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총장은 우선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안호덕의 암중모색] 라임 의혹에 대해 국민이 정말 궁금해하는 것
▲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 오마이뉴스
"중범죄를 저질러 장기간 수감된 사람, 이번엔 중형 선고가 예상되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의 얘기 하나를 가지고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검찰을 공박하는 것은 정말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19일 라임 관련 수사 지휘권을 발동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두고 비상식적 결정이라고 성토했다.
윤 총장의 발언 장면을 보면서 참담했다. 범죄자의 편지 한 통에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이 박탈되고, 라임 사태 수사 전반이 의심받는 사태. 상식적이지도 않거니와 법의 권위마저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은 검찰 총장이나 국민들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부끄러움보다 먼저 되짚어야 할 건 의구심이다.
우선 헌정사상 세 번밖에 없었다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과연 라임 전주로 지목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폭로만으로 결정되었을까 의문이다. 김봉현 회장의 편지가 발단이 되기는 했지만, 이후 사흘간의 법무부 감찰에서 폭로 내용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일부라도 사실로 확인되었다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 배제 결정을 추 장관의 정권 감싸기라고만 할 수는 없다.
아직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김봉현 회장의 편지 내용이 부당한 검찰 수사를 폭로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윤 총장은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을 비상식이라고 성토하기 전에, 사기꾼(?)에 불과한 사람의 폭로와 검찰의 결백 주장이 국민들에게 같은 무게로 저울질당하는 수모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궤변
김봉현 회장의 폭로 내용은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 옥중 편지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조국 전 장관을 언급하며 '내가 직접 당사자가 되어서 언론의 묻지마, 카더라식 토끼몰이와 검찰의 퍼즐 조각 맞추듯 하는 짜맞추기식 수사를 직접 경험해 보면서 대한민국의 검찰개혁은 분명히 이루어져야한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차라리 '나는 라임 전주가 아니다'라는 말에 지지 여론을 만들기 위한 계산된 술책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 의심이다.
그래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말대로 중형이 예상되는 사기꾼(?)에 불과한 김봉현 회장의 편지 내용만 가지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면 권력 남용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법정 증언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위증죄로 처벌받는다. 형사처벌을 각오하고 주지도 않은 돈을 줬다고 거짓 진술할 이유가 있을까. 더구나 상대는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다. 김 전 회장으로선 뇌물공여죄가 추가될 수 있다. 뇌물 사건에서 돈을 받은 사람이 자백하는 경우는 드물다. 간혹 배달 사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의 진술이 너무 구체적이다.
- 조선일보. 10.12 사설 <펀드 게이트, 돈 안 줬다면 왜 줬다 진술하겠나> 중 일부
그런데 앞서 김봉현 회장의 폭로에 의심보다 사실로 무게를 실어준 건,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들과 국민의힘 등 야당 정치권이 먼저였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 원을 건넸다는 김봉현 회장의 법정 증언이 나오자, 유력 정치인을 상대로 위증죄로 처벌될 수도 있는 내용을 거짓 진술할 이유가 없다며, 김봉현 회장을 두둔한 게 조선일보다.
강 전 수석에게 로비 목적으로 5000만 원이 건네졌다는 진술이 수차례 나온 상황이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민주당 기동민 의원의 이름까지 언급되고 있다며, 김봉현 회장의 법정 진술을 근거로 권력형 게이트라고 단정했던 사람이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다.
그러다가 김봉현 회장의 법정진술 내용을 뒤집는 옥중 입장문이 두 차례 나왔다. 강기정 전 수석의 5000만 원 진술은 거짓이며,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가 있었고, 라임 수사 검사들에게 천만 원 상당의 향응 제공이 있었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때부터 너무 구체적이어서 믿을 만하다던 김봉현 회장의 진술은 사기꾼의 옴니버스 소설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돈 안 줬다면 왜 줬다 진술하겠나>라는 사설을 실어 김봉현 회장의 진실을 주장하던 조선일보는, 10월 26일 〈김봉현 옥중편지 3대 주장, 모두 앞뒤가 안 맞는다〉라는 기사를 비중 있게 실었다. 그러나 주장의 앞뒤가 안 맞는다는 근거조차도, 김봉현 회장 술접대 당사자로 지목된 인물들의 증언이 전부다.
강기정 전 수석에게 5000만 원 건넸다는 법정 진술이 사실일 수도 있다. 또 반대로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와 검사의 향응 제공 폭로가 사실일 수도 있다. 아니면 법정 진술이나 옥중 편지 모두가 거짓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법정 진술과 옥중 편지 내용 모두가 사실일 수는 없다. 5000만 원을 건넸다는 법정 진술과, 강요에 의해서 그렇게 짜 맞춘 것이라는 옥중편지는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봉현 회장의 폭로에서 중요한 것은, 당리당략적 주장이 아니라 사실의 확인이다.
여당 정치인을 지목했을 때는 신빙성 있는 진술이라고 추켜세우다가, 반대의 주장이 나오자 사기꾼의 농간이라 주장하고, 법무부 장관의 수사권 지휘를 위법하다고 말하는 건, 정치나 언론 어디에도 통용될 수 없는 궤변이다.
▲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28일 오전 국회 본관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라임·옵티머스 특검요구 구호와 피켓시위를 하는 국민의 힘 의원들 앞을 지나 본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사기꾼의 농간'이라며 덮을 일이 아니다
지금 김봉현 진술에 의하면 강남 술집에서 고액의 향응을 받은 검사가 바로 이 사건 수사팀장으로 투입돼서, 감찰 결과 사실로 확인되고 이미 수사 의뢰가 돼 있고 수사 의뢰 중이어서 결과가 날 겁니다.
- 법무부 국정감사. 추미애 법무부 장관 발언 일부
사기꾼에 불과한 범법자의 진술과 죄를 수사했던 검찰의 진실 공방,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검찰의 결백 주장이 김봉현 회장의 폭로 내용만큼의 믿음을 주고 있지 못하다. 검찰이 여권 인사를 끼워 넣어 짜맞추기 수사를 했다는 옥중 편지는 여전히 믿기 어렵지만, 이는 철저히 밝혀져야 할 문제이지, 사기꾼의 농간이라고 덮을 일이 아니다.
수사 검사들이 범죄자와 술자리를 하고, 사실보다는 검찰 의도대로 수사 방향을 이끌었던 과거 검찰의 나쁜 역사가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에서도 같은 의혹으로 나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의 부당성을 주장하려면, 수사 검사와 범죄자가 술자리를 한 사실에 대해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게 먼저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잘못됐다 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고 책임이다. 검찰총장이 권력 싸움에 밀려나듯 그만두길 바라지는 않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을 링 위의 시합처럼 중계하는 언론도 제 사명을 다한다고 할 수 없다. 사건이 나올 때마다 정권과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 야당과 보수언론. 사건의 방향을 틀어 검찰 개혁을 저지하려는 윤석열 체제의 검찰.
라임 사태 수사가 수많은 피해자의 눈물을 외면하면서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건, 야당과 보수언론, 검찰이 진실 규명보다 반 문재인 여론을 키우려는 의도를 앞세운 결과다. 검찰 개혁은 라임 사태 수사에서도 당위성과 시급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피의자에게 고액의 향응을 제공받고 검찰의 입맛대로 짜맞추는 수사는 과거 일인 줄 알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검찰에서는 이런 의혹조차도 없을 줄 알았다. 법정진술과 옥중편지 어느 쪽이 사실일지 아직은 판단이 이르다. 모두 거짓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거짓을 만든 세력이 있다면 정권이든 검찰이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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