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드러난 정황 증거들과 검찰이 이미 혐의를 인정한 부분만 놓고 봐도,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하고 공개한 것은, 누가 봐도 대화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국가기밀을 누설시킨 행위가 분명하다. ‘유병언 사건’ ‘월드컵’ 이때 노려 수사결과 발표 팩트는 상식이고, 상식적 판단을 부정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다. 픽션의 세계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이 자유롭게 다뤄질 수 있지만, 법을 해석하고 수사하는 일은 그게 아니다. 최고의 사정기관인 검찰이 팩트를 왜곡시켰다면 그건 수사가 아니다. 소설을 쓴 거나 마찬가지다. 검찰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사건과 관련해 1년 8개월 만에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전원 무혐의로 결론을 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건 작년 가을. ‘무혐의’를 주제로 한 소설을 발표할 경우 야당의 반발과 국민여론이 악화될까 우려돼 시기를 저울질하다가, 세월호 사건이 ‘유병언 사건’이 되고, ‘기다려라 사건’이 ‘구원파 사건’으로 치환된 직후, 그것도 월드컵을 코앞에 둔 시점에 맞춰 후다닥 발표한 것이다. 야당이 고발한 10명 중 9명 무혐의 처분.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만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고, 김무성, 권영세, 서상기, 조명철, 조원진, 윤재옥 의원과 남재준 국정원장과 한기범 국정원 1차장, 국정원 대변인 등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벌금 500만원’으로 ‘국정원-NLL’ 모두 덮겠다? 수사 축소 지시 의혹과 허위수사결과 발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서울청장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을 감안한다면, 온 나라를 후끈 달궜던 국정원 댓글과 대화록 유출사건은 ‘1명 벌금 500만원 약식기소’로 끝이 난 셈이다. 황당할 뿐이다.
<검찰로부터 '무혐의'로 꿰맞춰 만든 '면죄부 목걸이' 선사 받은 여당 의원들> 반면 새누리당이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는 여당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거반의 야당인사 혐의를 인정했다. 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댓글 사건’의 시발이 됐던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 사건’의 경우, 강기정 의원 등 민주당 의원 8명 중 5명에 대해 ‘감금 혐의’가 인정된다며, 벌금 200~500만원으로 약식기소했다. 적반하장 격이다. 또 백종천 노무현 정부 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안보비서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면서도, 김무성, 권영세, 서상기, 남재준 등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다. 수사를 한 게 아니라 권력의 입맛에 맞는 ‘소설’ 한권을 쓴 셈이다. 최악의 편들기 수사다. 수사 아니라 ‘맞춤형 소설’ 쓴 검찰 수사를 한 게 아니라 ‘맞춤형 소설’을 쓴 것에 불과하다는 정황은 수두룩하다. 검찰의 주장을 대락 살펴봐도 사실관계를 억지로 꿰맞추기 위해 스스로 논리를 깨고 모순을 범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 정문헌 약식기소? 형법 적용 안 하고 봐 주려는 고심의 산물 청와대 재직 당시 취득한 ‘NNL 대화록’이라는 ‘직무상 비밀’을 대선을 겨냥해 여당 의원에게 누설했다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인정돼 형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이보다 형량이 훨씬 가벼운 공공기록물관리법 상 비밀누설 금지 조항. 금고 이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제외) 형을 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므로 ‘벌금형 약식기소’가 가능한 법을 적용한 것이다. 웃기는 일이다. 2007년 최재전 민주당 의원 비서관이 한미FTA와 관련된 대외비 문서를 외부에 유출한 혐의에 대해서는 형법을 적용해 기소했고, 대법원에서 징역 9개월 형이 확정된 바 있다. 남북회담대화록은 2급 비밀이지만 한미FTA 문건은 대외비에 불과하다. 2급 비밀을 빼돌려 ‘박근혜 당선 운동’에 활용한 건 벌금 500만원에 불과한데, 대외비를 유출시킨 혐의에 대해서는 실형 9개월이라니.
