉대하는 논리적 비약에 빠져 있는 거 아닌지 스스로 뒤돌아봐야 한다”(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등 수사 결과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에서는 심지어 “검찰은 종북보다 못한 조직”(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선거 범죄에 대해 새누리당은 별것 아니었다는 태도로 임하고 있다(왼쪽). 검찰 특별수사팀에서 배제된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10월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수사 방해와 외압을 폭로했다.한겨레 김경호, 김태형

황 장관과 검찰 수뇌부는 여권의 이런 기류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수사 방해자로 지목된 황 장관은 애초 수사팀이 원 전 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는 데 반대했다.

기소를 관철시킨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국정원이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정보를 활용한 스캔들에 연루되자 그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당시 황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모든 일을 잘하고 계신다”는 ‘칭찬’을 받았다.

 

검찰 수뇌부는 윤 전 팀장을 배제한 데 이어 남은 수사팀원들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법원이 10월30일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더라도 수사팀이 사실상 와해된 상태에서 공소 유지와 추가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기소 반대 - (기소) - 채동욱 찍어내기 - (새로운 증거 확보) - 윤석열 찍어내기 - 수사 방해와 외압 폭로 - 수사팀 감찰’ 흐름으로 진행되면서, 검찰의 국정원 사건 수사가 중대 고비를 맞은 셈이다.

 

10월23일 4명으로 압축된 검찰총장 후보자 가운데 임명될 새 총장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수사와 재판의 향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민주당은 윤 전 팀장을 특임검사로 임명해 특별수사팀에 수사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는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위해 특검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외압-감찰 폭로, 예상하지 못한 흐름

 

 

성역 없는 수사의 ‘종착지’에는 애초 국가기관 대선 개입 활동이 누구로부터 시작됐느냐는 것이 포함된다. 여권에서는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름이 거론됐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10월23일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 댓글을 그 당시 새누리당 지도부가 시켰느냐, 박근혜 후보가 시켰느냐. 문제가 있다면 과거에 관리·통제했던 사람이 해야 한다. 사과를 해야 한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인 국정원, 상명하복의 통제 체제인 군의 조직 특성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승인 없이 대선 관련 활동을 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친이계인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홍준표 지사의 발언은) 대통령 취임 전에 벌어진 사안에 대해 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 같다. (이 전 대통령이) 사과를 하거나 포괄적으로 유감을 표명해야 할 일인지는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야 판단할 수 있을 것”(10월24일 JTBC 인터뷰)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알고 있었는지, 직접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박근혜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지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10월24일 성명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는 불법이나 부정에 의해 선거를 치르려는 생각은 목숨을 내놓더라도 안 하시는 후보였다”며 “우리는 당당하게 싸웠고,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전 정권의 일로 머물지 않게 됐다. 박 대통령이 자초한 면이 크다. 수사 방해와 외압 의혹이 불거지면서 현 정권의 일이 됐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10월22일 국무회의에서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이나 검찰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정치권을 비판했다.

 

경쟁 상대였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10월23일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대선은 불공정했다. 미리 알았든 몰랐든 박 대통령은 그 수혜자다. 본인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회피하려 해선 안 된다”는 성명을 냈지만, 이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선거에 국정원이 개입한 것 자체가 불법으로, 이를 엄정하게 수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면 되는데, 이걸 무마하고 은폐하려는 인상을 준다. 박 대통령은 침묵하고, 명료하게 처리하지 못하니까 현 정부의 문제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판’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판

 

 

박 대통령의 침묵은 ‘진행 중인 사건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이보다는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인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10월22일 KBS 인터뷰에서 지난 9월 여야 대표 3자회담 때 박 대통령이 “그렇다면 제가 댓글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건가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입’인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드러난 정국 인식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10월24일치 <경향신문>은 이 수석이 보도하지 않는 걸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박근혜 지지자들만 트위터 쓰고 댓글을 쓰나. 공직자 가운데 그 사람들 외에는 트위터, 댓글 한 사람이 없나. 부정선거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국가기관에도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들 많은 것이다.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개입돼 있는지는 우리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용도 모르고 요청한 적도 없다.”

 

조직적인 대선 개입이라는 점이 밝혀지고, 수사 방해와 외압 문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은 안중에 없다. 박 대통령이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하지 않고 이런 인식과 태도를 고수한다면 현 정국을 풀 해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11월2일부터 9일까지 유럽 순방을 떠난다.

 

새누리당은 국정원과 국방부를 맹목적으로 감싸면서 왜곡된 논리를 내세워 본질을 호도하기 바쁘다.

‘극히 적은 댓글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니 문제될 것 없다’는 주장은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자체가 그 영향력에 상관없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중대 범죄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대선불복론’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민주당은 “선거를 다시 하자는 게 아니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은 명백한 헌법 불복이고, 이를 비호·은폐하려는 것 역시 헌법 불복”이라며 맞서고 있다.

당선무효 소송은 선거일로부터 30일 안에 제기해야 하기 때문에, 부정선거를 이유로 한 당선무효를 법적으로 따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답해야 할 이는 침묵하고, 그를 모시는 이들은 궤변으로 팩트를 덮으려 하면서 민심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 정권의 정당성·정통성으로까지 문제제기가 확산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이번 사건은 시민의 역사를 부정하고 민주주의 역사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행위로, 선거 자체의 정당성을 비롯해 대선으로 만들어진 현 정권의 정당성과 정통성까지 의심받을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메르켈이 왜 나치 행태를 사죄하나”

 

 

민주당은 대통령 사과,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해당 국가기관에 대한 제도 개혁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한길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왜 제주도에 가서 4·3 사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사과했겠나. 메르켈 독일 총리가 왜 나치 행태에 대해 지금까지도 사죄하고 있는가.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나라의 잘못된 점들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사과할 수 있고,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자리는 원래 그런 것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