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한국은 ‘바둑판의 돌’이 되려 하나? 한반도의 냉전, 남중해의 열전에 연동되나

道雨 2016. 2. 24. 14:58

 

 

 

한반도의 냉전, 남중해의 열전에 연동되나

 

 

 

미국과 중국의 대결에서 남중국해가 열전 지대라면, 한반도는 냉전 지대라고 할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는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영유권 주장이 겹치는 등 주권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개입하고 있다. 반면, 한반도에서는 휴전선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영향권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남중국해에서는 최근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향해 군사력을 동원해 시위하고 있지만, 한반도에서는 양국이 서로를 향해 군사력을 직접 겨냥하거나 시위를 벌이지는 않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은 아직 관리 가능한 반면, 남중국해에서는 긴장과 갈등이 분쟁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제어판은 관련국들의 선의에 달려 있는 형편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표면화하는 동아시아에서 현재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분명히 남중국해다. 양국에 더 급박한 곳은 남중국해다.

중국에게 남중국해는 자신들의 사활적인 해로를 보호하면서 미국의 포위망을 뚫는 전략·전술적인 요충이다. 미국으로서도 남중국해의 영유권이 중국으로 굳어진다면, 중국 포위망이 뚫리고 태평양 제해권에도 심각한 타격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이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도서의 12해리 안으로 전함을 파견해 ‘항해자유작전’을 감행하자, 중국은 남중국해 도서에 지대공 미사일과 레이더망 시설을 배치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레이더망은 “남중국해의 작전 지형을 현저히 바꿀 수 있다”고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쪽은 평가한다.

지대공 미사일 배치는 중국 대륙과 가깝고 상대적으로 중국의 영유권이 굳어진 시사군도 도서에 설치된 반면, 레이더망 시설은 관련국들의 영유권 주장이 격심하고 중국 대륙에서도 멀리 떨어진 스프래틀리 군도에 설치되고 있다. 더구나 레이더망은 중국이 영유권을 굳히려고 인공 구조물들을 설치하는 환초에 건설되고 있다.

 

동아시아 방위에서 미국의 전략은 동맹국들의 군사력을 동원하고 일체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일본과 한국의 군사력을 동아시아 전체 방위에서 미 군사력과 일체화시키려고 한다.

미국이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을 다투는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 문제에서 일본의 손을 들어주고 개입하는 것은 단순히 동맹관계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다. 일본의 군사력 영향권을 더욱 남쪽으로 연장해 남중국해에도 개입시킬 실마리를 만들려는 의도도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로 극히 민감해져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중국이 그렇게 직설적으로 한국을 향해 험한 얘기를 퍼붓는 것은 단순히 한반도에서만의 전력 균형 때문만은 아니다. 사드 배치로 한·미·일의 군사력이 동아시아 전체에서 일체화되어 남중국해로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반도 등 동북아는 남중국해에 비해 미국이 우위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미국은 이곳에서의 우위를 동아시아 전체로 확산하려고 한다. 한반도는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열전의 배후지가 되고 있다.

동아시아재단에서 23일 발행한 윌리엄 오버홀트 하버드대 선임연구원의 ‘한국은 미·중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보고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의 딜레마는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이라고 지적한다.

즉,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기대는 것이 아시아 국가들의 일반적인 현상이며, 한국은 경제력과 정치체제가 안정되어 있어 다른 국가들보다도 생존력이 좋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언제까지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는 자신에게 기대면서 안보에서는 미국을 불러들이는 현실을 용인할 수 있을까? 이런 현상을 시험하는 첫 대상이 한국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중국이 1979년 베트남과 전쟁을 한 이후로 아시아 국가들을 향해 가장 험한 말을 하는 대상은 사드 배치 협의 이후 한국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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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바둑판의 돌’이 되려 하나?

 

 

 

한반도에 또다시 전운이 감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가 유엔의 결의를 위반한 ‘도발’이었다면,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철수와 북한 ‘체제 전환’ 언급은 거의 전쟁 선포에 가까운 것이다.

 

 

그 어떤 ‘불안한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

남북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국지전이라도 발생하면 한민족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이고,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일본 우익은 ‘신이 내린 선물’을 얻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더 강한 경제제재를 하면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북한 주민들이 체제에 반기를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정권 초기의 ‘통일대박론’이나 이번의 개성공단 철수 결정도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보수우익이 견지한 북한 붕괴론 위에 서 있다.

 

 

그들은 이북 사람들 모두 남한 자본주의를 선망할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민족문제에 대한 인식과 6·25 전쟁의 집단 기억이 북한 체제 유지의 역사적 기반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제재를 더 강화해도 이북 사람들은 남한과 미국을 더 적대시하게 될 것이다.

설사 김정은 체제가 붕괴하더라도, 휴전선 이북 지역이 남한 영토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 내의 내전적 갈등은 한 세대, 아니 한 세기 동안 갈 수도 있다.

 

중국의 압박이 북한에 가장 큰 변수인 것은 맞지만, 북·중 관계는 미군이 한국에 70년 동안 주둔하는 한·미 관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반도와 긴 국경을 접한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막아야 할 강력한 이유가 있다. 중국은 북한을 버릴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마음대로 하지도 못한다.

 

 

남한과 달리 북한은 휴전협정의 주체다. 그러므로 북한의 안보와 체제유지는 ‘국제사회’가 아닌 전적으로 미국에 달렸다.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모든 행동은 미국의 응답을 구하는 ‘구애’이지 한국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도 공허한 것이었지만, 북한과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다가,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과 로켓 위성 발사에 ‘분노’하여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거론하는 것은 더더욱 ‘수준 낮은’ 행동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위성 로켓을 발사하자마자, 미국이 말하기 전에 중국에 비수가 되는 사드 배치 문제를 꺼냈고, 급기야는 중국에 ‘바둑판의 돌’에 불과하다는 굴욕적인 말까지 듣게 되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북·미는 남한 몰래 비밀회담도 했다지 않는가?

미·중도 곧 협상할 모양이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한국에 군대를 유지하는 이유가 동북아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특히 “한국이 미국산 무기의 주요 고객”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6·25 당시 그러했듯이 미국은 북한 붕괴 혹은 한반도 통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중국을 굴복시켜 미국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지가 그들의 사활적 이해다.

 

미-중 사이에 국지적 충돌이 일어나도 전장은 한반도일 것이고, 최대 희생자는 남북한 인민일 것이다. 구한말, 휴전협정기처럼 한국은 또다시 주변국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세계에서 무기 구입에 가장 많은 돈을 쓰고도 말이다.

정권에 이익이 된다면 ‘강대국의 호구’라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언제나 통일을 생각하되 통일을 말하지 않는다.”

과거 독일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 설계자 에곤 바르의 철학이었다. 나치의 죄악을 저지른 대가로 미·소에 의해 분단이라는 ‘처벌’을 당한 독일은, 미·소의 심기를 건드리면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양쪽을 안심시키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였고, 결국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내전에서 국제전을 거쳐 휴전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미·중 어느 한 강대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통일을 이룰 수 없지만, 독일과 달리 남북 당사자의 신뢰 구축이 모든 일의 출발점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