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이른바 ‘GPS 간첩 사건’의 항소심 재판 중,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피고인에게 수백만원의 뒷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공정해야 할 재판 과정을 흔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GPS 간첩 사건’은 2012년 5월30일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서울청 보수대)가 비전향 장기수 출신 대북 사업가 이아무개(79)씨와 뉴질랜드 교민 김아무개(61)씨가 위치정보시스템(GPS) 관련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기려 했다고 언론에 밝히면서 세상에 불거진 사건이다.
하지만 경찰 발표와 달리, 이씨는 1988년 ‘사상전향서’를 쓴 ‘전향 장기수’였고, 이씨가 정보를 넘겼다고 하는 북한 공작원도 특정되지 않았다. 또 이씨가 가진 정보는 군사기밀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브로슈어였다.
결국 2012년 12월6일, 1심에서 이씨와 김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경찰은 체면을 구겼다.
“증언 매수 의혹까지 불러올 만한 일”
경찰의 뒷돈 제공은 2심인 항소심 때 이뤄졌다. 이 사건에서 이씨는 무죄를 주장했고, 교민 김씨는 수사기관에 유리한 진술을 한 상황이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청 보수대 소속 김아무개 경위는 항소심 중이던 2014년 3월14일 교민 김씨의 계좌로 200만원을 송금했다.
이 사실은 교민 김씨가 제보자로 등장하는 다른 국가보안법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북한에 대형 타이어를 수출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대북 사업가 한아무개(60)씨와 김아무개(48)씨의 사건이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장경욱 변호사는, 교민 김씨가 수사기관에서 돈을 받고 이 사건을 과장해 꾸민 것이라고 의심해, 그의 금융거래 내역 조회를 신청했다.
그 결과 교민 김씨와 경찰의 돈거래를 확인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교민 김씨와 경찰의 돈거래를 해명하기 위한 의견서를 내, ‘GPS 간첩 사건’ 항소심 재판 때 중국 단둥 등 해외를 오갔던 “피고인(교민 김씨)은 출석 의무가 있고, 또 피고인 신분이라 법원으로부터 출석 여비도 지원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힐 수 없다는 자존심에 항소심 재판에 성실히 출석했다”며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 입장에서도 김씨가 재판의 가장 중요한 증거였기 때문에 그의 출석이 필요했다. 김씨가 사용한 비용 일부를 보전해준다는 차원에서, 수사팀의 수사비에서 법정 증언이 꼭 필요한 김씨의 출석 여비 등 명목으로 200만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이 지급한 200만원이 ‘GPS 간첩 사건’ 항소심 재판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검찰이 직접 확인해준 셈이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에 유리한 증언을 해주는 증인에게 뒷돈을 제공했다는 것은 증언의 신빙성 자체를 흔드는 일이다.
서울 지역 한 법원의 판사는 “공정해야 할 사법 절차를 방해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확인해봐야겠지만, 법정을 기만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형사사건을 많이 다뤘던 한 변호사 역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은 수사기관이지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내는 기관이 아니다. 이것은 검찰의 몫이다. 경찰이 재판의 피고인이자 증인에게 돈을 전달한 것은 업무 범위 밖의 일이고, 증언 매수 의혹까지 불러올 만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교민 김씨에게 돈을 송금한 김 경위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관련해서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교민 김씨-서울청 보수대 ‘수상한’ 돈거래
교민 김씨와 서울청 보수대의 끈끈함은 ‘GPS 간첩 사건’ 이후에도 이어진다. 바로 김 경위와 교민 김씨의 돈거래가 탄로 난 대북 타이어 수출 사건에서다.
지난 7월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는 국가보안법상 회합, 편의 제공 미수 등의 혐의로 사업가 한씨에게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공범으로 지목된 김씨도 징역 2년6개월과 자격정지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남북 교역 및 대북지원 사업을 원칙적으로 통제하는 5·24 대북 조치를 내렸음에도, 북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왕아무개씨와 회합해, 군용으로 전용 가능한 대형 타이어를 북한으로 반출하려다 미수에 그치는 등,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판결문에 담긴 이야기는 간단하다. 한씨와 김씨는 ‘GPS 간첩 사건’에 등장하는 교민 김씨와 함께 북한 출신이라는 왕씨 성을 가진 사람과 만났다. 폐타이어를 북한에 수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중간 기착지인 중국 다롄항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출길이 막혔다. 타이어는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수사기관이 나섰고, 이들을 붙잡아 기소했다. 1심에 이어 2심까지 인정된 사실관계다. 한씨와 김씨는 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이 사건을 맡은 것 역시 서울청 보수대였고, ‘GPS 간첩 사건’을 수사하고 재판 중 교민 김씨에게 200만원을 보낸 김 경위가 수사에 참여했다. ‘GPS 간첩 사건’에 참여했던 강아무개 경위도 다시 한 팀이었다. 여기에서도 결정적 제보자인 교민 김씨와 서울청 보수대 사이의 ‘수상한’ 돈거래가 등장한다.
교민 김씨는 ‘GPS 간첩 사건’과 별개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적게는 50만원, 많게는 200만원까지 김 경위 등 서울청 보수대 소속 경찰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돈거래는 타이어 거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이뤄졌다.
교민 김씨는 돈을 받기만 한 것도 아니다. 거꾸로 경찰에 400만원을 보내기도 했다. 교민 김씨는 환전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돈을 보낸 시기와 김씨가 입국한 시기를 따져보면 2개월이나 차이를 보인다. 수긍하기 힘든 해명이다.
상대 계좌 추적할 수 없는 ATM 통해 입금
이 밖에 2014년부터 2015년 5월8일까지 김씨의 통장에는 ‘NZ목장’ ‘목장운영비’ ‘목장비’ 등의 명목으로 50만~200만원이 21차례 입금됐다. ‘목장’ 관련 금융거래는 2015년 5월19일부터 ‘건강’으로 이름을 바꿔 계속됐다. ‘건강식품’ ‘프로폴리스’ ‘오메가3’ 등의 명목으로 2016년 8월까지 20차례 추가 입금됐다.
이상한 점은 입금이 모두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ATM을 이용했으니 상대 계좌를 추적할 수 없다. 입금된 돈의 단위가 50만원, 100만원 등으로 고정적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교민 김씨의 주장처럼 건강식품 거래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관리 및 주문 내역이 없다는 점도 의심스럽다. 이를 근거로 한씨 등의 변호인은 “수사기관에 수시로 동영상과 녹취록을 제공하면서 받은 금전”이라고 주장한다.
교민 김씨는 대북 타이어 수출 사건의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수사기관에서) 정보협력 활동의 대가로 포상금을 받거나 금품을 지급받은 사실이 있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증언을 믿을 수 있을까.
한씨와 김씨 쪽 변호인들은 9월 중순께 교민 김씨를 모해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소할 예정이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