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골든타임을 거론하나
분노가 총알처럼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지금이야말로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대통령의 시정연설 한 대목에서 그랬다.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에 맞춤할 표현으로 생각한다 해도, 지금 ‘골든타임’이란 단어를 그렇듯 가볍게 사용해선 안 된다.
세월호 사건에선 결과적으로 골든타임이 참사의 시간이었다.
필사적으로 구조에 임했어야 할 모든 공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손을 놓고 있는 동안 304명이 수장됐다. 그중 250명은 열일곱살의 아이들이었다.
중간 수사 결과 10분 정도면 승객 전원이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0분의 몇십배가 되는 시간 동안 배가 물 위에 떠 있었음에도 단 한명도 구조되지 못했고, 그걸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다.
지금 우리에게 골든타임이란 고통과 회한의 단어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단어다. 그럴듯한 표현이라고 여기저기 써먹을 단어가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 말 한마디 듣자고 하룻밤을 꼬박 새운 유족들에게 눈 한번 맞추지 않은 대통령이 쓸 단어는 더더욱 아니다.
야당을 대표한다는 이가 건넨 ‘개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는 말도 예의없음의 차원에선 도긴개긴이다.
경제살리기 골든타임 따위의 표현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어야지, 개헌 골든타임으로 장단을 맞추는 행태는 어이가 없다.
축구나 야구의 영구결번 관습처럼, 당분간 골든타임이란 단어가 경제나 개헌, 인간관계의 위기를 상징하는 비유어로 쓰이지 않아야 한다.
비유가 강렬하다고 ‘정치적 위안부’나 ‘공천 홀로코스트’ 같은 단어의 조합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비슷하다.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괴로웠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여전히 지옥에 있는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그건 기본 예의에 속한다.
골든타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판단한 4월의 어느 날 한 엄마가 바다를 보며 아이를 타일렀다고 했다.
“아가야, 그만 버티고 가거라. 살아 있어도 구해줄 것 같지가 않아. 그만 가서 쉬어.”
안산 ‘치유공간 이웃’에서 유가족을 만나고 있는 치유자 정혜신의 말에 의하면, 세월호 엄마들이 보이는 공통된 감정 중 하나는 당황스러움이다. 미치도록 보고 싶은 마음도 숨이 멎을 것 같은 통증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질 줄 알았는데 더 또렷해지니까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오늘이 11월4일이 아니라 203번째의 4월16일이다.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러니 세월호 지겹다는 얘기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 하루도 안 지난 일을 지겹다고 하는 걸까’ 의아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현실감각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 때문에 ‘내가 미쳤나. 미쳐가고 있나’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이들에게 경제 골든타임, 개헌 골든타임 따위의 말들은 잔인한 칼질이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은 대통령에 대한 모독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며 감정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그런데 거꾸로 대통령의 어떤 발언이나 행동으로 국민이 극단의 모욕감이나 분노를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모양이다.
세월호의 고통과 구조의 골든타임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경제를 살릴 ‘마지막 골든타임’ 운운하는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 무례하다.
시간이 가면서 더 또렷해지는 기억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엄마들에게 정혜신은 이렇게 말해준다고 한다.
‘6개월이 아니라 60년이 지난다고 아이가 잊혀지나요. 엄마에게. 지금이 정상이에요.’
그러면 희미하게 안도한단다.
손 놓아 버린 세월호 골든타임에서 비롯한 끔찍한 고통을 지금 가족들은 그렇게 견디고 있다.
아무데서나 골든타임 운운하면 안 된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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