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앞둔 손석희 "나는 자격있는가? 늘 묻는다"
▲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이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열린 개강 미사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 |
ⓒ 이희훈 |
▲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이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열린 개강 미사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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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격이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을 던지세요. 그러면 '너는 자격이 있다'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될 겁니다."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이 대학 새내기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12일 오전 서강대학교 개강 축복 미사에서 '새 봄을 맞는 후배님들에게'라는 주제로 특강을 연 그는 "'너는 자격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단히 행복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언론인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는 "온당한 관점과 문제의식을 가지라"고 말했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문제제기를 해야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한국대학신문>이 발표한 대학생 의식조사에서 존경하는 방송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손 사장은 '마르첼리노'라는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이기도 하다. 군대에서 종교 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는 "불경스러울지 모르지만, 성당에 가면 조금 졸 수 있을지 않을까 싶어 천주교를 선택했다"라며, "그런데 오산이었다, 막상 가보니 가슴도 치고, 무릎도 꿇고, 계속 일어나야 했다"고 말해 청중에게 웃음을 줬다.
서강대학교가 주최한 이 자리에는 신입생과 교직원, 일반신도 500여 명이 참석했다. 주례를 집전한 김용해 신부는 이날 강연에 앞서 "학문의 상아탑인 대학은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사회의 새로운 지형과 변화를 수용하며 연구하는 곳"이라며 손 사장을 초대한 취지를 설명했다.
다음은 약 35분 동안 진행된 특강의 주요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두 가지 예화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 두 예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제가 서라벌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입학하자마자 전교생이 모여 아이큐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큐에 따라 우열반으로 나눈 다음, 우반만 열심히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저녁 때는 우반도 성적에 따라 A/B/C반으로 나눴습니다. 한 번은 C반에서 조차 떨어져서 저녁 때 노는 신세가 됐습니다. 대충 학교에서도 포기하는 학생이 된 셈인데, 그 원인이 물상(지금의 물리) 때문이었습니다.
물상 선생님이 저를 유난히 싫어했습니다. 한 번은 '움직이려 하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 한다'는 '관성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 짝꿍이 지금 주미대사인 안호영입니다. 공부를 잘했던 그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설명해주더군요. 그런데 그 장면을 본 선생님에게 잡담을 한다는 이유로 제 인생 통틀어 가장 크게 혼이 났습니다. 그 다음부턴 물상 공부를 안 했습니다.
"'너는 자격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감동 잊지 못해"
C반에서도 떨어진 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물상 교과서를 다 뗐습니다. 억울해서 그랬습니다. 책 한 권을 다 떼고 시험을 보니 A반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물상 선생님이 저에게 '그래, 너는 자격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저에게 준 감동이 굉장히 컸습니다.
다음은 회사를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이야기입니다. 늦은 나이지만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교수가 시험을 앞두고 예상문제 일곱 개를 주며 그 중 다섯 개를 출제하겠다고 했습니다. 한 문제당 한 페이지는 써야 한다면서요.
예상 문제 7개의 답을 미리 쓰고 외웠습니다. 막상 시험에서는 쓰는 속도가 느려 답안을 다 채우지 못하고 3개 반만 썼습니다. 억울했습니다. 교수에게 좀 억울하다고 얘기를 했더니 다음부터는 시간을 더 달라고 하면 더 주겠다고 하더군요. 또 일곱 장을 외웠습니다. 비슷한 과목이 또 있었으니 총 4번의 시험을 보며 한 학기에 28장을 외운 것이죠.
그렇게 기말고사를 보고 났더니 중간고사 때 망쳤던 그 과목 성적이 A였습니다. 해당 과목 교수를 복도에서 만나 "고맙다"고 인사하니 "너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답하더군요. 그 말이 제 머리를 또 한 번 세게 쳤습니다. 그 두 말이 제 머릿속에 굉장히 오래 남아있고, 앞으로도 오래 남아 있을 거 같습니다. '너는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알았습니다.
"환갑 앞둔 요즘, '나는 자격이 있는가?'라고 되묻는다"
▲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이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열린 개강 미사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 |
ⓒ 이희훈 |
내년이면 환갑인 저는 요즘, '너는 자격이 있다'는 말을 의문문으로 바꿔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나는 자격이 있는가?' 이렇게 의문문으로 바꾸면 '자격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반대의 감정이 든다는 걸 느낍니다.
제가 저에게 던지고 있는 이 질문을 여러분도 늘 던져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너는 자격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새 봄을 맞는 후배들께 드리는 오늘의 주제입니다."
"언론인이 되고 싶다면 문제의식을 늘 연마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가 발견되고, 문제를 발견해야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문제를 제기해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저널리스트는 그래야 합니다. '저널'(Journal)은 일기를 뜻합니다. 그냥 하루에 있었던 일을 쓰는 거죠. 거기에 '-ism'이 붙었다는 것은 '관점'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이 관점은 온당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가 '네버 다이 영(Never Die Young)'입니다. 젊어서 죽지 말라는 것이죠. 육체적 죽음보다는 정신적 죽음을 얘기하는 것이겠죠. 고맙습니다."
[ 손지은, 이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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