▲ 대화록의 두 잣대, 야당에겐 ‘대통령기록물’ 여당에겐 ‘공공기록물’ 백종천, 조명균 등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관들이 삭제한 건 대화록 초본에 불과하다. 하지만 검찰은 녹취 음원까지 첨부된 완성본이 국정원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대통령기록물 삭제 행위’로 보고 기소했다. 완성본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연습 종이를 ‘대통령기록물’로 본 것이다. 그러면서 검찰은 정문헌, 서상기, 권영세, 남재준에 대한 대화록 유출 혐의에 대해서는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 이 보다 형량이 훨씬 낮은 공공기록물에 해당한다는 ‘잣대’를 적용했다. 완성본인 국정원 보관본은 공공기록물인데, 완성본을 만들기 위해 습작한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이란다. 세상에 이럴 수가. ▲ 김무성 변명해주기 바빴던 검찰 대선 직전 ‘박근혜 지원 유세’에서 대화록 원본과 토씨까지 일치하는 쪽지를 읽어 내려갔던 김무성 의원. 검찰에서 “찌라시에서 본 것과 정문헌 의원에게 들은 내용을 종합해 말한 것(지원 연설을 말함)”이라고 주장했다. “찌라시에서 봤다”는 거짓말에 대해 검찰은 김 의원을 대신해 차근차근 변명을 했다. ‘찌라시’를 다른 표현으로 바꾸지 않을 경우, 여당 선대총괄본부장이 고작 증권가 휴지조각을 대선에 활용했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는지, 검찰은 “증권가 찌라시가 아니라 당 내외부 선거관련 동향 문건을 지칭하다가 그런 용어를 선택하게 됐다고 한다”며 김 의원 편을 들었다. 수사를 해야 할 검찰이 피고발인을 변호한 셈이다. 검찰이 논리와 상식을 완전히 무시한 채 여당 실세 편을 들기 위해 안달복달 야단을 떤 것이다. 비상식의 검찰에게 상식적인 질문 하나 던지겠다. 김 의원이 읽은 NLL 관련 내용은 공개된 대화록과 744자나 일치한다. 당 내외부 동향문건이 대화록과 토씨 하나까지 일치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로또 당첨확률 보다 낮을까 높을까. 대답해 보시라. ▲ 합리적 의심조차 하지 않은 수사였다 혐의가 없단다. 수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게 밝혀져 혐의점이 해소됐다는 등 최소한의 설명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김무성 쪽지’의 출처와 누가 이를 대선캠프에 전해 주었는지 핵심적인 의문은 애당초 풀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합리적인 의심조차 규명하려 들지 않았다. ‘증거를 찾지 못했다’ ‘밝혀내지 못했다’ ‘특정하기 어렵다’ ‘그런지 알 수 없다’는 표현만 난무한다. 김무성 의원이 당내 공개석상에서 “대화록 입수해 읽어봤다”고 고백한 것에 대해서도 “원문을 줬다는 부분은 추측해볼 수 있지만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피해갔고, 대화록을 대선에 활용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박근혜 캠프에서) 이용했는지 알 수 없다”고 둘러댔다.
<기소된 야당 의원들과 참여정부 비서진. 사실상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돼 버렸다> 검찰에게 아주 상식적인 질문 하나 더 해야겠다. 토씨까지 일치하는 장문의 쪽지를 읽었다. 읽은 장소는 ‘박근혜 유세 차량’이었고 때는 대선 불과 며칠 전. 불특정 유권자들 향해 마이크를 들고 열변을 토하며 읽어 내려갔다. 이래도 선거에 이용한 것 아니란 말인가? ▲‘무혐의’ 구슬 궤맞춰 만든 면죄부 목걸이 ‘노무현 NLL 포기’가 사실이라고 강변했던 이들의 변명에 대해서도 알뜰살뜰 귀를 기울였다. 국정원이 가져온 대화록 발췌본을 보고 언론에 공개한 서상기 의원의 경우, “서 의원의 발언은 대화록에 대한 평가나 소회이기 때문에 대화록 내용 누설이 아니”며, “언론에 이 내용을 알려준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지 못했다”며 빠져나갔다. 검찰은 또 남재준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성명서 내용은 의견 표명이지 허위사실 아니”라고 주장했다. 수사할 의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여당 실세도 ‘노무현 NLL 포기’는 허위사실이라고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은 NLL 포기라는 말씀 한 번도 쓰지 않았다”며, “NLL을 뛰어넘어 남북경제협력사업이라는 큰 꿈을 가졌던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말한 이가 있다. 바로 박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나라고 부른다는 윤상현 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의 고백이다. ▲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 ‘국정원녀’ 수사 국정원 여직권 오피스텔에서 불법대선개입 행위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범행 현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민주당 의원들이 현장을 보전하기 위해 복도에 진을 쳤다. 여직원이 당황해서 문을 잠그고 대치한 것이지만, 검찰은 새누리당 주장 그대로 받아들여 감금 혐의를 인정했다. “불법 선거행위가 의심되는 현장에 대한 감시활동은 선거법이 보장하는 합법 행위”, “경찰과 선관위가 다 와있던 상황이다. 때문에 감금이 정당화 될 수 없다” 는 민주당의 주장을 묵살하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공감금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다소 무리하게 행동한 부분이 있다 치자. 어쨌든 국정원 불법대선개입이 사실로 밝혀진 이상 민주당과 민주당 후보자는 피해자다. 자신이 당할 피해 사실을 뻔히 보면서도 손발 놓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인가. 정상을 참작했어야 하건만 검찰이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든 꼴이다. 여야 모두의 검찰이 아니라 여당의 검찰임을 만천하에 선포한 셈이다. 국가기밀을 불법으로 입수해 이것을 선거에 활용하고, 들통 나자 아니라고 거짓말했는데도 무혐의란다. 국가기밀을 선거에 활용해도 무방할뿐더러,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 비밀기록을 누설해도 약식기소로 끝난다는 기막힌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국정원 댓글-대화록 수사, 검찰 ‘맞춤 소설’ 썼다
‘월드컵’ 코앞 수사 발표, ‘정문헌 벌금 500만’으로 모두 덮겠다?
육근성 | 2014-06-10 10: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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