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반대’가 북한 지령이라는 망발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28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야당을 향해 ‘결국 적화통일 교육을 시키자는 것’이라고 막말을 했다.
이 의원은 “(현행 교과서는) 언젠가는 적화통일이 될 것이고, 북한 체제로 통일이 될 것이고, 그들의 세상이 됐을 적에 바로 남한 내에서 우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미리 그런 교육을 시키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가당치 않은 망발이다.
극우단체 회원도 아닌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이, 교육부 검정을 통과해 수많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적화통일용’이라 규정하고, 국정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불순분자’로 공개 비난하는 게,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아연할 뿐이다.
흡사 1950년 미국 의회에서 ‘정부와 문화예술계 등에 소련 간첩이 수없이 침투해 있다’고 발언해 매카시즘 광풍을 불러일으킨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재림을 보는 듯하다.
미국 현대사의 가장 수치스런 기억 중 하나로 기록된 매카시즘은 그나마 미-소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정치·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이미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는 낙후한 북한 정권을 다시 끄집어내 정치적 반대세력을 공격하는 장치로 활용하려는 냉전적 사고가 21세기 한국에서 이렇게 버젓이 되살아나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적화’(공산주의화)가 두렵다면, 북한과의 관계를 여전히 중시하는 중국의 전승절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은 왜 중국·러시아 정상 및 북한 대표와 나란히 선 것인지 궁금하다.
<노동신문> 등을 통해 남한 내부 문제에 개입해 보려는 북한도 시대착오적이지만, 그런 북한을 빌미로 국정화 반대운동에 빨간 딱지를 붙이는 현 정권도 시대착오적이긴 마찬가지다.
남북한 정권의 행동으로만 보면, 지금은 21세기가 아니라 1970~80년대의 재현이라 보는 게 딱 맞다.
이정현 의원 발언에 맞장구치듯이, 29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서청원 의원 등이 ‘북한이 대남공작기관을 통해 국정화 반대 총궐기를 하라고 지령을 내렸다는데, 사법당국은 조사에 나서라’고 촉구한 것도 할 말을 잃게 한다.
과거 민주화투쟁 불길이 솟아오를 때마다 ‘북한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몰아붙였던 게 군사독재정권의 익숙한 행태였다. 그런 거짓선동 속에서 수많은 간첩단 사건이 조작된 것이 그때의 어두운 역사였다.
서청원 의원 역시 그 당시엔 ‘용공’ 딱지를 무릅쓰고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박 대통령 눈에 들고자 ‘북한 지령을 수사하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인간적 애처로움마저 느낀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건 근거도 없고 효과도 없는 ‘북한 지령’이 아니다. 국민 여론에 반해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려는 대통령이다.
북한 정권의 목적이 ‘남한 분열’에 있다면, 그에 가장 효과적으로 부응하는 세력이야말로 바로 정부여당이다.
[ 2015. 10. 30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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