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측근) 비리

박근혜와 최순실, 40년 전 시작된 인연... 이해할 수 없는 최태민 가족 관련 '여섯 장면'

道雨 2016. 10. 25. 17:39

 

 

 

 

박 대통령은 왜 최태민 가족 곁을 떠나지 못하나

40년 전 시작된 인연... 이해할 수 없는 최태민 가족 관련 '여섯 장면'

 

 

청와대와 여당을 전율하게 만든 사건이 터졌다.

대통령이 '개헌 추진'을 선언했던 그날 밤, JTBC는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은 물론 국정자료까지 사전에 받아봤다는 물증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물증'은 최순실씨가 쓰던 PC 속 파일들이었다.

이 충격적인 뉴스는 전국을 강타했다. 여당도 고개를 숙였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국민께 소명해야 한다"며 "집권여당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몸을 낮췄다. 파장이 엄청나다.

박 대통령에겐 '마지막 카드'일지도 모를 개헌까지 단박에 집어삼킬 기세다. 이번 사건은 박 대통령에게는 회복 불가능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40년 전 시작된 박 대통령과 최씨 가족간 인연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의 관계는 최씨의 아버지 최태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박 대통령과 최씨 가족간 인연이 시작된 건 40년 전부터다. 그 세월 동안 둘의 관계에는 불미스러운 일도 적지 않았다. 끈끈한 혈연관계라고 해도 파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심각한 문제도 있었다. 그런데도 관계는 지금까지 단단히 이어져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최태민을 만난 사연은 이렇다. 박 대통령 모친(육영수)이 사망한 직후 최태민은 박 대통령에게 수차례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육 여사가 세 차례 자신에게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고 현몽했다'고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박 대통령은 최태민이 설립한 정체불명의 구국여성봉사단의 명예총재가 된다. 이게 최씨 가족과의 '40년 인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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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민 관련 언론보도 동아마당 1990년 11월 23일자
ⓒ 동아일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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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아버지에게 읍소해서 살린 남자 최태민

청와대 공보비서관이었던 선우련의 비망록(1977년 9월 20일)에는 박정희가 김재규 중정부장을 불러 딸 박근혜를 친국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정은 최태민이 대통령의 딸과의 친분관계를 내세워 정계와 재계, 정부관료 등과 접촉해 인사, 승진, 공천, 공사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입회비와 후원금을 빼돌렸다고 보고했다. 당시 수사자료에는 총 44건 3억1700만원(현재 약 50억원)에 달하는 '최태민 비리사실'이 적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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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이런 최태민에게 분개해 '최태민 거세'와 '구국여성봉사단 해체' 그리고 '딸에게 접근 금지조치'를 지시한다. 하지만 딸은 아버지에게 읍소하며 '최태민의 결백'을 주장했다.

최태민과의 관계는 '박정희 암살'의 명분 중 하나로 작용했다.

김재규는 10.26 정당성을 설파하면서, 항소이유서에 '최태민을 처벌해달라고 했지만 박정희가 듣지 않았다'며, '이에 대한 실망이 박정희 제거의 한 가지 이유'라고 주장했다.

[장면 둘] 전두환도 우려했다

박정희 피살 후 '최태민 문제'가 흐지부지 되자 청와대 선우련 비서관이 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에게 '최태민 처리'를 부탁한다. 선 비서관의 부탁을 받은 전두환은 최태민을 강원도 인제의 군부대로 보냈다가, 12.12 직후 사기와 횡령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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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영재단 분쟁 대통령 가족과 최태민 사이의 암투
ⓒ 육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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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셋]
혈연보다 진한 관계?

그래도 관계는 이어졌다. 1982년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자, 최태민은 다시 박 대통령 곁으로 돌아온다. 1990년 최태민의 전횡에 불만을 갖고 있던 박 대통령의 두 동생(박근령, 박지만)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기에 이른다.

