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관련

과학이 뒤로 밀린 ‘천안함 과학논쟁’ :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道雨 2016. 11. 12. 12:18

 

 

 

 

과학이 뒤로 밀린 ‘천안함 과학논쟁’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오철우 지음/동아시아
편집국  | 등록:2016-11-11 16:58:45 | 최종:2016-11-11 17:01:5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과학이 뒤로 밀린 ‘천안함 과학논쟁’

 

침몰원인 증거논쟁·쟁점다뤄
백색흡착물질 미 조사단 ‘이견’
최종발표는 왜 논쟁 종결 못했나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오철우 지음/동아시아·2만5000원

 

2010년 3월26일 한밤중에 서해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 침몰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PCC-772).

나라 안팎을 요동케 한 그 사건은 7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이미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져버린 듯하다.

사건의 실체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전개됐던 논란은 종결됐나.

 

다국적 민군 합동조사단(합조단)이 5월20일 ‘1번’이 쓰인 어뢰 추진동력장치(‘1번 어뢰’)를 비롯한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하며 발표한 최종 결론은 ‘천안함이 북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는 것이었다.

 

오철우 <한겨레> 과학 담당 기자가 박사과정 졸업논문을 손질하고 보강해 엮은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는, 제목 그대로 블랙박스가 돼버린 그 사건을 다시 열어젖힌다.

 

블랙박스 개념은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말에서 따왔다. “라투르는 과학적 사실이 실험실에서 생산되기까지 과학자·기기·재료·데이터 간에 벌어지는 협상·타협·배신·동맹의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이런 다양한 과정과 맥락은 제시된 과학적 사실이 기성물로 받아들여질 때 모두 그 안으로 사라짐으로써 나중에는 보이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과학활동의 과정과 맥락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 ‘이미 만들어진 과학(레디메이드 사이언스)’을 그는 블랙박스에 비유했다.

 

 ‘과학’에 특별히 방점을 찍은 것은 그동안 적지 않게 나온 천안함 사건 관련 책들과는 다른 이 책의 차별성이자 강점일 수 있다.

지은이가 얘기하는 과학은 합조단의 과학을 겨냥한다.

객관적이고 과학적 조사임을 내세웠던 합조단의 최종발표는 믿을 만했던가. 

 

 

▲2010년 4월16일 오전 백령도 용트림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안함 인양 현장. 앞 부분이 잘려나간 천안함 함미가 보이고 그 주변에선 실종자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백령도/이종근 기자

 

 

예컨대 ‘1번’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던 어뢰 추진동력장치(‘1번 어뢰’).

합조단 최종발표 닷새 전인 5월15일 수거된 이 1번 어뢰는, 천안함이 어뢰에 피격당해 침몰했고 그 어뢰를 쏜 것은 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로 제시됐다.

1번 어뢰의 출현으로 기뢰설·좌초설·잠수함 충돌설·내부폭발설·선체피로설 등 다른 여러 시나리오들은 일거에 퇴출당하고, 범죄자는 북으로 특정됐다.

 

1번 어뢰가 북의 어뢰라는 주장의 근거로, 그것이 북의 수출홍보 목록 속에 들어 있는 설계도와 일치한다는 것, ‘1번’이 한글(북의 언어)로 돼 있고, 포항 앞 동해에서 인양된 북의 경어뢰에 적혀 있던 ‘4호’라는 글자와 유사성을 지닌다는 점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1번 어뢰와 북의 설계도는 수치상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고, 1번이라는 글자가 어뢰 폭발 직후의 고온에서 페인트들은 다 타버렸는데 유독 멀쩡했던 까닭을 둘러싼 논란도 잠재우지 못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게 북의 어뢰라고 하더라도 문제의 1번 어뢰가 그날 천안함을 침몰시킨 어뢰라는 증거가 확보돼야 합조단의 주장이 참이 된다.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최악의 경우, 동해 등에서 예전에 수거해 뒀던 북의 유사 어뢰 추진동력장치를, 북의 어뢰라는 시나리오 주장에 걸맞은 증거가 절실했던 순간에 슬쩍 던져넣어 건져올리게 한 게 아니냐는 억측들을 단박에 침묵시킬 수 있는 증거들까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뜨거웠던 핵심 과학논쟁인, 1번 어뢰·천안함 선체, 수조폭발 실험에서 수거한 백색 흡착물질의 정체를 둘러싼 합조단과 국내외 과학자들간의 논쟁에서, 합조단은 논란을 잠재울 만큼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의문을 키웠다.

 

1번 어뢰가 그날 그 시각 그 장소에서 폭발한 북의 어뢰이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 천안함 선체와 1번 어뢰, 그리고 수조폭발 실험에서 얻은 백색흡착물들이 어뢰 폭발로 인해 생겨난 동일한 물질(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임을 입증해야 했으나, 합조단이 제시한 증거들과 설명은 요령부득이었다.

미국 조사단조차 그 백색물질(흰 분말 덩어리)이 폭발이 아니라 바닷물 속에서 자연 생성된 부식물(알루미늄 수산화물)일 수 있으니 그 주장을 철회하거나 뒤로 밀어내라고 합조단에 권고했다.

 

합조단의 답변이 부실한 대목은 그밖에도 많다.

이승헌·양판석·서재정·정기영 등 국내외 과학자들과 분광 데이터, 엑스선 회절 데이터, 주사현미경 등 첨단 기술·기기까지 동원하며 치열한 공방을 펼쳤지만 그들을 납득시키지 못했고, △1번 어뢰에 붙어 있던 가리비 △거기에 석화처럼 피어있던 백색물질 △동해산 붉은 멍게처럼 보이는 흔적 △어뢰폭발일 경우 폭발량과 폭발수심을 추정하는 데 중요한 값인 버블 주기를 선행연구가 있는 지진파가 아닌 공중음파 기록에서 굳이 도출한 것 △천안함 프로펠러의 독특한 휨 현상 등 숱한 문제들에 합조단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런 의문들은 논쟁 당사자들이 수긍할 만한 독립적 전문가들로 검증 그룹을 구성해 새로 설계한 수중모의 폭발실험을 실시해보거나, 백색물질이 폭발 아닌 부식으로도 생성되는지 공개적으로 알아보고, 비판자들 주장대로 공중음파 아닌 지진파로 버블 주기 값을 측정해보는 등의 어렵지 않은 작업을 통해 충분히 해소할 수 있었음에도, 합조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천안함 사건 조사에는 과학적 조사도 중요했지만 군사적 판단, 정치적 고려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말하자면 과학논쟁은 과학만의 논쟁이 될 수 없다. 결국 사회적 논쟁, 정치적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비판들을 헤쳐가는 사후 검증까지 받아야 한다. 과학적 증거도 그저 발표하면 ‘사실’이 되는 게 아니라 그런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구성되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조사를 위해서는 독립성을 보장하는 조사기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군사·정치적 억압기제를 제거 내지 완화할 수 있는 자유로운 소통의 공론장도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사후검증이 가능하다.

정보와 증거물들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도 보장돼야 한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다. 합조단의 ‘과학 실행’과 발표에는 그게 결여돼 있다.

 

책은 천안함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편가르기보다는,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시한다.

침몰 원인을 둘러싼 과학적 증거논쟁을 추적하면서 쟁점을 정리하고, 복잡하고 난해한 논쟁 과정을 살피면서 논쟁의 공론장이 어떠했는지를 되짚어 보며, ‘과학 실행’이 왜 논란을 종결짓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촉발시켰는지 그 구조와 배경을 살폈다.

과학기자 전문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독보적인 기록물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9780.html#csidxbbd7b9c813fc9299551850f31cecc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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