'언니(박 대통령)가 최태민에게 속고 있으니 언니를 구출해달라'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최태민 뿐 아니라 딸 최순실, 사위 정윤회도 육영재단에 관여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결국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떠나면서 형제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장면 넷] 비리 터지면, 그 자리엔 최씨 가족이 있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박 대통령에게 영남대 재단을 맡긴다. 학생들의 반대시위로 이사장에서 물러났지만 이사직은 유지했다. 그가 이사로 있는 동안 영남대는 부정입학, 횡령, 병원 비리 등이 불거져 관선체제가 들어선다.

당시 영남학원 재단 운영을 좌지우지해 온 4명 중 두 명이 최태민의 인척이었다. 재단 실세였던 조순제씨는 최태민 처의 전남편 아들이었고, 영남대 병원 비자금 총책이었던 손윤호씨는 조순제씨의 외삼촌이었다.

[장면 다섯] 죽은 뒤에도 대물림된 관계

1994년 최태민이 사망한다. 그 후 3년 뒤인 1997년 박 대통령은 정계에 입문한다. 이 때도 최씨 가족이 있었다. 최순실씨의 남편 정윤회씨가 '초선의원 박근혜'의 비서실장 직함을 가지고 컴백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최태민 관련 의혹'을 문제 삼았다. 이명박 후보 측은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최씨 일가에 의한 국정농단의 개연성이 없겠느냐"(장광근 대변인)며, "최태민씨와의 관계가 현재 진행형일 뿐 아니라 미래형이 될 것"(박형준 대변인)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이런 식으로 (네거티브) 하는 것은 천벌을 받을 일"이라며 최태민 일가를 두둔했다. 이명박 진영의 경고는 지금 현실이 돼 있다.

[장면 여섯] 대통령이 된 뒤에는 섭정 의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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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연설문 사전유출 확인 JTBC 보도 화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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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이 제기돼도 강력한 보호막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승마 판정시비 사건으로 인해, 최씨 가족은 어느 정도 세상에 알려진다. 판정시비를 조사했던 문체부 체육국장과 실무과장은 청와대 의중과는 다른 보고서를 올렸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이들을 향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라고 말했고 결국 두 사람은 좌천이 된 뒤 사직을 해야만 했다.

최순실씨는 '아버지의 수법'을 복기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한 전횡이 그 예다. 청와대는 '절친' 관계를 부인하는 것으로 진화하려 했다.

그러던 중 대통령 연설문과 국무회의 자료까지 사전에 최씨에게 건너간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박 대통령과 최씨 가족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그 속살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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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씨 PC에서 나온 파일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한 흔적 발견
ⓒ JTBC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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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가족과의 관계가 이어지는 동안 박 대통령은 힘든 일을 여러 번 겪었다. 주변으로부터는 많은 충고와 경고도 받아왔다. 이 정도면 관계를 정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최씨 가족을 떠나지 않았다. 나라를 대표하는 공직에 있으면서도 온갖 의혹이 난무하는 '추한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3자에게 보여지는 것과 당사자가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는 게 '인간관계'다. 상식적인 시각에서 보면 최씨 가족과의 관계는 '정리했어야 할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박 대통령에겐 반드시 '보듬고 가야 할 것'이었던 모양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자신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던 이유가 뭘까?

이성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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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의혹 검찰수사, 최태민처럼 흐지부지될 수도
차은택 의혹 인물들, 자금 세탁 연루 고영태, 최순실과 박근혜의 관계
임병도 | 2016-10-24 09:04:5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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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과 김필승 K스포츠재단 이사 검찰 수사를 1면에 보도한 중앙일보 ⓒ중앙일보 캡처

 

 

박근혜정부의 비선실세 ‘최순실’씨 관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 (부장검사 한웅재)는 10월 23일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과 김필승 K스포츠재단 이사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습니다.

검찰이 두 사람을 불러 조사한 이유는 지난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는 발언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는 시점에서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첫 번째가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과 김필승 K스포츠재단 이사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시작에 불과하고,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조사를 받아야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만큼 박근혜정부 비선실세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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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핵심 인물들만 따져 봐도 십여 명이 넘습니다. 인물들의 관계도만 봐도 복잡합니다. 최순실 게이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간단하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차은택 의혹 인물들

 

차은택씨는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며 박근혜정부에서 막강한 이권을 따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차씨의 인맥이 총동원됐습니다. 미르재단 초대 이사장이었던 김형수 연세대 교수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차씨와 대학원 사제지간이었습니다.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외삼촌과 조카로 혈연지간이었습니다.

 

최순실씨와 차씨가 만난 시기는 2014년입니다. 이후 차씨와 그의 인맥은 승승장구합니다. 우선 차은택씨는 2014년 8월에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에 위촉됩니다. 이후 스승이었던 김종덕씨는 문체부 장관으로 외삼촌 김상률씨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임명됩니다.

 

차은택씨가 2015년 4월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에 임명되자, 그의 지인이었던 송성각씨도 그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장으로 발탁됩니다.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아마도 차은택씨와 그의 인맥들이 청와대와 정치, 문화계 전반에서 힘을 쏟지 못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왜 차은택씨에게 권력을 실어줬고, 그의 인맥들이 어떻게 이권을 따냈는지 수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② 자금 세탁 연루 고영태

 

최순실 게이트에서 중요한 사람 중의 한 명이 고영태입니다. 고영태씨는 최순실씨와 세운 ‘더블루K’의 이사입니다. ‘더블루K’는 K스포츠재단의 영리사업을 진행했고, 독일과 한국에 회사가 있습니다.

 

‘더블루K’는 K스포츠재단의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한 페이퍼 컴퍼니라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고영태씨를 조사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금이 해외로 나갔고, 과연 그 자금이 누구를 위해 사용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펜싱 선수였던 고영태씨가 은퇴하고 만든 패션잡화 브랜드 ‘빌로밀로’의 가방을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이 사용했는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순실씨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박근혜 대통령을 수사하는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③ 최순실과 박근혜의 관계

 

최순실 게이트에서 가장 핵심 요소는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차은택이나 고영태씨나 모두 그 중심에는 최순실씨가 있습니다. 즉 최순실씨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만났고, 각종 이권과 비리가 시작됐습니다.

차은택씨가 창조경제추진단장으로 임명된 점이나 고영태씨가 한국관광공사 산하 그랜드코리아레저의 ‘엘리트 펜싱클럽’의 펜실장 설립을 추진한 사실은 최순실씨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그저 아는 관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고, 그동안 얼마나 만나고 있으며, 어떤 일에 두 사람이 개입했는지가 이번 의혹을 풀어주는 열쇠이자 최종 수사 대상이 될 것입니다.

 


‘최순실 의혹 검찰수사, 최태민처럼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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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지만, 그리 신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과거 최태민 사건처럼 이번 최순실 의혹도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최태민의 비리를 조사해 올렸지만, 결국 박정희도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그를 놔두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진 최태민에 대한 믿음은 1988년 레이디경향과의 인터뷰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기자:’박근혜 이사장을 싸고도는 소문 중에 대표적인 것은 최태민 목사 (전 구국봉사단 총재)가 박근혜씨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이다. 그에 대한 해명을 한다면?’

박근혜: “최목사는 새마음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옆에서 도와줬던 분이다. 그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꽉 차있을 뿐 사심이 없는 사람이다. 최목사를 직접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 점을 인정할 것이다.”

 

최태민에 관한 수사자료에서 밝혀진 비리혐의만 무려 44건이었습니다. 횡령 14건에 2억2135만600원이고(당시 2억원이면 지금의 몇백억 원에 해당) 사기,변호사법 위반,권력형 비리,이권 개입,융자 개입 등 권력형 비리라는 비리는 모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그녀를 조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끝까지 그녀를 지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1991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최태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조정한다는 말에 “내가 누구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박했기 때문입니다.

 

‘최순실 의혹’이 과연 해결될 수 있느냐는 검찰 수사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가진 최순실에 대한 믿음은 쉽게 사라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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